brunch

매거진 책과 세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람 Oct 29. 2019

별은 살아 있다

시를 잊은 그대에게 (정재찬 지음, Humanist, 2015)

별을 보았던 기억이 있다. 잠 못 들던 밤, 집 밖 한적한 공터에서. 수많은 별들 중 하나인 지구, 끄트머리 작은 나라, 가운데 쯤 도시 외곽 작은 집, 그곳의 우리, 가족 그리고 너. 세상은 광활하고 인간은 얼마나 작은지. 인간의 도전을 강조했는지 가능성을 얘기했는지, 흐릿하다. 가을 이맘때쯤이었나. 윤동주의 ‘별 하나의 추억’을 따라 떠오른 생각이다.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읽으며 ‘추상에서 구체로, 관념에서 육체로’, 여유 있다가 다급해지고 다시 쓸쓸한 현실로 돌아오는 흐름을 따라간다. 영화 <라디오 스타>에 이르면 인정(認定)의 욕구가 삶을 별로 만든다는 대목에서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저자는 대중적 스타로 이야기의 범위를 확장한다. “스타가 스타인 것은 많은 이가 우러러 보아서가 아니다. 저 한 몸으로 많은 이를 비춰주기 때문에 스타인 것이다”(p.53)라고 말한다. 아차, 싶다. 시를 빛나게 하려고 최대한 아름답게 읽었는데. 느끼도록 돕고 싶었고 잘 가르치려 애쓴 것이 시를 아름답게 보아야 한다는 강요였을지도. 시는 이미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데, 거든다는 것이 시험을 위한 가르침이었다. 시의 힘을 잊고 있었다.


열 두 개의 꼭지, 각 꼭지마다 배치한 큰 주제를 따라 묶은 시편들. 집 나간 감성을 찾는다며 한 가지 답 말하는 법만 배운 학생들에게 시를 오롯이 들려주고 싶었다는 저자의 말이 남의 심정으로만 들리지 않았다. ‘문화 혼용의 시 읽기’, 저자의 강의 제목이다. “의술, 법률, 사업, 기술이 모두 고귀하고 생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것이지만, 시, 아름다움, 낭만, 사랑 이런 것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이란다”라고 말한 키팅(죽은시인의 사회) 교수의 말을 빌려 저자인 교수가 꿈꾸는 세상을 내비친다. 나도 역시 키팅 교수의 말을 오래 차용했었다.


신경림의 <갈대>를 해석하는 것에서 시가 오롯이 내게 다가온다. 갈대가 흔들림을 인지했을 때는 이미 흐느낌이 오래 되었다는 것이며, 그 흐느낌이 너무 잔잔해서 자신조차 울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했다는 걸, 비로소 알게 되는 슬픔이라니. 이 순간 강의하는 이의 어조와 듣는 학생들의 분위기가 사진처럼 선명하게 그려진다. 여기에 ‘팬 플루트 연주곡’과 ‘갈대의 순정’, ‘봄날은 간다’ 영상까지 더해지면 저자의 말대로 “인간은 위대하고 동시에 비참하며, 그 역도 참”(p.23)이 되는 두 단어의 모순 사이의 미묘한 울림, 여운을 감히 이해할 것 같다.


아버지가 그리운 계절이다. 아버지의 이름자를 떠올리고 싶다면 김소월과 신경림 시인을 통해 아버지와 조우하길.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유치환과 이영도 시인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그리움1>, <바위>, <그리움2>를 따라서 가다 <깃발>, <무제1>로 이어지며 <행복>에 이르는 길을 찾기를. 사랑은 그 무엇으로도 재단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지 않을까.


가장 인상적인 것은 3장 ‘떠나가는 것에 대하여’다. 김훈의 <자전거 여행> 인용부분을 필사했다. 거기의 목련의 너덜너덜함이, 끝까지 다 까발리고 보여주는 대담함이, 죽음이 요구하는 모든 고통을 다 바치는 생의 경외가, 그러다 풀썩, 바람에 흔들려 볼품없이 떨어지고야 마는 무서운 진실을 마주했다. 바람보다, 사랑보다, 가난이나 슬픔보다 더 나를 흔들었다. 따뜻하게, 냉정하게.


다양한 층위의 인문학 스펙트럼을 한 눈에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책은 고맙다. 조금 더 믿음을 가지면 심연을 볼 수도 있다. 시가 안내하는 깊은 그 속, 들어가 자신을 마주할 용기를 내 본다면 어떨까. “죽음을 잃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해서”(김수영,<눈>) 주저함 없이 모든 것을 분출하자고. 록 스피릿 충만하게.


<빈센트>가 흐르는 강의실,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 두 작품이 번갈아 보여 지다 광활한 우주, 소용돌이치는 별들의 운행 사진이 오버랩 된다. 인간은 모두 꿈을 꾸고 꿈을 통해 욕망한다고. 욕망에 부딪치며 고독의 절정까지 자신을 몰아치고 스스로 별이 되는 단 하나의 스타가 내 곁에 있기를 갈망한다는 마무리로 강의를 끝내는 장면이 연상된다. 수 억, 수십 억 광년을 날아와 별이 우리에게 전하는 그 메시지는 무엇일까. 우리가 만났던 별들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시인이 말하는 별의 진실을 무엇일까. 아직, 별의 이야기는 살아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지친 칼자국을 상처를 남기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