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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원 Mar 15. 2022

열혈 취준생의 비애

13. 언제든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곳

도나는 다시 시골에 내려가기로 마음먹었다. 아무 생각도 하기 싫었다. 그냥 물 흐르듯 발걸음에 몸을 맡기고 싶었다. 버스표를 미리 예매하거나 알아보지도 않고 바로 터미널로 갔다. 터미널 대기실에서 기다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버스가 왔다. 버스 창가에서 본 날씨는 도나의 속도 모르고 티 없이 맑기만 했다. 도나는 버스가 출발하기 전까지 터미널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며 생각했다. “사람들 정말 열심히 산다. 나도 저렇게 열심히 살아야 하는데...왜 자꾸 나약한 생각만 드는지...” 도나는 자책감에 빠졌다. 뜻대로 되는 일 하나 없고 할머니는 아픈데 하나뿐인 손녀딸에게 아프다는 말도 못 하시고 치료비도 없는 이 모든 상황이 그저 답답하고 속상했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도 없었다. 도나는 달리는 버스에 몸을 맡기고 잠이 들었다. 한잠 자고 일어나니 버스는 벌써 시골 시내에 도착해 있었다. 


고향의 하늘과 공기는 도나의 마음을 안정시켰다. 돌아올 곳이 있다는 것에 위로를 받으며 도나는 집으로 향했다. 오래 떨어져 있진 않았지만, 앵두도 보고싶었다. 진주에게는 사실 일 그만두었다는 소식은 알리고 싶지 않았지만, 앵두를 데려오려면 어쩔 수 없이 말해야 했다. 도나는 집에 도착할 때쯤 진주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진주야 나야. 나 다시 내려왔어. 앵두 데려가려고.”

“그래? 알았어. 그럼 앵두 데리고 너희 집으로 갈게. 지금 어딘데?”

“나 터미널에서 집으로 가고있어. 지금 나오면 될 것 같아.”

“알겠어. 금방 갈게.”     


진주는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았다. 도나는 그런 진주가 참 고마웠다. 진주와의 통화로 도나는 서울에서부터 무거웠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며칠만에 본 집은 한산하다못해 으스스한 기운까지 감돌았다. 막 가을이 시작되고 시골이라  밤 되면  추워지면서 집은 말 그대로 한기로 가득했다. 도나는 들어가자마자 보일러부터 켰다.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거실에 앉아서 앵두와 진주가 오기를 기다렸다. 잠깐 앉아서 창문 밖을 바라보니 어느새 푸른 숲으로 울창하던 집앞 산은 앙상한 모습으로 변해있었다. 가을의 끝을 알리는 몇 몇 단풍잎만이 위태롭게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었다. 도나가 깊은 생각에 빠져 있을 때 진주가 도착했다.   

  

“도나야 나 왔어.”

“핵핵핵 핵핵”    

 

진주와 앵두는 얼마나 달렸는지 앵두가 핵핵 숨을 헐떡이며 집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거친 숨을 몰아쉬기는 진주도 마찬가지였다. 진주는 방안에 들어오자마자 바로 바닥에 대자로 누웠다. 앵두는 며칠 만에 보는 도나가 반가웠는지 도나의 몸에 매달려 떨어지지 않았다. 정신없이 도나의 몸 여기저기 핦으며 온몸으로 반가움을 표시했다. 도나는 바닥에 누워 앵두의 흥분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렸다. 


“어때 집에 오니까? 뭐 오랜만에 온 건 아니지만 며칠 동안 집을 떠나 있어 본적 처음이잖아”

“그렇지? 너무 편하고 숨이 쉬어지는 느낌이야. 뭐라고 할까? 서울에 오래 있진 않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서울에서 지내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어.”

“어떤 생각?”

“음...우리가 살고있는 시골과 달리 서울에 사는 사람들은 너무 바쁘게 움직이고 서로가 서로에게 관심이 없어 보였어.”

“그거야 당연히 모르는 사람들이니까 관심이 없는 게 아닐까?”

“내가 말하는 관심은 적어도 사람과 사람은 눈을 마주쳐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모르는 사람이든 아는 사람이든 보면 전부 다 휴대폰을 보느라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전혀 모른다는 거야.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사람들이 휴대폰의 노예가 된 듯 하나같이 휴대폰에 빠져 있다는 거지. 물론 안 그런 사람들도 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폰을 보며 바쁘게 사는 모습을 보면서 어딘가 모르게 마음 한구석이 허전한 느낌이었어. 마치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어떤 공허함을 가상세계에서 채워지길 바라는 느낌? 물론 어디까지나 다 내 생각이야.”

“역시 넌 참 진지해. 나는 그냥 너랑 잠깐 서울에 갔을 때 카페에 앉아서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 보며 참 멋있다. 나도 저렇게 근사한 회사원이 되고싶다는 생각했는데... 역시 나랑 달라.”

“근데 왜 안 물어봐?”

“뭘?”

“나 왜 일 그만두고 내려왔는지...”


도나는 말끝을 흐렸다.


“물어봐서 뭐해. 너가 이미 충분히 고민하고 내린 결정일텐데... 그리고 나보다 너가 지금 가장 힘들텐데 뭐.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으니 옆에라도 있어 주려고 온거야. 앵두랑.”     

“역시 내 친구. 너밖에 없다. 나 잠깐 일 해봤는데 진짜 자존심 상하고 치욕스러워서 못하겠어서 사장님한데 말하고 내려왔어. 근데 마음이 좋지 않았어. 뭔가 책임감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돈을 벌겠다는 마음이 절실하지도 않은 것 같아서...”     

“아니야. 잘했어. 너가 그런 결정한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다 있을거야. 너무 걱정하지 말고 차라리 이 기회에 그냥 할머니 찾아가서 만나고 몸이 얼마나 어디가 어떻게 안 좋은지 확인해보고 다시 생각해보는 건 어때?”   

“안 그래도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그래서 말인데...혹시라도 할머니 수술하게 되면 돈 좀 빌려줄 수 있어? 나한데 200만원 정도 있는데 이걸로 부족하면 그때.”     

“당연하지! 내가 말했잖아 빌려줄테니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하라고.”

“고맙다. 내 친구 진짜 내 인생에 너가 있어서 참 복 받았어. 정말 고마워.”    


도나는 오랜만에 온기 가득한 집에서 따뜻한 밤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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