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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원 Sep 06. 2024

달빛의 기억

개성 이모 집에 온 후로 달빛이 유난히 밝은 밤이었다. 곤히 잠든 동생과 달리 나는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던 밤. 달빛은 나에게 일어날 일을 미리 알기라도 했듯 그 자리에서 날 밝게 비춰주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달빛 속 절구질하는 토끼의 모습이 희미해지고 나도 어느새 잠이 들었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누군가 나의 입을 꽉 막고 있는 듯한 숨 막히는 답답함에 눈을 떴다. 눈을 뜬 순간 낯익은 얼굴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사람은 바로 새 이모부였다. 그 사람은 내가 일어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온몸으로 짓누르고 있는 사람의 얼굴을 확인하고 나는 소리 없이 몸부림쳤다. 하지만, 이미 그 사람의 손아귀에 잡혀 있는 상태라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마치 온몸이 꽁꽁 묶여있는 것처럼 무기력한 내 모습에 잠시였지만, 내 자신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다. 내가 정신 차린 것을 확인한 그 사람은 나를 번쩍 들어 안고 동생들이 깨지 않게 옆방으로 조용히 이동했다. 나는 당장이라도 소리쳐서 더럽고 추한 행동을 하고 있는 그 사람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지만, 마음속으로만 울부짖을 뿐 입 밖으로는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다. 혹여나 동생들이 깨서 이 모습을 목격하기라도 한다면 나뿐만 아니라 동생들에게까지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제발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기다리며 눈을 질끈 감고 버텼다. 그 사람은 잔뜩 흥분한 상태로 내 위에서 씩씩대며 즐기고 있었다. 악마의 얼굴이 따로 있는 게 아니었다. 인간의 탈을 쓴 악마라는 말을 이런 것을 두고 하는 이야기였나 싶을 정도로 가증스럽고 더러워 보였다. 그 뒤로도 그 괴물은 이모가 장거리 출장을 갈 때마다 나를 성폭행했다. 나는 이모가 집을 비울 때마다 밤이 두려웠다. 그 괴물이 또 어떤 얼굴로 나를 찾아와 그 짓을 할지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그 괴물의 더러운 짓이 행해지는 날이면 달은 유난히 밝게 빛났다. 어쩌면 달은 그놈의 더러운 짓을 더 밝게 비춰보고 기억해 주려고 그랬던 것일까. 정말 그런 거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기분 나쁠 정도로 부드러운 한 손으로 소리를 지르지 못하도록 내 입을 틀어막고 한 손은 내 아랫도리에 내려가 있었다. 나는 자는 동생이 깨기라도 할까 봐 숨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새 이모부라는 괴물은 잠에서 깬 나를 확인하고는 손가락을 자기 입에 갖다 대며 조용히 하라고 했다. 그리곤 자기 물건을 얼른 내 아랫도리에 집어넣었다. 그 괴물의 묵직한 물건이 내 아랫배를 찌르는듯한 고통에도 소리 한번 못 내고 이 악물고 버텼다. 그놈은 혹여나 내가 소리라도 낼까 또다시 한 손으로 내 입을 틀어막고 내 위에서 씩씩거렸다. 유난히 밝은 달빛에 그 괴물의 행위는 더욱 선명하게 보였고 내 눈물은 소리 없이 흘렀다. 한참을 씩씩대던 그 괴물은 자기를 외면하고 있는 나의 얼굴을 한번 쓰다듬고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미소를 지으며 일어나서 아무렇지 않게 안방으로 갔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 괴물 같은 사촌 오빠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지 몇 년도 채 안돼서 또 새 이모부라는 두 번째 괴물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할머니 집에서 사촌 오빠라는 괴물에게 당했을 때와 같이 이 사실을 이모에게 말할 수가 없었다. 바람난 이모부와 이혼하고 새 이모부를 만나서 이제 막 행복하게 살고 있었기에 더 말할 수 없었다. 나로 인해 이모의 가정이 파탄 날 것 같아서, 무엇보다 내 동생과 이모까지 이런 고통을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나는 이모 집에서도 또 도망쳐야 했다. 오랜만에 만난 동생과도 이별해야만 했다. 그곳에서 도망 나오지 않으면 나는 평생 새 이모부라는 괴물에게 성폭행을 당할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또다시 고독하게 혼자 힘들어하던 그때, 9살 때 행방불명 됐던 엄마로부터 중국으로 오겠냐는 소식을 받았다. 그 순간 엄마가 이 지옥 같은 현실에서 나를 구원해 주는 것 같았다. 사실 동생을 혼자 두고 가는 것이 마음에 걸려 잠시 고민했지만, 그 괴물로부터 벗어날 방법은 엄마에게 가는 것뿐이었기에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엄마의 전화 한 통으로 나는 다시 생존할 수가 있었다. 살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했던 그때 그 순간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저려온다. 전생에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리도 가혹한 인생을 살게 하는 것인지. 더 이상의 아픔도 고통도 없길 바라며 목숨 걸고 엄마를 만나러 가던 날. 잠시였지만, 그 괴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음에 안도했다. 사실 중국으로 가는 길이 더 위험한 길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당시의 현실이 나에겐 더 고통스러웠기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어떻게 그 힘든 시간을 견뎌냈는지 모르겠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해야 할 가족들에게 폭력을 당하며 사실 나는 어른들을 불신하게 됐다. 그래서였을까 그때부터 나는 내 삶은 온전히 나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유일무이한 존재. 어쩌면 누군가는 이런 상황을 반복해서 겪게 된다면 삶을 포기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오히려 내 삶이 더 귀하게 여겨졌다. 무엇보다 살아야겠다는 굳은 의지가 생겼다. 비록 그 괴물들이 나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줬지만, 그 상처는 결국 시간이 흐르면 뱀이 허물을 벗듯 내 마음속에서 사라져 갈 테니까. 그들이 나의 육체를 탐했을지언정 수정처럼 맑은 나의 영혼까진 가질 수 없었다. 삶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포기하지 않는 자세이다. 어떤 순간이 오던지 내가 포기하지 않는다면 삶도 나를 포기하지 않는다. 죽도록 힘든 순간이 찾아온다면 어떤 일이 있어도 나는 살아남아야겠다고 생각해 보길. 사람은 생각의 지배를 받는 영적인 동물과도 같아서 내가 어떤 생각으로 삶에 임하는지에 따라 내 삶의 방향도 달라진다.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루저보다는 생존자가 되어 삶의 긴 여정을 보내는 것만큼 값진 일이 또 있을까. 우리는 모두 이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사실.


내가 성폭행을 당할 때마다 유난히 밝았던 달빛은 나에게 위로였고 친구였다. 그리고 그 순간마다 달빛은 더욱 밝은 빛으로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순간만 잘 버텨보자. 시간은 흐르고 지옥 같은 이 시간도 분명 끝이 있을 테니까. 내가 기억해 줄게. 혼자라고 생각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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