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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원 Aug 31. 2024

나에게 사춘기란


얼마 전부터 사촌 오빠의 방문이 예전보다 더 잦아졌다. 그동안은 늘 사촌 오빠의 방문이 반갑고 기뻤지만, 어느 순간부터 오빠의 방문이 반갑지 않게 느껴졌다. 어쩌면 당시 내가 사춘기를 겪는 시기여서 그랬을지도모르겠다. 하지만 그때 당시에는 사춘기라는 말도 모를 때였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할머니 집에 너무 자주 오는 오빠에게 할머니 할아버지도 없는데 왜 이렇게 자주 오냐고 물었다. 오빠는 아무렇지 않게 나 보러 온다고 가볍게 말했다. 처음엔 그 말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의 불길한 예감은 얼마 못가서 성폭행이라는 지옥 같은 현실로 다가왔다. 사촌 오빠에게 처음 성폭행을 당한 날. 나는 수치심에 하염없이 울었다.


언젠가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가 없는 낮에 찾아오는 것을 보며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내 생각은 딱 거기까지였다. 사촌 오빠라는 인간이 나에게 그렇게 더러운 짓을 할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했으니까. 그런 나와 달리 사촌 오빠라는 괴물에겐 호기심이 가는 놀이였던 걸까. 확실한 사실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집을 비운 낮시간을 정확히 알고 이용했다는 것이다. 나를 성폭행한 그날 이후로 사촌 오빠는 나에게 더 이상 가족이 아니었다. 나의 순결을 짓밟은 괴물일 뿐이었다.


내가 처음 성폭행 당한 날도 평소처럼 내가 보고싶어 왔다며 자연스럽게 방안으로 들어왔다. 그날의 그 웃음과 말투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징그럽고 역겨웠다. 갑자기 나보고 옷을 벗어보라며 농담처럼 이야기하더니 이내 관계를 가져 보자고 했다. 나는 바로 거절했다. 그러자 또다시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해보자고 했다. 마치 새로운 놀이를 하는 것처럼 가볍고 쉽게 말했다. 나는 싫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나의 단호함에 그 괴물은 순식간에 돌변했고, 눈 깜짝할 사이에 내 몸은 알몸이 되었다. 그렇게 나의 순결이 빼앗긴 순간 그 괴물은 괴성에 가까운 신음소리를 내며 만족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곤 이내 허연 정액을 내 배 위로 뿜어냈다. 더러웠다. 그 순간 내 몸은 내 것이 아닌 것 같았다. 할 수만 있다면 내 몸과 마음을 분리시키고 싶었다. 여성으로서의 신체 변화가 시작된 순간 나는 사촌 오빠라는 괴물로부터 평생 씻을 수 없는 치욕스러운 성폭행을 당했다. 하지만 성폭행을 당한 사실보다 나를 더 힘들게 한 건 이 사실을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날부터 나의 고독한 삶이 시작되었고 할머니 집은 나에게 더이상 안전한 곳이 아니었다. 이제 막 사춘기가 시작되고 여자로서의 정체성과 성장이 시작될 때쯤 나는 가족이라는 탈을 쓴 괴물에게 무자비하게 성폭행을 당하고 고독의 늪에 깊게 빠지게 되었다. 나의 고통과 고독함이 심해질수록 사촌 오빠라는 괴물은 더욱 끈질기게 달려들었다. 마치 먹잇감을 찾는 하이에나처럼 할머니 할아버지 없는 시간을 틈타 매일같이 할머니 집에 찾아왔다. 나는 더이상 그 괴물의 얼굴을 보고싶지 않았기에 부득이하게 혼자 있는 날이면 문을 잠그고 숨어있는 것이 일상이었다. 혹시라도 그 괴물이 와서 문을 두드리는 날에는 창가에서 안 보이는 쪽으로 숨어서 다시 돌아갈 때까지 숨 한번 제대로 못 쉬고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피해자는 나인데 나는 나의 피해를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성폭행이라는 정확한 용어도 몰랐고, 더욱이 이 사실을 내 입 밖으로 내는 순간 우리 집안의 분위기가 어떻게 될지 상상조차 안 됐다. 내가 말을 한다고 해도 해결될 것 같지도 않았다. 결국, 난 혼자 외로운 싸움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악착같이 버티는 것 뿐이었다. 무엇보다 힘든 건 시간이 지날 수록 성폭행을 당한 사실이 나 자신을 더 고독하고 외롭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나의 소녀시절에 보내는 말.


“잘 버텼고, 잘 버티고 있고, 앞으로도 잘 버틸 거야.

살아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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