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지옥에서 오셨나요?
"이 정도의 성과를 만들었다는 것은 참 놀라운 일이죠. 대부분 사람들이었으면 중도에 포기했을 겁니다."
"네. 진짜 대단하십니다.."
"사실 뭐 제가 하는 일들에 더 놀라운 과정들이 숨겨져있지요. 다른 분들이 잘 이해를 못할 것 같아서 이야기를 안드릴뿐이지, 따라오실수만 있다면, 뭐 더 놀라우실 겁니다."
나는 불편한 기분이 들어 애써 대화의 주제를 돌려보려 애꿎은 시도를 해본다.
"아. 맞다. 근데 김 대표님도 이번에 좋은 일이 있으셨다고 하던.."
(대화를 끊으며)
"그거야 뭐. 누구나 성과를 만드는 부분이죠. 제가 한 일은 결국 김대표의 그런 결과와는 비교가 안되는거죠."
"아 그러시군요.."
"성과도 정도가 있는 거잖아요. 이것도 한번 봐 보실래요? 저는 요즘 여기에.."
(대화가 길어질 수록 점점 더 지쳐만 간다.)
자기애는 누구나 가지고 있다.
정도와 경도의 차이일뿐, 우리는 스스로를 어느정도 만큼은 사랑하고 있다.
이 힘든 사회 속에서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냐만은
나는 지옥에서 온 이들이 가지고 있는 조금 다른 자기애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싶다.
그들에게 자기애는 우리의 것과는 조금 다르기 때문이다.
그 차이는 바로 자기 자신만이 우월하다는 사실.
갉아 먹을 누군가가 있어야
그것이 자기애의 표명이 된다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지켜야 할 거대한 자존심의 성벽이 있다.
성벽안을 들어오게 받은 소수는
성과를 외치고, 받아줘야 할 청중.
다시말해서 자신에 대한 존중, 성과에 대한 격려만을 외칠 누군가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성에 오래 머물면 머물수록 불편하고 어두운 피로감을 느끼게 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들에게는 자존감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바닥을 치는 자존감을 지키기위해
자존심이라는 벽돌로 두터운 성벽을 짓고 자신을 꽁꽁 둘러싸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자기애와 구분짓는 자기애적 병적 증상이라 말한다.
SNS를 하는 사람들에게서 나는 이 지옥인들의 특징을 쉽게 살펴보곤 한다.
그들은 당연히 자신의 잘나고 빛나는 모습만을 공유하려고 한다.
실상 내면에서 자라나고 있는 암흑같은 일들은 그들은 철저하게 외면해버린다.
자신의 삶은 무너지고, 붕괴되고 있지만,
그들은 결코 자신의 아픔을 누군가에게 발설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의 분노는 단 한가지로 귀결된다.
자신의 못난 실체가 여실히 드러나는 그 순간,
지금 그 자체를 견디지 못한 말은 고삐가 풀린것처럼 누군가에게 분노를 쏟아낸다.
이는 어떤 특별한 상황과 시간에 구애받지않고, 건강하게 자신의 분노를 표현하는 우리와는 전혀 다른 색채의 분노이다.
타인을 제거하더라도
주변에 무엇을 바꾸더라도
자신의 빈약한 자존심만은 지키려는 그들의 본심이
분노라는 매체를 통해 드러날뿐이다.
이들에게는 연결감이 아닌 우월성이 SNS의 유일한 목적이며,
인정받지 못하는 그 순간은 자신의 삶에 아무런 이유를 찾을 수 없다.
그래서 누군가를 진심 어리게 공감하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사실 이 지옥인은 피부로 느껴지는 기분과 달리 가여운 부류의 사람들이다.
내면의 아이가 슬퍼 울고 있는 것조차 모르는 무거운 가면을 쓴 고통받는 이들이다.
부모로부터 깊은 공감을 받지 못했던 불안정한 애착관계 속에서 자기애는 생존의 수단이 되었고,
성과와 결과만을 자신의 존재라고 굳건하게 믿는 무의식의 반영이 현재 아이의 눈물이 되었음을 그들은 모르고 있다.
혹시 주변에 자기애를 폭력적으로 뿜어대는
이 지옥인을 본다면,
(이들을 조금 더 가엽게 여겨)
그들에게 공감 한스푼 전해주면 어떨까?
내 주변에 서식하고 있는 자기애 환자들에게
그들이 스스로 인지하지 못한 마음속의 아픔을 조금 너그러이 바라볼 수 있기를 바라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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