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젊은 사람들은 문제야."
우리는 아주 오래 전부터 이 말을 듣고 살았다. 그 말을 듣고 자란 사람들 역시 늙어서는 똑같은 소리를 아랫사람들에게 내뱉곤 한다. 한마디로 젊은 사람들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 자체가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대체 왜 젊은 사람들은 항상 문제이고 청춘은 왜 항상 방황을 하고 아픈 것일까. 안정된 것도 없고 확실한 것도 없으니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노심초사하며 살기때문이다. 그런 청춘을 두고 우리는 말들이 많다. 연약해빠졌다, 청춘은 위로 받을 나이가 아니다, 삶의 과정이니 이겨내야 한다고 지적하는 어른들이 있는가하면 수저론을 운운하며 사회 구조가 젊은이들에게 절망만 안겨주었다며 세상 탓만 하는 어른들도 있다. 하지만 그런 훈계와 불평은 정작 그들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나는 청춘이라면 늘 힘과 자신감이 넘쳐나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런데 명리학을 공부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사람마다 타고난 기질, 역량, 환경, 가치관이 다른데 뭉뚱그려 '청춘은 이래야만 한다.'라고 정의내려서는 안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소박하고 평범한 행복을 꿈꾸며 사는 젊은이에게 더 큰 야망과 열정을 가져라고 말하고, 패기가 넘치고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젊은이에게 안전한 게 최고니 너무 나대지말라고 말한들, 그 말을 듣고 삶을 바꿔야겠다고 마음먹는 청춘은 몇이나 될까. 그들은 오히려 자신들이 잘못 살고 있는 것인가 하며 혼란스러워할 뿐이다.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누구보다 자기 자신이다. 자기만의 스타일을 찾아가는 것도 그들의 몫인 것이다. 그러니 아무 것도 모르면서 조금 더 살아봤다는 이유로 섣부른 위로나 조언을 해서는 안 될 듯 하다.
우리는 무전여행을 하고 대기업 취업에 성공하고 스타트업을 차리는 젊은이들에게 이게 진짜 청춘이라며 칭찬일색이다. 그러나 자신을 혹독하게 몰아가고, 깨지고 부서져야만 청춘이 되는 것은 아니다. 청춘은 모험과 도전을 하지 않아도 좋고 그 반대로 용기있게 밀어붙여도 좋은 것이다. 뭔가를 이뤄내지 않아도, 화려하지 않은 무채색의 인생도, 자랑할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삶도 진정한 청춘이 될 수 있다. 청춘의 의미는 자신이 부여하는 것이다. 삶은 그 모양이 어떻든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되기 때문이다. 자신의 인생에 책임만 질 수 있다면 어떤 모습을 하고 살아도 괜찮은 것이다.
흔히들 청춘을 안정기로 들어가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특정한 시기와 목표를 위해 희생되어 마땅한 시간이라고 생각되기도 한다. 하지만 청춘을 그런 시간을 준비하는 과정이라고만 생각하다보면 놓치게 되는 것들이 많아진다. 사람들은 이 순간만 지나면 편안해지겠지 생각하며 살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그 순간을 그리워하고 후회를 한다. 청춘은 목적달성을 위한 과정이 아닌 삶 그 자체이다. 청춘을 인내와 고통의 시간이라고 여겨서는 곤란하다. 현재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그저 있는 그대로 담백하고 겸허히 받아들이며, 매순간 현재 살아있음을 느끼다보면 비로소 내가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 그 시기에만 가질 수 있는 소중한 것들이 발견된다. 그 발견이 쌓여 지혜가 되고 지혜로운 사람은 고통에서 멀어지게 된다. 더이상 아파해야 할 이유도 없다. 그러니 아프지 않은 청춘도 불가능해 보이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