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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원 Aug 29. 2024

별들의 위로


“할머니 빨리 와서 같이 먹어.”

사촌오빠가 밥을 한술 뜨며 말했다. 외삼촌네 가족이 할머니네와 같은 동네에 살면서 사촌 오빠와 사촌 동생은 할머니 집으로 자주 왔다. 할머니 집 동네에 친구가 없었던 나에겐 사촌 오빠와 동생의 방문이 반가웠다. 특히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집안의 대를 이을 사촌 오빠를 무척 자랑스러워했다. 딸 셋, 아들 하나인 할아버지 할머니에겐 집안의 대를 이을 유일한 장손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부엌 일을 마무리하고 할머니가 밥상에 앉자 조용하던 식사 자리에 활기가 돌았다.


오늘도 할아버지는 말없이 식사만 했다. 동네 사람들은 할아버지를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고 했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저놈의 영감탱이 사람 좋은 척한다며 구박을 주기도 했다. 할머니의 그런 구박에도 할아버지는 늘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줄기침을 하면서도 담배를 말아서 피우는 게 전부였고 할아버지의 유일한 낙은 텃밭에 심은 담뱃잎을 뜯어서 말려 피우는 것 뿐이었다. 그런 할아버지와 달리 할머니는 유난히 말하는 걸 좋아했다. 사촌 오빠 역시 말하는 것을 좋아했다. 어느새 할머니와 사촌 오빠 둘이서만 이야기하고 있었다. 요즘 금값은 어떤지 앞으로 뭘 하면 좋을지 등 주로 현실적인 주제들이었다. 당시 할머니 집 동네에서는 금을 캐서 먹고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는데 나와 사촌오빠도 금캐는 일을 자주 했다.

“고모는 또 언제쯤 돈 좀 보내주려나. 정기적으로 보내주면 참 좋을텐데......”

“거기라고 뭐 돈이 그냥 생기겠어? 보내주면 고마운 거지. 바라면 안돼.”

“에이, 그래도 중국은 여기보다 먹을 것도 많고 잘 살겠지. 안 그래?”

“......”

사촌오빠는 나를 보며 말했다. 나는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누가 도와주길 바라지 말고 알아서 살 생각해.”

할아버지의 말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단호했다. 사촌 오빠는 괜히 머쓱했는지 본인도 안다며 그냥 한번 고모 생각나서 이야기 해봤다며 얼른 말을 돌렸다. 넉넉하진 않지만, 가족들과 함께여서 온기가 도는 저녁이었다.


온기가 도는 방 창문 너머로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밤마다 같은 자리에서 반짝이는 별들이 나는 참 좋았다. 밤이 되면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반짝이는 별들이 나를 위로해주는 것만 같아서였다.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집으로 돌아오지 않은 날도, 오징어 잡으러 나갔던 아빠가 선박사고로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날도, 동생과 이별하던 날도 이름 모를 별들은 같은 자리에서 빛나고 있었다.


내 의지와는 다르게 모든 것이 예상치 못하게 찾아오는 삶의 변화 속에서 오직 밤하늘의 별만이 그 자리 그대로였다. 그런 별들이 나에겐 참 위로였다. 때론 존재 자체만으로도 있어야 할 자리에 그대로 있어 주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깨달았다. 세상 사람 모두가 나에게 비난의 말을 쏟아 낼 때조차도 별들은 같은 자리에서 날 비춰주고 포근함을 느끼게 해줬다. 어둠의 시기를 보내던 나에게 별들의 존재는 위로이자 곧 희망이었다.


“때로는 있어야 할 자리에 그대로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수 있어요. 매일 밤, 밤하늘을 지키는 별들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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