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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원 Aug 30. 2024

사랑으로 이어지는 삶


“집에 밥 좀 있어?”

며칠 후 사촌오빠는 또 밥 먹으러 왔다. 마치 할머니 집에 쌀이라도 맡겨둔 것처럼 배고프면 자연스럽게 찾아오곤 했다.

“할머니 밥 남겨놓은 것 밖에 없어.”

“점심시간이 지났으니까 할머니 저녁에 오겠지?”

나에게 동의를 구하는 듯한 말투로 물었다.

“그 전에 올 수도 있어. 내가 할머니 밥을 먹은 날엔 꼭 오후에 일찍 왔어. 그래서 몇 번이나 혼난 적 있어.”

“그래? 고민되네......배고픈데”

“오빠 집에는 밥이 없어?”

“없어. 요즘 엄마 혼자 일하고 있어서 저녁이라도 제대로 먹으면 다행이야.”

외삼촌이 병명도 모른 채 몇 년째 앓아누운 후로 외삼촌네 집 형편은 더 어려워졌다. 사촌 오빠와 사촌 동생도 외숙모를 도와 금을 캐긴 했지만, 금이라는 것이 매번 잘 나오는 것이 아니기에 허탕 치는 날도 많았다. 오늘도 금을 캐고 왔는데 허탕 치고 왔다며 한탄했다. 힘들게 일하고 집에 갔지만, 밥도 없고 집에 사람도 없으니 할머니 집으로 온 것이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할머니 밥을 내주었다. 사촌 오빠는 순식간에 밥 한 그릇을 해치웠다. 만약 할머니가 와서 뭐라고 하면 자기가 먹고 갔다고 하라며 밥만 먹고 바로 집으로 갔다.


오빠가 가고 나는 저번처럼 할머니가 오후에 와서 밥을 찾으면 어떡하지?라며 마음 졸이며 저녁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 다행히 할머니는 그날 저녁이 되어서야 집으로 왔다. 오늘은 여러 사람 이발해줬다며 뿌듯해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할머니의 배낭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배낭 안에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초코비스켓 과자와 쌀과 옥수수 국수가 있었다. 할머니는 출장 이발사였다. 이발소가 따로 없어서 동네 사람들 머리는 주로 집에서 해주었고, 대부분은 시내를 돌아다니며 이발을 해줬다. 그렇게 몇십 년을 출장 이발을 해오며 할머니에게도 단골 고객들이 생겼다. 고객들이 돈이 없다고 하면 무료로 이발해주기도 하고 때로는 물건으로 이발 값을 받아오기도 했다. 할머니는 오늘은 돈 좀 벌었으니 오랜만에 쌀밥을 해 먹자고 했다.


얼마 만에 맛보는 쌀밥인지. 쌀밥 한 그릇에 온 가족의 미소가 번졌다. 윤기 나는 쌀밥엔 따로 반찬도 필요 없었다. 쌀밥의 고소함이 입안 가득 퍼지며 잠시나마 내일의 먹을 것 걱정이 모두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이가 없어 늘 소화가 잘 안되는 할머니에게 흰쌀밥은 더욱 귀하고 반가운 음식이었다. 오늘도 할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할머니는 그런 할아버지가 늘 불만이었다. 고맙다는 말 한마디, 오늘도 먹을 것을 구해오느라 고생했다는 말 한마디 없이 염소처럼 줄담배만 피우는 할아버지를 답답해했다. 그런 할머니의 구박에도 할아버지는 늘 침묵을 지켰다. 나는 그런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관계가 이해되지 않았다. 저렇게도 다른 두 사람이 어떻게 결혼해서 자식 넷을 낳아서 키웠을까. 할아버지의 모든 것이 불만인 할머니는 도대체 어떻게 할아버지를 사랑하게 된 걸까. 언젠가 나는 할머니에게 할아버지를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할머니는 목도리를 뜨며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할아버지와의 만남에 대해 이야기 해주었다.

“할아버지 젊었을 땐 멋있었지. 그때 한창 전쟁 중이라 방공호에 대피해 있었는데, 그때 웬 군인들도 들어온 거야.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어. 너희 할아버지가 팔로군인지.”

“팔로군? 그게 뭔데?”

“팔로군이라고 6.25 전쟁 때 중국에서 지원 보내준 군인들이야.”

“뭐야, 그럼 할아버지 중국 사람이었어?”

“중국 사람 아니고, 화교지.”

“화교? 그럼 할아버지 아버지가 조선 사람이었나 아니면 어머니?”

“할아버지 아버지가 조선 사람이었어.”

“와......우리 할아버지 대단하네!!”

할머니는 내 말에 동의한다는 듯이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을 이었다.

“지금은 저렇게 볼품없게 늙어버렸지만, 젊었을 땐 굉장했어. 일본 유학도 다녀오고 잘생겨서 여자도 많았어.”

“그럼 할머니 경쟁상대도 많았겠네? 근데 할아버지 어떻게 꼬셨어?”

“꼬시긴 뭘 꼬셔. 너희 할아버지가 먼저 나를 꼬셨지.”

할머니는 새침하게 말했다.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선명한 듯했다. 할머니의 새침한 표정에서 잠시나마 할머니의 처녀 시절을 엿볼 수 있었다. 나는 할머니의 잔소리에도 군소리 안하는 할아버지를 대신해 한마디 했다.

“그래도 할머니는 좋겠다. 구박하고 잔소리 할 사람이 있어서. 아직 사랑해본 적은 없지만,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고 있으면 이런 게 사랑인가 싶어.”

“싱거운 소리 작작 하고 잠이나 자.”

할머니는 괜히 민망했는지 얼른 말을 돌렸다. 할머니의 그런 모습마저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특히, 모나리자 같은 할머니의 민둥 눈썹이 사랑스러웠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제대로 느껴본 적도 제대로 알 수 있는 나이도 아니었지만, 할머니 할아버지의 애정 어린 관계를 보며 나는 느꼈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서로를 미워하기도 좋아하기도 하는 복잡미묘한 애증의 감정이라는 것을. 알다가도 모를 나의 마음처럼 사랑의 감정도 때로는 알다가도 모를 애매한 감정이라는 것을. 오랜만에 맛보는 쌀밥에 밥알을 헤아리듯 나의 감정도 헤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 이야기는 전설도 소설도 아니다. 단지, 사랑으로 삶을 이어온 두 사람의 삶의 한 페이지이자 곧 우리의 삶이다. 즉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사랑의 결과물이고 우리의 삶은 곧 그 사랑을 지키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모두 사랑으로 삶을 이어간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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