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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송 Feb 02. 2020

너 자신을 알라

인생에 큰 전환점을 맞이하다.

큰 사건(?)을 경험하고 난 후 ‘경찰관’이라는 직업에 대해 생각하는 첫 계기가 되었다.

아직까지는 무대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린 터라 더 넓은 곳에 가서 뮤지컬에 대해 배우고 무대에 서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래. 성공하려면 서울에 가야 해. 우선 엄마에게 동의를 구하고 집을 구해보자. 이제 독립해야 할 때다.’라는 강한 결심과 함께 엄마에게 달려가서 용돈은 알아서 할 테니 서울에 집을 구할 수 있게 지원을 해달라고 졸랐다.




엄마는 저 먼 미래까지 다 알고 계신 듯하다. 1년도 못 버티고 집으로 다시 올 것을 아시면서도 ‘경험’이라는 소중한 선생님을 만나게 해 주기 위해 기꺼이 서울 신림동에 작은 원룸을 얻어주셨다. 그때부터 인생에서 큰 전환점을 맞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집도 구했으니 이제는 행동으로 옮길 차례다. 여러 군데에 오디션 지원서를 넣으며 프로필을 보내기 시작했다. 서울에 가자마자 할 일이 없어서 하루 종일 원룸에서 나오지 않은 적도 있었다.

처음으로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경험했다. 엄마가 해주신 따뜻한 밥이 생각나기 시작했다. 한번 뱉은 말은 지켜야 하기에, 이제 시작이기에 애써 감정을 억눌렸다. 열심히 기획사와 뮤지컬 오디션을 보러 다녔지만 모두 불합격이었다.     




‘지방에서 올라와서 이렇게 생활하는 게 쉬운 게 아니구나. 그동안 정말 편하게 지낸 거였구나.’      




크리스천인 나로서 서울에 오면 꼭 하고 싶었던 일이 있었다. 바로 블랙가스펠 합창단인 <헤리티지 메스콰이어 스쿨>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다 같이 모여 가스펠을 부르며 찬송하는 합창단이다. 몇 주 과정을 이수하면 함께 공연도 하고 찬양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인생에서 이렇게 자유롭게 노래를 불렀던 적이 있었던가. 늘 음정은 맞지 않는지, 호흡은 불안하지 않은지 전전긍긍하며 노래를 불렀었는데 모두들 한마음이 되어서 즐겁게 재미있게 노래를 부른 적은 처음이었다. ‘음악’과 ‘노래’의 본래의 목적을 찾은 듯했다.




노래를 위한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닌 신께 생명으로 하루를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하는 ‘진실한 마음’을 담아 부르는 것이 음악의 근원이요, 노래의 목적이 아닐까.     

지금까지도 그때의 벅찬 감정을 잊지 못한다. 헤리티지 메스콰이어를 이끄시는 선생님들을 TV로 볼 때마다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함께 노래 불렀던 언니, 오빠, 동생들도  마음속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인연들이다. 힘든 서울생활을 블랙가스펠을 통해 견딜 수 있었던 것이다.      




용돈은 스스로 벌기로 했으니 오전에 잠깐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근처에 서울대학교가 있었다. 학생 식당 안에 카페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구하고 있는 것이다. 얼른 지원서를 넣었고 면접을 본 결과 모두 합격하여 학생 식당 안 카페에서,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테이블을 닦고 청소하는 업무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첫 출근은 항상 허둥지둥 일을 배우느라 있는 정신도 없어질 지경이다. 어느 정도 일이 익숙해질 때쯤 학생식당에서 밥을 먹고 커피를 주문하러 오는 학생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한 손엔 책을 들고 밝은 표정으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커피를 주문하는 모습.  내가 살게, 다음에 쏴라 등의 훈훈한 우정을 몸소 보여주며 서로 계산하려는 모습.

참으로 행복해 보였다. 대학시절을 떠올다. 그리곤 지금의 나의 모습을 보았다. 저들은 하루 종일 공부만 하면 되지 않는가. 오전 7시부터 오픈하기 위해 새벽에 일어나야 하고 각종 음료와 먹을 것들을 입고해야 하고 무거운 상자를 버리러 나가야 하며 쓰레기 청소에 뒷 마무리 청소까지. 퇴근하고 나면 오후 2시인데도 몸은 밤 10 시인 것 같은 느낌적인 이 느낌.

한마디로  학교를 다니며 공부를 하는 저들이 부러웠다.

그 순간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내 나이 25살, 아직 늦지 않았을까. 나도 공부를 해볼까.’     




공부다운 공부를 해 본 적이 없던 나였지만 고등학생 시절 규칙적인 생활로 인해 수업을 들을 때마다 한 번도 졸아 본 적이 없다. 한 친구는 도대체 수업 시간에 잠이 안 오냐며, 몇 시에 자는지 궁금해한 적도 있었다.

연극영화과 실기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매일 야자를 빠졌지만(당연히 공부하는 학원도 가지 못했다.) 수업 때 집중해서 공부하였기에 반에서 3등까지 해본 적이 있다. 담임선생님도 매우 놀라셨다. 그러고 보면 나쁜 머리는 아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나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이 ‘경찰 해보는 게 어떻겠니? 정의감도 있고 운동도 좋아해서 공부 열심히 하면 될 거다.’

그 말에 나는 홀린 듯 생각했다.

‘그래. 25살 인생에 뒤돌아 볼 것도 없어. 15년 동안 뮤지컬 했으면 이만하면 됐다. 한은 풀었으니 이제 공부를 원 없이 해보는 거다. 서울대학교 학생들처럼. ’     

“엄마. 나 바로 짐 싸고 부산 내려갈게. 내일부터 경찰학원 등록한다.”     

그때부터 경찰이라는 직업을 향한 첫 항해가 시작되었다.




‘나’라는 자아에는 여러 가지의 모습이 들어있다. 그동안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고 춤추고 연기하는 모습의 나만 바라보고 꿈을 키워왔다. 그 속에 관객들이 행복해하는 모습들, 많은 사람들이 나의 노래를 듣고 상처를 치유받았으면 하는 나를 이제야 발견한 듯하다. 그 마음을 더 키워서 ‘경찰’이라는 아주 과분한 옷을 입어보려 한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 이 여섯 글자가 인생에서 아주 심오한 깊은 뜻이 들어있을 줄이야.

모든 행복의 시작은 ‘나’를 제대로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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