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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나무 Nov 02. 2021

마흔에 엄마가 되었다. 3

아이를 낳으러 한국에 오다.

임신 32주가 다 되어 비행기에 올랐다.

멋모르고 그저 잘 먹고 쉬다 보니 아이를 낳을 일이 걱정이 슬슬 되었다.

일단 체코는 그 당시 의료 시설이 그다지 뛰어나지 못했다.


처음으로 임신 진단을 받았던 병원은 체코에서 가장 큰 병원이었음에도 초음파를 찍으러 옆에 있는 육군병원으로 가라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당시 체코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개인병원을 찾았다. 체코는 공공 의료가 거의 공짜인 나라인데 그 유명한 병원에서는 한 번  진료에 거의 우리나라 돈으로 40여 만원을 지불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숫자에 대한 불공평한 능력으로 항상 힘들어 하기에 정확히는 기억이 잘 안 나지만 거의 40여만 원으로 기억한다.


그곳은 개인병원이지만 초음파 시설도 있었고 모든 검사 시설이 있었으며 아이를 2000명 이상 태어나게 했다며 자부심이 넘치는 여자 원장 샘이 있었다. 그녀는 친절했고 항상 뭐든 오케이였다. 그녀는 마흔 살에 초산이며 몸무게가 30킬로 가까이 불어난 나에게 그저 걱정 없다고만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나는 한국에서는 큰일 날 조건의 산모였다.


주위에서는 한국으로 가라고 했다. 나도 그래야 할 거 같았다. 다행히 옆 단지 살던 민규 아빠가 국내 항공사 직원이 서 적절한 시기에 티켓팅을 했다. 당시 항공사 규정이 32주 이상은 탑승이 안된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31주가 지나가는 쯤에 비행기를 탔다.  


나는 몰랐다. 내가 참 위험해 보이는 산모라는 것을......

비행기의 승무원들은 내가 조금만 움직이거나 불편해하면 사색이 되었다.

주변 좌석의 사람들도 나를 힐끔거렸다.

나는 그들이 임산부에 대해 조금 민감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고 내가 손만 들어도 바로 달려오는 승무원이 참 친절하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승무원 한 명은 내 주위를 맴돌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비행기에서 내리자 입국장에서부터 그들의 예민과 배려의 이유를 알았다.

주변 사람들이 한국말로 하는 소리가 들렸다.

'저러다 길바닥에서 애 낳으면 어쩌려고 저러고 다닌대?'

'예정일 날 맞춰서 왔나 봐'


나는 그 소리가 나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애는 40주에 낳는데 나는 32주라 나는 아니고 주위에 막달 산모가 또 있나 하는데 입국장 앞에서 나를 기다리던 엄마와 여동생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여동생의 첫마디

"언니 날짜 잘못 계산한 거 아냐? 자금 한 38주 정도 돼 보여."

늦은 결혼에 임신과 출산에 대해 세상 아는 거 없는 언니라고 생각하는 동생은 아이를 둘이나 낳은 자신의 경험에 의거해서 나에게 물었다.

"의사가 계산했어."

세상 무책임한 내 대답에 친정엄마는 자신이 아는 세 쌍둥이 엄마만큼 배가 부르다며 혹시 쌍동인데 모르는 거 아니냐고 했다. 그때 알았다. 비행기에서의 그 이상한 기류의 원인을......


한국에 와서 엄마가 계신 광주에 거쳐를 정했다.

친정도 시집도 광주였고 모든 연고가 광주여서 광주에서 산부인과를 찾는데 나를 보면 의사들은 그닥 반가워하지 않았다. 위험도가 높다고 노골적으로 말했다. 수술을 해야 한다고. 어쩌면 수혈을 해야 할지 모른다는 말에 남동생은 올케에 의해 거의 두 달 강제로 금주와 금연을 당하다시피 했다. 모두가 비상에 걸린 거 같았다. 겨우 아는 분의 소개로 분만 전문 여성병원에 다니게 되었다.


의사는 자연분만은 어렵다고 했다. 특히 운동을 하지 않고 살을 30kg 가까이 찌웠다며 나를 힐난했다. 한국에서는 산모의 몸무게가 10kg 이상 늘면 모든 검사를 하고 운동을 권유하고 살이 찌지 않도록 한다고 했다. 35주가 넘어서자  제왕절개를 할 거니 스케줄을 잡자고 했다.  36

쯤에 제왕절개 스케줄을 잡으러 병원에 갔다.

나는  당연히 38 주 쯤에 계획을 세웠다.  아이를 빨리  낳을 수 있다는 생각은 못했다


 그런데 갑자기 의사가 내가 위험도가 너무 높으니 대학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나는 대학병원에 가고 싶지 않았다. 그러자 의사는 아이가 위험할 수 있다며 대학병원에 예약을 잡아주겠다고 했다. 그때까지 수월하기만 했던 나의 엄마 되는 길에 갑자기 이상 난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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