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다고 했던가. 큰이모와 그 남자의 관계도 어느새 가족들에게 들키고 말았다. 먼저 알게 된 것은 남자 쪽 가족이었다. 남자의 행동이 집에서 눈에 띄게 달랐던 모양이다. 어느 날 갑자기 희정이 엄마라는 사람이 큰이모 집으로 찾아왔다. 나는 집에 지금 아무도 없다고 저녁에 다시 찾아오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아줌마는 나를 보며 “니가 그 청진에서 온 조카구나.”라고 말했다. 그리곤 저녁에 다시 오겠다며 나갔다. 나는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가볍게 넘겼다. 그리고 그날 저녁 일이 터지고 말았다. 큰이모가 들어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그 아줌마가 따라 들어왔다. 들어오자마자 그 아줌마는 큰이모에게 달려들어 머리채를 잡았다. 큰이모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하여 뭐하는 짓이냐며 소리를 질렀다.
“뭐하는 짓이냐고? 네년이 내 남편이랑 놀아난 짓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지 이년아. 어떻게 감히 내 남편과 그런 짓을 할 수가 있어!”
“이거 놓고 이야기해. 그러는 네년은 남편 관리도 제대로 못 해놓고 나보고 놀아났다고? 남편 관리나 똑바로 해놓고 지껄여.”
큰이모와 아줌마는 한치의 물러섬도 없었다. 서로 머리채를 잡고 뒤엉킨 채로 몸싸움을 했다. 내가 온몸으로 둘의 싸움을 말렸지만 나의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그때 때마침 사촌 오빠가 와서 이게 무슨 일이냐며 일단 뜯어말렸다. 사촌오빠의 힘으로 뜯어말리고 난 후에서야 서로 떨어지게 되었다. 오빠는 어리둥절해하며 왜 싸우냐고 물었다. 화가 난 아줌마는 너희 엄마한테 물어보라며 큰이모를 째려봤다. 영문을 모르는 사촌 오빠는 아무리 그래도 어른들이 머리채 잡고 싸우는 건 아니라며 중재했다. 하지만, 그런 오빠의 중재에도 큰이모와 아줌마의 싸움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와 사촌 오빠는 싸움을 말리다 지쳐 차라리 둘 다 피터 지게 싸워보라고 더이상 말리지 않았다. 다행히 그때 큰이모부가 집으로 왔고, 싸움을 보던 큰이모부가 이유가 뭐가 됐든 이 집에서 싸우지 말라고 했다. 큰이모부의 그만 하라는 말에도 계속해서 싸우자 큰이모부는 집앞에 있는 물건들을 집어던지며 불같이 화를 냈다. 그때에서야 큰이모와 그 아줌마는 싸움을 멈췄다. 큰이모부는 그 아줌마에게 당장 우리 집에서 나가라고 소리쳤다. 아줌마는 어쩔 수 없이 큰이모 집에서 나갔다. 정신없이 싸우는 사이 사촌 언니도 일 끝나고 집으로 왔다. 우리는 서로 큰이모부의 눈치를 살폈다. 큰이모는 민망했는지 혼잣말을 하며 흐트러진 머리를 정리했다. 큰이모부는 아무 말도 없이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동안 늘 말없이 온순하기만 하던 큰이모부가 불같이화내는 모습을 처음 봤다. 그리고 그 모습엔 그동안의 화가 축적되어 있었다. 분명 큰이모부는 큰이모의 부적절한 관계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그동안 한 번도 티를 낸 적이 없었다.
그날 저녁은 가족들이 다 같이 모여앉아 밥 먹을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누구도 큰이모부의 마음을 온전히 헤아릴 수 없었기에 나와 사촌 언니, 오빠 모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큰이모와 큰이모부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 이후 큰이모와 그 남자와의 부적절한 관계는 끝이 났다. 그도 그럴 것이 작은 시골 마을에서 서로가 서로의 가족을 다 아는 사람들이 그런 관계를 이어왔으니 소문나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 아줌마가 큰이모집에 찾아와 한바탕 난리를 치고 난 후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다. 그 후 큰이모와 그 남자는 많은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았다. 정말 다행인 건 큰이모부가 큰이모와 이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부처가 있다면 이런 사람일까. 나는 큰이모부가 정말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고도 함께 사는 게 가능하다니. 이것 또한 어린 나는 이해 못하는 어른들의 세계인 걸까. 사랑하는 남편을 배신하고 외간 남자와 바람피운 사람. 엄마라는 이유로 자식들에게 칼을 휘두르고 몽둥이로 매를 두는 사람. 살기 힘들어서였을까? 몇 달간 큰이모 집에서 봐온 큰이모의 모습은 여러 가지로 놀라웠다. 나에겐 한없이 다정한 이모가 화가 나면 당신의 자식들에겐 흉기를 휘두르는 모습이 꼭 이중인격자 같았다. 그런 이모의 모습에 가끔 사촌 언니는 산에 올라가 죽고 싶다고까지 했다. 사촌오빠 또한 몽둥이에 피가 묻어나올 정도로 맞는 걸 본 적이 있다. 그 당시엔 말을 안들으면 매를 드는 것이 자연스러운 훈육이었을까.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엄마라는 이름 아래 아이들을 폭행하고 삶의 무게에 짓눌려 자식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또 다른 폭력의 현장이었다. 큰이모의 가정에는 사랑과 배신 폭력과 무질서가 난무했고 오로지 핏줄이 섞였다는 이유만으로 한 지붕 아래 사는 사람들이었다.
어쩌면 이게 정말 인간의 참 모습일까. 아니면 인간의 본성에서 가장 악한 모습일까. 선과 악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나를 포함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들에겐 선보다는 악이 더 많은 건 아닌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1퍼센트의 선함이 99퍼센트의 악을 이기는 것은 아닐까. 자신의 욕망과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하고 그 욕망을 쫓아가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본성이자 악에 가까운 감정이 아닐까. 좋은 사람 선한 사람이 되기 위해선 많은 것을 억누르고 포기하고 살아야 하는 우리의 삶. 한 계절만 사는 식물처럼 인간도 찰나의 순간을 살아가지만, 그 찰나의 순간을 기록하는 방법은 각자 너무 다르다. 나에겐 성폭력의 순간은 평생 잊지 못할 치욕스러운 순간이자 지울 수만 있다면 지우고 싶은 얼룩이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해야 할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폭력을 당했으니까. 과연 가족이란 무엇인지 의문이 든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해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만들고 그 가족을 온전하게 지켜가는 일은 생각보다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나는 아주 어릴 적 깨달았다. 적어도 성인이라면 내가 한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고 그것을 지킬 의무가 있는 건 아닐까.
사랑과 배신 폭력의 현장을 일찍이 경험하며 느꼈다. 결국, 이 세상엔 영원한 건 없다는 것을. 단지 서로의 합의하에 얼마다 더 긴세월 관계를 유지하느냐의 차이만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나에겐 좋은 좋은 자극제가 되었다. 적어도 나는 이런 삶을 살지 말아야겠다는 계기가 되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