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연 공기가 가득 내려앉은 낯선 방. 낮이지만 방안은 어두웠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얼마 후 조사관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는 자세를 바로잡고 앉았다.
“안녕하세요.”
조사관은 들고 온 서류들을 책상 위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나는 조사관의 인사에 왠지 모르게 긴장이 됐다. 조사 준비를 다 마친 조사관이 내 얼굴을 한번 보더니 이제 조사를 시작하겠다며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조사관은 키가 크고 긴 파마머리에 눈매가 날카로웠다. 절대 거짓말을 하면 안 될 것 같은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나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조사관은 거짓말은 안 하는 게 좋다며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하게 말했다.
“2011년도 5월에 탈북했네요.”
“네”
조사관은 자료를 보며 말했다. 태국에서 기본적인 인적조사를 하고 오기에 그 자료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고향에 있을 땐 어디서 살았어요?”
“외할머니 집에 살았어요. 중간에 큰 이모 집에 가서 살기도 했고요.”
“큰 이모 집은 어디였어요?”
“화대에 있어요. 함경북도에 있는 작은 군이에요.”
“함경북도면 지도 맨 위쪽에 있는 곳인가요?”
“네, 맞아요.”
“부모님은 무슨 일 하셨어요?”
“아빠는 경찰이었는데 저 어렸을 때 돌아가셨고, 엄마는 아빠가 돌아가 시기 1년 전에 행방불명 됐어요.”
“아빠는 어떻게 돌아가셨어요?”
“오징어 잡으러 바다에 나갔다가 선박사고로 돌아가셨어요. 엄마가 행방불명되고 아빠 혼자 저와 동생 먹여 살려야 했거든요.”
“그랬구나, 많이 힘들었겠네요. 아빠가 경찰이라고 했는데 갑자기 배를 어떻게 타게 됐어요?”
“엄마가 행방불명되고 아빠가 경찰서에서 권고사직 당했거든요.”
“왜요?”
조사관은 정말 궁금했는지 나의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질문을 다시 던졌다.
“그때 당시에 행방불명이라고 하면 다들 중국으로 갔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엄마가 행방불명되고 얼마 후에 아빠가 경찰서에서 권고사직을 당했죠. 동네 사람들도 우리 엄마가 중국으로 간 것 같다며 수군거렸고요.”
“사람들이 수군거릴 때 소원씨도 힘들었겠어요?”
“네, 그래서 학교도 안 갔어요.”
“친구들이 놀려서요?”
“네......”
“오늘 조사는 여기까지 할게요. 방에 가면 A4 종이와 볼펜이 있을 거예요. 추가로 생각나는 게 있거나 말하고 싶은 내용 있으면 적어서 내일 챙겨 오면 돼요. 꼭 써야 되는 건 아니니까 너무 신경 쓰진 말고요. 고생했어요. 내일 만나요.”
나는 가볍게 머리 숙여 인사하고 바로 나왔다. 조사실 앞에는 누군가 나를 데려가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어딜 가든 나와 함께 하는 안내자가 있었다. 경호원도 아니고 가이드도 아니고 안내자다. 나는 그들이 안내하는 대로 움직여야 했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화장실 가는 것뿐이었다. 물론, 조사 때는 화장실도 허락하에 다녀와야 했지만. 내가 안내자와 함께 간 곳은 앞으로 2주간 조사하면서 머물게 될 독방이었다. 문도 마음대로 열 수 없었다. 안내자가 열어줘야만 들어갈 수 있고 나올 수 있었다. 안내자는 방문을 열어주며 몇 가지 안내사항을 나에게 알려주고 떠났다.
독방에 있는 것이라곤 침대 하나 책상 하나 화장실 뿐이었다. 나는 오랜만에 혼자만의 공간에서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자유는 없었지만 적어도 안전은 보장되었으니까. 책상 위에는 조사관이 말한 빈 종이 한 장과 볼펜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국정원에 온 것이 실감 나는 순간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