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빨리 와서 같이 먹어.”
사촌오빠가 밥을 한술 뜨며 말했다. 외삼촌네 가족이 할머니네와 같은 동네에 살면서 사촌 오빠와 사촌 동생은 할머니 집으로 자주 왔다. 할머니 집 동네에 친구가 없었던 나에겐 사촌 오빠와 동생의 방문이 반가웠다. 특히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집안의 대를 이을 사촌 오빠를 무척 자랑스러워했다. 딸 셋, 아들 하나인 할아버지 할머니에겐 집안의 대를 이을 유일한 장손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부엌 일을 마무리하고 할머니가 밥상에 앉자 조용하던 식사 자리에 활기가 돌았다.
오늘도 할아버지는 말없이 식사만 했다. 동네 사람들은 할아버지를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고 했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저놈의 영감탱이 사람 좋은 척한다며 구박을 주기도 했다. 할머니의 그런 구박에도 할아버지는 늘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줄기침을 하면서도 담배를 말아서 피우는 게 전부였고 할아버지의 유일한 낙은 텃밭에 심은 담뱃잎을 뜯어서 말려 피우는 것 뿐이었다. 그런 할아버지와 달리 할머니는 유난히 말하는 걸 좋아했다. 사촌 오빠 역시 말하는 것을 좋아했다. 어느새 할머니와 사촌 오빠 둘이서만 이야기하고 있었다. 요즘 금값은 어떤지 앞으로 뭘 하면 좋을지 등 주로 현실적인 주제들이었다. 당시 할머니 집 동네에서는 금을 캐서 먹고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는데 나와 사촌오빠도 금캐는 일을 자주 했다.
“고모는 또 언제쯤 돈 좀 보내주려나. 정기적으로 보내주면 참 좋을텐데......”
“거기라고 뭐 돈이 그냥 생기겠어? 보내주면 고마운 거지. 바라면 안돼.”
“에이, 그래도 중국은 여기보다 먹을 것도 많고 잘 살겠지. 안 그래?”
“......”
사촌오빠는 나를 보며 말했다. 나는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누가 도와주길 바라지 말고 알아서 살 생각해.”
할아버지의 말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단호했다. 사촌 오빠는 괜히 머쓱했는지 본인도 안다며 그냥 한번 고모 생각나서 이야기 해봤다며 얼른 말을 돌렸다. 넉넉하진 않지만, 가족들과 함께여서 온기가 도는 저녁이었다.
온기가 도는 방 창문 너머로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밤마다 같은 자리에서 반짝이는 별들이 나는 참 좋았다. 밤이 되면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반짝이는 별들이 나를 위로해주는 것만 같아서였다.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집으로 돌아오지 않은 날도, 오징어 잡으러 나갔던 아빠가 선박사고로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날도, 동생과 이별하던 날도 이름 모를 별들은 같은 자리에서 빛나고 있었다.
내 의지와는 다르게 모든 것이 예상치 못하게 찾아오는 삶의 변화 속에서 오직 밤하늘의 별만이 그 자리 그대로였다. 그런 별들이 나에겐 참 위로였다. 때론 존재 자체만으로도 있어야 할 자리에 그대로 있어 주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깨달았다. 세상 사람 모두가 나에게 비난의 말을 쏟아 낼 때조차도 별들은 같은 자리에서 날 비춰주고 포근함을 느끼게 해줬다. 어둠의 시기를 보내던 나에게 별들의 존재는 위로이자 곧 희망이었다.
“때로는 있어야 할 자리에 그대로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수 있어요. 매일 밤, 밤하늘을 지키는 별들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