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래, 좀 천천히 해요.”
“조용히 해. 조카 깨면 어쩌려고”
큰이모와 정체모를 남자는 격하게 서로의 옷을 벗기며 뒤엉켰다. 저녁도 아닌 대낮에. 아마도 일부러 큰이모 가족들이 없는 낮에 온 것 같았다. 점차 큰이모와 그 남자는 더욱 서로의 몸을 파고들었고 이윽고 두 사람의 신음소리가 온 방안에 울려퍼졌다. 나는 두 눈을 꼭 감고 윗방에서 숨죽이고 자는 척 했다. 큰이모 집 구조는 방 두 칸에 부엌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20센치 정도 되는 문턱을 기준으로 윗방 아랫방으로 사용했다. 일자형 구조로 순서대로 윗방, 아랫방, 부엌이 있었다.
무더운 여름엔 윗방이 선선해서 나는 항상 그 방에서 잠을 자고 놀았다. 그날도 난 윗방에서 낮잠을 청하던 중이었다. 하지만, 큰이모와 낯선 남자의 방문으로 나는 잠을 잘 수 없었다. 두 사람의 관계가 끝날 때까지 나는 꼼짝없이 누워있었다. 극도로 흥분한 신음소리를 끝으로 둘의 관계가 끝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나는 잠에서 깬 척 일어나 인사를 했다. 큰이모는 일어났냐며 낯선 남자를 소개해줬다. 함께 일하는 농장의 상사라고 했다. 큰이모부와 달리 피부도 하얗고 마른 체구가 꼭 능구렁이처럼 보였다. 큰이모와의 부적절한 관계를 알게 되어서인지는 몰라도 그 남자가 이상하게 얄밉고 보기 싫었다. 나는 대충 인사하고 밖으로 나갔다. 큰이모는 어디 가냐고 물었다. 나는 조금 답답해서 바닷가에 좀 다녀오겠다고 말했다. 항상 큰이모 집 식구들이 일을 나가면 나는 집을 지키느라 어디 나가지도 못했었는데 이참에 바닷가 바람을 좀 쐬고 싶었다. 내가 집을 나서자 몽실이도 나를 따라 나섰다. 몽실이는 오늘도 신난 표정으로 입을 활짝 벌리고 혀를 조금 내민 채 핵핵대며 나보다 앞서 뛰었다.
나는 바닷가를 걸으며 생각했다. 성관계란 인간에게 있어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요건이지만, 내가 보고 경험한 이 관계들은 전혀 아름답지 않았다. 꼭 동물의 세계 같았다. 자기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탐하는 동물. 이성적인 판단과 감정도 구분 못하는 것 같았다. 인간과 동물이 유일하게 다른 점은 말을 할 수 있으며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것인데, 왠지 이 모든 게 적용 안되는 것 같았다. 오로지 자신의 쾌락을 위해 사는 것 같았다. 나를 성폭행한 사촌이라는 괴물도 큰이모도 그 능구렁이 같은 남자도.
그날 저녁 온 가족이 모여앉아 밥을 먹었다. 낮에 있었던 일은 아무도 모른 채 큰이모 가족들은 이야기를 나눴다. 사촌 언니는 언니 친구 동생이 오늘 갑자기 사라져서 친구가 힘들어한다며 걱정했고, 사촌 오빠는 오늘도 담임이 지각한 학생들을 일렬로 세워놓고 지시봉으로 때렸다고 했다. 큰이모는 본인 일처럼 공감을 잘해줬다. 하지만 큰이모와 달리 큰이모부는 아무 말도 없이 밥 먹는 데만 집중했다. 나는 괜히 큰이모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나도 모르게 큰이모부가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평소보다 더 큰이모부에게 잘해드렸다. 큰이모의 부적절한 관계에 대해 아는지 모르는지 큰이모부는 묵묵히 당신의 할 일만 했다. 때로는 그런 이모부가 답답해서 화가 나기도 했다.
이후로도 큰이모와 그 남자의 부적절한 관계는 계속해서 이뤄졌고, 나중엔 대놓고 가족들 없는 낮에 와서 나를 심부름을 보내놓고 관계를 가지기도 했다. 정말 미친 것 같았다. 어쩜 둘 다 가정있는 사람들이 오로지 자신들의 쾌락을 위해 저렇게까지 할 수 있는지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며 할머니 집에서 당한 그날의 악몽이 자꾸 떠올라 큰이모 집에 있는 것도 힘들어졌다. 이곳도 더 이상 내가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나는 결국, 몇 개월 만에 또 다시 다른 곳을 찾아 나서야 했다. 생존을 위해 원하지 않는 여행을 하는 느낌이었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다. 언제까지나 이렇게 살진 않을 거라고. 나에게도 분명 좋은 날이 올 거라고. 그러니까 포기하지 말자고. 결국, 삶은 포기하지 않는 사람의 편일거라고.
“좋은 날이 올 거라는 희망, 삶은 포기하지 않는 사람의 편일 것이라는 희망”
나는 힘든 날들을 희망이라는 주문을 통해 버텨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희망은 나에게 한줄기 빛과도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