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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원 Sep 01. 2024

무법지대


그날 이후 나는 햇살 좋은 날에도 비가 오는 날에도 집 밖을 나갈 수 없었다. 나의 삶은 불안정하고 고독해졌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보호받아야 할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나는 철저히 짓밟혔다. 누구도 나의 고통에 공감할 수 없었으며 아는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더 고독하고 외로웠다. 나를 가장 사랑하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조차도 감히 말할 수 없었으니까. 나보다 더 그 괴물을 사랑하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 어찌 감히 이 사실을 알릴 수 있었을까. 그때까지만 해도 딸보단 아들이 귀하고 장손이 귀한 시대였기에 더 어려웠다. 나는 그날 이후 밖으로 나가는 것도 무서웠고 집에 혼자 있는 시간도 무서웠다.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하이에나처럼 내가 혼자 있는 시간에 맞춰 찾아오는 그 괴물이 더럽고 무서웠다.


오늘도 저 멀리 그 괴물이 걸어오고 있었다. 양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농장 밭을 가로질러 신나게 걸어왔다. 나는 재빨리 문을 잠그고 창문 커튼도 치고 몸을 숨겼다. 나는 숨소리조차 제대로 못 내고 창문 밑으로 숨었다. 작은 집 안에 숨을 곳은 마땅치 않았다. 이리저리 몸을 웅크리고 숨느라 정신없는 사이 그 괴물은 어느새 집 앞에 도착해있었다. 노크도 없이 출입문을 당기더니 문이 잠겨있자 곧장 안방 창문으로 와서 집안을 샅샅이 훑어봤다. 나는 눈이라도 마주칠까 두려워 숨소리도 제대로 못내고 벽에 몸을 딱 붙이고 웅크리고 있었다. 한참을 창가에 서서 이리저리 훑어보더니 혼잣말을 하며 떠났다. 나는 그 괴물의 발소리가 안들릴 때까지 그 자리에 그대로 웅크리고 있었다.


발이 저리고 심장이 쪼그라드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 순간엔 그 괴물의 그림자조차 마주치기 싫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그 고통조차도 느끼지 못했다. 발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을 때에서야 나는 한껏 웅크린 몸의 긴장을 풀었다. 긴장했던 몸의 힘이 빠지자 온 신경이 고통으로 향했다. 맘 편하게 누울 수도 없었다. 언제 또 다시 돌아올지도 모르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건 할머니 할아버지가 집으로 올 때까지 잘 숨어있는 것이었다. 지옥 같은 시간이 흐르고 저녁이 되어서 할머니 할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할머니는 오늘은 집에서 뭐했냐고 물었다. 그 질문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냥 집에 있었다는 말 밖엔. 늘 그렇듯 할아버지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나는 가끔 할아버지가 선택적 언어장애가 있는 건 아닐까? 라는 의심까지 했다. 당신의 필요함에 따라 그때만 이야기했으니까. 그래도 난 그런 할아버지가 좋았다. 누군가를 쉽게 판단하거나 평가하는 일이 없었으니까. 마음속으로는 할아버지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을까도 고민했지만 이내 그만두기로 했다. 나는 밥 먹는 이 순간만이라도 그 생각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일부러 내가 좋아하는 다람이와 고슴도치(당시 북한 인기만화) 만화를 생각했다. 작은 몸집의 고슴도치가 몸을 한껏 웅크렸다가 자기보다 몸집이 두 배는 큰 두더지를 한 방에 제압하는 장면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그 웃음도 잠시였다. 그 괴물이 다시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마치 자기 집인 듯 노크도 없이 문을 열고 들어와 자연스럽게 밥상에 앉았다. 할머니는 늘 그렇듯 장손이 왔다며 얼른 부엌으로 나가서 밥을 차려왔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나는 그 모습을 애써 감추기 위해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오늘 낮에 왔었는데 집에 사람 없더라?”

나를 흘깃 보며 말했다. 마치 나 들으라고 하는 말 같았다. 그 말은 듣는 순간 나는 죄지은 사람처럼 괜히 움찔했다. 그리고 이내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오늘 어디 갔었어?”

할머니가 나를 보며 말했다.

“나? 어......어. 나 답답해서 시장에 좀 다녀왔어. 그때 왔었나 보네 오빠가.”

나는 당황했지만, 최대한 자연스럽게 말했다. 그 괴물은 나와 할머니를 번갈아 보며 아무렇지 않게 밥을 먹었다. 나는 당장이라도 그 자리에서 뛰쳐나가고 싶었다. 그 순간만큼은 아무것도 모르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꼭 말 없는 공모자들 같았다. 할머니는 거의 매일같이 보는 손주가 항상 반가운 모양이었다. 오늘도 해맑게 웃으며 그 괴물과 이야기를 했다. 저 괴물이 누군가의 순정을 짓밟았다는 사실도 모른 채. 우리 집안의 장손이라며 한껏 높여주고 있었다. 할머니의 그 말에 괴물은 으쓱해져서 할머니 할아버지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열심히 살겠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말 없는 할아버지였지만, 장손의 그 한마디에 할아버지도 뿌듯해했다. 이중인격 같은 그 괴물을 보고있자니 속에서 열불이 났다. 나는 마음속 분노를 설거지하며 풀었다. 괜히 쨍그랑 소리를 한 번 더 내고 수저도 일부터 더 크게 수저통에 꽂았다. 그런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할머니는 계속해서 그 괴물과 웃으며 이야기했다. 뭐가 좋아서 저렇게 웃는 거야. 내 마음은 눈꼽만큼도 모르면서. 나는 마음속 말들을 나만 들을 수 있게 내뱉었다. 그 괴물이 제발 빨리 이 집에서 나가기만을 바랐다.

“할머니 나 간다. 또 올게.”

부엌으로 나오며 나를 쳐다보는 눈빛에 나는 소름이 돋았다. 또 오겠다는 말은 나에게 하는 말이었다. 나는 대꾸도 안하고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리고 속으로 말했다. 두고 봐라. 내가 두 번 다시 당하나. 절대 안 당해. 이대로 당하고만 있지 않을 거라고. 다시는 당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지만, 지킬 수 없는 물 같은 약속이었다.

처음 성폭행을 당한 후로 나는 그 괴물을 피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하지만, 내가 예상하지 못한 타이밍에 나타나는 것까진 막을 수 없었다. 내가 혼자 있는 시간엔 자기를 피한다는 것을 알아챈 괴물은 아예 대놓고 나와 할머니가 있을 때 오는 것으로 방법을 바꿨다. 그리곤 할머니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나를 성폭행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더이상 이 집에서는 희망이 없다는 것을. 내가 이 집에 있는 한 이 더럽고 치욕스러운 일을 끊을 수 없었다. 방법은 할머니 집을 떠나는 것 밖에 없었다. 태어났을 때부터 살아왔던 내 인생에서 가장 아늑하고 행복했던 공간이 한순간에 지옥의 공간으로 바뀌어버렸다. 나는 살기 위해 할머니 집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겐 시골에 사는 큰이모 집에서 좀 지내다 오겠다고 말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두 분은 흔쾌히 그러라고 했다. 등이 굽을 대로 굽은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걱정됐지만, 내가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누구도 그 지옥 같은 곳에서 나를 구해줄 수 없었으니까. 오로지 내 힘으로 내가 살아남아야 했다.


이토록 추악한 짓을 한 괴물을 가족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사회는 또 어떤가.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는 꼭 숨겨야만 하는 비밀처럼 누구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 북한 사회에서 우리가 보고 들을 수 있는 건 오직 김씨 일가의 업적과 찬양뿐이었다. 괴물의 몸이 나를 관통하고 그에 대한 죄책감을 못 느끼는 것 또한, 사회적 책임이 있었다. 아무도 그런 행동이 폭력이라고 알려주지 않았으니까. 폭력은 나쁜 것이라고 벌 받아야 한다는 죄라는 사실도 알려주지 않았으니까. 나를 포함해 많은 아이들이 그렇게 모든 것이 억압되어 있는 불안정하고 무법지대인 곳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었다. 자신이 한 행동이 죄가 되는 행동인지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그들은 그렇게 서로 뒤엉켜 살아가는 것이다.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뭉쳐 살아가는 사람들. 가족이라는 합법적인 이름 아래서 절대 경험하고 싶지 않은 치욕스러운 일을 나는 온몸으로 경험했다. 그리고 무법지대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온전히 스스로 살길을 찾아야 한다는 걸 남들보다 일찍이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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