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그 구장, 그 맥주…
“야구엔 맥주지”
춥거나 덥거나 날씨에 상관없이 야구장에 들어오면 일단 맥주부터 찾게 된다. 내야/외야를 막론하고 줄철부야 돌아다니는 맥주보이를 찾느라 항상 눈이 바쁜 편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왜 야구장엔 늘 맥주가 있을까?
그리고 왜 대부분의 구장은 특정 맥주 브랜드와 연결되어 있을까?
단순히 “땀 흘리는 스포츠를 보며 맥주를 마시면 시원하다”라는 이유만으로는 충족시키기 어렵다. 야구와 맥주, 그 조합은 사실 굉장히 정교한 브랜드 마케팅 전략이다.
야구장에서는 8도 이상 주류가 금지?
야구장 입장 시 “8도 이상의 주류 없으시죠?”하며 묻는 표 검수원들의 말을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다행히 야구장에서 흔히 마시는 맥주는 대부분 알코올 도수가 4~5도 정도. 공식 규정상 공공장소에서는 고도수 주류 반입과 판매가 제한되어 있는데, 이는 8도 이상의 주류가 소란, 폭행, 분쟁 가능성이 커진다는 이유이다. 실제로 과거 야구장에서 소주를 마시고 행패 부리는 아저씨 팬들이 간간히 화제가 되기도 했다. 또한 스포츠 경기장은 전 연령 관람 가능한 문화공간이기 때문에 과도한 음주가 불러오는 응원 문화 훼손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많은 구단이 특정 맥주 브랜드와 “단독 판매계약(POS 권리)”를 맺고 있기 때문에 구장 내 다른 주류 반입은 통제할 수밖에 없다.
야구=맥주, 조합은 언제부터?
1980년대 후반 ~ 90년대 초, 프로야구가 대중화되면서 당시 OB맥주(=지금은 OB 카스)가 야구 마케팅에 본격적으로 투자했다. 주류 모델로 선수를 기용하거나 구장 내 배너를 독점했고, 야구와 함께 마시는 OB 캠페인을 기획하기도 했다. 이 시기부터 야구=맥주라는 인식이 팬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을 것이다. 또한 구장 내 푸드 컬처가 정착하면서 야외 피크닉 느낌이 강화되었고, 맥주 + 치킨, 김밥, 만두 등으로 세트화되었다. 팬들끼리는 ‘직관에는 역시 맥주지!’라는 인식이 점차적으로 퍼졌다.
야구는 시즌 스포츠이다.
3월부터 10월까지, 팬들은 특정 구장을 주기적으로 찾아온다. 그때마다 늘 같은 브랜드의 맥주를 마시게 된다면? 단순히 브랜드 노출만이 아닌 브랜드 ‘습관’이 된다. 잠실구장은 역시 켈리! 롯데 구장은 역시 클라우드! 삼성 구장은 역시 꿀맥주(?) 이것은 브랜드 충성도라기보다는 행동 기반의 기억이라고 할 수 있다.
야구장에서는 맥주가 ‘충동’으로 선택된다. 목마름, 흥분, 더위 등 의식적인 선택보다는 감각적 선택이 일어난다. 이때 특정 브랜드만 판매한다면, 선택지를 제거한 독점 마케팅이 작동한다. 실제로 필자는 호가든 캔 맥주를 잠실 구장에서 처음 마셨다(편의점에서 팔고 있다). 더운 날이었고 응원을 하느라 목도 아픈 상태에서 마시는 시원한 호가든 맥주란! 아직도 그때 그 감정을 잊지 못하기 때문에 종종 호가든을 찾게 된다.
스포츠는 감정을 남긴다.
끝내기 홈런
수비 실책
역전승
그리고 내 옆에 있던 맥주! 크- 그때의 그 제품은, 단순 제품이 아니라 감정의 일부가 된다. 그날 나의 기분을 만든 맥주 한잔, 맥주는 그렇게 기억된다.
야구장은 맥주 브랜드들에게 “돈 주고 사고 싶은 광고 공간”이 될 수밖에 없다.
팬의 기억 속, 경기보다 더 오래 남는 것이 ‘분위기’라면 그 분위기 옆에 있는 브랜드가 진짜 강자가 된다. 특히 맥주는 소비 자체가 엔터테인먼트인 제품! 야구장의 열기와 감정선에 쉽게 동화되기 때문에 영화관, 카페, 쇼핑몰과는 다른 차원의 ‘감정 입점’이다. 그래서 브랜드는 야구장 입점뿐 아니라 팬의 감정에도 입점을 해야 한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