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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원 Mar 17. 2022

열혈 취준생의 비애

15. 병실

병원에 도착하여 병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할머니 모습에 도나는 또 한 번 눈물을 흘렸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건강하고 밝던 모습은 온데 간데없고 힘없이 축 처진 두 팔과 볼살이 쏙 빠진 앙상한 얼굴만이 도나의 눈에 들어왔다. 잠을 자는 건지 너무 고통스러워서 눈을 감고 있는 건지 축 처진 눈꺼풀은 미동이 없었다. 도나는 혹시라도 할머니 잠든 것을 깨우기라도 할 것 같아서 간호사분께 할머니 상태에 대해서 여쭤봤다. 다행히 조금 전에 진정제를 맞고 주무시는 거라고 했다. 간호사의 말에 안심하고 도나와 진주는 할머니가 깨지 않게 최대한 조심스럽게 병실에 들어갔다. 선물이라고는 평소 할머니가 즐겨 마시던 식혜뿐이었다. 정신없는 도나를 위해 진주가 대신 병원에 전화해서 할머니의 상태를 확인하고 도나대신 할머니가 드실 수 있는 식혜를 준비해 온 것이었다. 


도나는 잠자고 있는 할머니 곁에 조용히 앉아서 한참을 할머니의 모습을 바라봤다. 주름진 얼굴이 할머니의 인생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깊게 파인 팔자주름, 마치 모나리자 같은 민둥 눈썹과 움푹 들어간 눈까지 어느 한 곳도 할머니의 고된 인생을 안 나타내는 곳이 없었다. 진주는 조용히 도나의 곁을 지켜줄 뿐이었다. 도나는 가만히 할머니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할머니의 손을 만졌다. 세상 거칠고 딱딱한 할머니의 손, 그럼에도 항상 잡으면 안정감과 따뜻함이 느껴지던 손이었는데 오늘은 온기 없이 차갑기만 했다. 손 마디마다 제멋대로 올라온 굴곡들은 마치 할머니의 인생을 나타내는 것 같았다. 어느 한 곳 매끈한 곳 없이 울퉁불퉁한 손가락이 참 안쓰럽고 가여웠다. 도나는 조용히 눈물 흘렸다. 죄송함과 감사한 감정이 뒤섞여 요동치고 있었다. 이미 늦은 후회와 돌이킬 수 없는 지난 날의 대한 아쉬움이 눈물로 쏟아져 나왔다. 한참을 소리 없이 울고 있는 도나의 어깨를 진주는 가만히 토닥여주었다.      


“할머니!! 나 알아보겠어? 나야 도나.”

“......”


할머니가 정신 차리자 도나는 누군지 알아보겠냐며 다급하게 물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눈만 끔뻑일 뿐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나 누군지 모르겠어? 아니 말하기 힘든 거야?”     


도나는 답답한 마음에 다그쳐 물었다.      


“도나야, 일단 진정해봐. 할머니 말 못하시는 걸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간호사한데 가서 물어보고 올게.” 

    

진주는 얼른 간호사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이내 돌아와서는 할머니가 말을 못하시는 게 맞다고 했다. 그 말에 도나는 아니 왜 말을 못하신대? 뭐때문에? 괜히 진주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그럼에도 진주는 차분하게 말해주었다.    

 

“급성뇌경색 오셨는데 언어 장애도 같이 오신 것 같대......”

“......”     


도나는 당황하여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할머니 손을 잡고 할머니의 눈만 바라볼 뿐. 


“할머니 괜찮아. 내가 말하고 할머니는 듣기만 해도 돼. 이렇게 아픈데 너무 늦게 찾아와서 미안해...그리고 왜 말 안했어. 처음부터 아프다고 했으면 내가 후...아니야 할머니는 나한데 부담주기 싫어서 그런 거지? 나도 다 알아 할머니가 누구보다 나를 아껴주고 많이 사랑한다는거. 그래서 더 슬프고 마음이 아파. 근데 이 상황에서 내가 할머니를 위해서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게 너무 화나고 속상해...”   

   

도나는 혼자 독백이라도 하듯이 본인의 감정을 쏟아냈다. 이런 상황에서 본인이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에 더욱 속상해했다. 할머니는 도나의 말을 조용히 듣고 있다가 자책하는 도나의 모습에 손을 잡았다. 늘 그렇듯이 할머니의 손은 거칠지만 따뜻했다. 할머니가 도나의 손을 잡아주는 그 순간, 도나는 어떤 백 마디 말보다 할머니가 손 한번 잡아주는 것이 큰 위로가 된다는 것을 느꼈다.      

도나는 당장 할머니 곁을 지키고 싶었지만, 집에 있는 앵두가 걱정되어 어쩔 수 없이 집으로 왔다. 진주와 함께 집으로 온 도나는 진주에게 할머니 병간호하는 동안 앵두를 부탁했다. 진주는 흔쾌히 받아줬다.   

   

“나 할머니 병원에 계시는 동안은 할머니 병간호하면서 취업 준비하려고. 그리고 얼마전에 공기업에 지원서 넣었는데 혹시 몰라서 면접도 준비하려고.”

“뭐야 나 몰래 이력서 넣은 곳이 있었어?”

“웅. 미안...아무한데도 말 안하고 사실 나 공기업 취업 준비하고 있었어. 일반 기업이나 대기업은 대학교 4년제 졸업해야만 서류 넣을 수 있지만, 공기업은 학력 제한이 없어서 어쩌면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

“잘했어. 서류 결과는 언제 나오는데?”

“아마 이번 달이었던 것 같은데 나도 한번 확인해봐야 알 것 같아. 사실 이번에는 준비가 좀 덜 돼서 합격보다는 경험해보려고 넣은 거라 큰 기대는 안 하고 있어.”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원래 사람인생은 아무도 모르는 거야.”

“나도 되면 좋겠다. 그럼 할머니 병원비도 그렇고 병간호하는 동안에도 온전히 할머니에게 신경쓸 수 있을텐데...”

“잘 될 거야. 너무 걱정하지마. 그리고 내가 간호사 선생님께 물어보니까 할머니 많이 안 좋으시긴 한데 치료 받으면서 옆에서 병간호만 잘해주면 좋아질 수도 있대.” 

    

진주는 사실 할머니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을 들었지만, 차마 도나에게 말해 줄 수가 없어 선의의 거짓말을 했다. 안 그래도 힘들어하는 도나에게 굳이 이 사실까지 알려 더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할머니도 진주에게 부탁했던 말이다. 어차피 지금 상황에서 수술 할 수도 없는 상황이고 만약에 진짜 한다고 해도 회복될 것이라는 보장도 없는 상황이었다. 할머니 연세도 있으시고 병세도 많이 악화된 상황이라 담당 의사가 말하길 올해를 넘기는 것만으로도 기적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정말 길어야 두 달 좀 안되는 시간이었다. 진주는 어떻게든 도나에게 할머니는 좋아질 것이라고 계속해서 안심시켰다. 물론 병세가 너무 안 좋아지면 그때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지만, 그전까진 도나가 최선을 다해 할머니를 보살핀다면 함께 할 시간은 있다고 진주는 말해줬다.  


도나는 할머니 병실에서 같이 지내면서 낮에 틈틈이 혹시 합격 될지도 모를 면접 준비를 했다. 만약에 올해 합격못하면 내년에 다시 지원할 생각으로 규칙적으로 실기시험 과목들도 공부했다. 하지만 제발 이번에 됐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도 있었다. 할머니 병원비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 손녀가 당당하게 회사원이 되어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야 걱정 안 하실테니까. 자식들과 할아버지의 사고로 인해 한평생을 고생만 하신 할머니이기에 더욱 더 손녀가 혼자여도 잘 살 수 있으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보여드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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