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마지막 출근
도나는 일찍 출근해서 미리 유니폼을 갈아입고 일 할 준비하고 있었다. 직원들은 일찍 나왔네? 하며 옷 갈아입으러 갔다. 도나는 오늘은 진상손님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손님을 기다렸다. 직원들이 모두 옷 갈아입고 로비에 모였다. 사장님은 오늘도 힘내서 잘하자며 응원의 한마디만 하고 가셨다. 도나는 직원들과 손님을 기다리며 잠시 대화를 나눴다.
직원들은 저마다 연령대도 사연도 다양했다. 어떤 직원은 대학생 때 잠깐 돈이 필요해서 시작했는데 그때 큰돈을 벌면서 돈맛을 알게 된 후로 이 직업을 계속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또 다른 직원은 그냥 좀 돈을 쉽게 벌고 싶었다고 했다. 내가 일해서 번 돈으로 내가 하고 싶은거 하고 사고 싶은거 사면서 사는 게 좋아서 이 일을 한다고 했다. 도나는 직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각자 추구하는 가치와 생활은 참 많이 다르다고 느꼈다. 직원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손님들이 올 시간이 되었다. 직원들은 옷 매무새를 정리하며 손님을 기다렸다. 그리고 얼마 후 손님 한팀이 들어왔다.
오늘도 역시 도나는 직원들과 함께 팀으로 손님 응대했다. 첫날보다는 덜 긴장했지만, 여전히 긴장은 됐다.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전혀 예상할 수 없었기에 더욱 그랬다. 도나는 어제보다는 자연스럽게 인사를 하고 술도 따르고 손님들과 대화를 이어갔다. 손님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게 대부분이었다. 손님들은 회사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가족사까지 생각나는대로 이야기했다. 직원들은 손님들의 나이와 무관하게 손님들을 모두 오빠라고 불렀다. 도나는 첫날 오빠라는 호칭 때문에 거부감이 참 많이 들었었는데 오늘 역시 오빠라고 부르는 호칭은 듣는 것만으로도 힘들었다.
손님들의 나이는 어리면 30~40대였고, 대부분은 40~50대였다. 정말 아빠, 할아버지정도 되는 사람들을 오빠라고 부르려니 차마 입밖으로 뱉기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직업 특성상 어쩔 수 없이 해야했다. 그리고 출근 둘째 날인 오늘은 도나도 어렵게 도전해보기로 했다. 다른 직원들처럼 애교 섞인 말투는 아니여도 도나의 입장에서는 최선을 다해 부르는 것이었다. 그렇게 어색한 호칭을 해가며 손님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다 보니 어느새 첫 손님들이 갈 시간이 되었다. 손님 중 한명이 나가면서 갑자기 도나를 불렀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일단 손님이 부르니 도나는 갔다. 그러자 손님은 손에 꼭 움켜쥐고 있던 무엇인가를 도나의 손에 쥐어 주었다. 도나는 순간 팁이라도 주려는 걸까? 잠깐이지만 설렜다. 하지만 그 설렘은 아주 큰 착각이었다. 도나의 손에 쥐여쥔 것은 다름 아닌 쓰레기였기 때문이었다. 도나는 그 쓰레기를 보는 순간 할말을 잃었다. 당황한 도나의 모습에 그 손님은 낄낄거리며 비아냥거렸다.
“뭐 팁이라도 주는 줄 알았어? 이런 곳에서 일하는 주제에 뭘 바라는 거야?”
도나는 그 순간 온몸에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치욕스러운 말투에 온몸이 경련 오듯이 떨렸다. 그 자리에서 당장 뛰쳐나오고 싶었지만, 꾹 참고 퇴근 시간까지 버텼다. 퇴근 후 홀로 편의점에 앉아 아까 그 자식이 준 쓰레기를 보자 분노가 치밀어왔다. 도나는 쓰레기를 손으로 꽉 움켜쥐었다가 힘껏 쓰레기통으로 던져 버렸다. 도나는 차오르는 분노에 목이 메어 시원한 맥주 한 캔을 따서 벌컥벌컥 마셨다. 몇 번을 곱씹어 생각해봐도 그 말은 도나 인생에 있어 가장 치욕스러운 말이었다.
도나는 남은 맥주를 마시며 눈물을 훔쳤다. 비상식적인 말을 하는 그런 인간 때문에 흘리는 눈물이 아깝고 또 상처받는 자신을 용납할 수 없어 더 이상 슬퍼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이 일을 더 안 하기로 마음먹었다. 마음 같아선 상처받은 만큼 두 배로 돌려주고 싶었지만, 그러면 도나 자신도 그와 같은 사람이 될 것 같아 여기서 멈추기로 했다.
다음날 오전 사장님께 전화했다. 전날 있었던 상황을 자초지종 설명하고 더 이상 출근 못하겠다고 말씀드렸다. 도나는 믿고 일 시켜주셨는데 너무 죄송하다며 거듭 사과했다. 사장님은 본인도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한다며 괜찮다고 오히려 격려해주셨다. 그리고 이 말도 덧붙였다.
“나는 도나가 참 마음에 들었어! 언제든 다시 오고 싶으면 와도 돼.”
그 말에 도나는 한참을 울었다. 누군가 본인의 마음을 헤아려 준 것에 위로가 되어 눈물이 쉽게 멈추지 않았다. 간신히 감정을 추스르고 전화통화를 마쳤다. 도나는 사우나에서 식혜와 구운계란으로 아침을 간단히 해결했다. 제 멋대로 부서진 계란 껍질을 보며 인생 참 덫 없이 느껴졌다.
사회에서 한 사람의 존재는 미세먼지 같은 존재이다. 있어도 없어도 전혀 상관없는 그런 존재 말이다. 도나 역시 당장 사라져도 세상은 아무 일 없이 돌아갈 것이며 아무도 관심 없을 것이다. 본인 역시 이 세상에서 미세먼지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니 억울하고 슬펐다. 그럼에도 도나는 아직 지켜야 할 소중한 사람이 있기에 삶의 끈을 놓지 않기로 했다. 적어도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가 할머니를 위해서 해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가? 뽑아만 주면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일 한다고 했는데 고작 2틀 일하고 못 견디고 뛰쳐 나오다니…내가 정말 간절했던 것은 맞을까? 아니 어쩌면 할머니도 내가 이런 식으로 돈 버는 것은 안 좋아 하실꺼야.”
도나는 혼자 온갖생각을 했다. 하지만, 결론은 일을 그만두게 됐고 돈은 쉽게 벌리는 것이 아니라는 교훈을 얻었다.
“인생 참 치사하네. 더럽게 치사해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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