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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원 Sep 09. 2024

악몽

“자기는 어디로 갈지 정했어?”


“아직 고민 중이에요. 미국으로 가고 싶긴 한데 시간이 오래 걸려서......”


“미국은 오래 걸리긴 하지. 여기 통역으로 따라오는 아가씨도 미국 가겠다고 했다가 1년 넘게 여기 있게 됐대.”


“좀 더 고민해 보고 결정하려고요. 언니는 어디로 가려고요?”


“나야 한국으로 가야지.”


“언니, 그거 알아요. 저기 천장에 얼룩 있잖아요. 저 얼룩이 핏자국이래요.”

여자는 얼룩진 천장 한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피??”


“네, 전에 여기 만삭 임산부가 있었는데 일행들과 말다툼하다가 일행이 술병으로 임산부 배를 찔렀대요. 그때 튄 피라고 하더라고요. 말만 들어도 얼마나 끔찍한지......”


“세상에, 무슨 일이었길래 임산부를 찔렀을까...... 그럼 아이는? 살았대?”


“모르죠, 죽었다고 했던 것 같기도 하고...... 하여튼 여기 안에서도 조심해야 돼요.”


“그러게, 다들 예민해져 있으니 조심해야지.”

둘의 대화가 잠시 멈춘 사이 갑자기 누군가 “야! 미친년아” 하고 고함을 질렀다. 방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소리 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한 여자가 술을 마시고 행패를 부리고 있었다. 무슨 일 때문인지는 몰라도 상황으로 봐선 일방적으로 술 먹고 술주정을 부리는 것으로 보였다. 상대방은 별다른 대응 없이 무시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 편이 현명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모두가 예민해져 있는 상황에서 괜히 맞붙어 싸우다간 앞서 말한 그런 사건이 또 발생할 수도 있으니까. 다행히 상대방의 무응대로 주사를 부리던 여자도 더 이상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모두가 그 상황을 무시하고 있을 때 나는 나서서 말려야 되겠다는 생각에 엉거주춤 일어나려고 했다. 그런 나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옆자리에 있던 중년의 여성이 조용히 말했다.

“어른들 일은 어른들이 알아서 하게 둬. 괜히 나섰다가 무슨 일 당할지도 몰라.”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때 또 한 번 큰 소리가 났다.

“정신 차려! 정신 차리라고!! “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잠깐 잠든 사이 악몽을 꿨다. 온갖 두려움과 불안함으로 가득했던 태국 교도소에서의 일이 너무 생생해 꼭 현실 같았다. 나는 정신 차리기 위해 생수를 한 컵 마셨다. 창밖을 내다보니 회색 빌딩사이로 함박눈이 소복이 내리고 있었다. 흩날리는 함박눈 사이로 먼저 입소한 사람들이 출소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의 미소에서 자유와 행복함이 보였다. 목숨을 걸고 사선을 넘어온 사람들이기에 이 상황이 더 감사하고 행복할 것이다. 나 또한 그 상황을 직접 겪었기에 그들의 웃는 모습이 더 뭉클했다.


밝게 웃으며 떠나는 그들의 모습에 어느새 나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눈물이 많아졌다. 별것 아닌 일에도 울컥하고 눈물이 쏟아졌다. 나는 누가 보기 전에 얼른 눈물을 훔쳤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었지만 말이다. 그때 누군가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시계를 확인해 보니 저녁 먹을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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