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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송 Jan 28. 2020

경찰관이요? 제가?

거기 서 바바리맨!

소설과 희곡 등의 문학작품에서 ‘복선’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독자들은 복선을 통해 다가 올 사건이 우발적이거나 우연적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된다. 나에게도 경찰관이 될 운명이라고 암시하는 복선이 있었다. 대학교를 다니면서도 뮤지컬 극단에서 배우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연습을 하러 가기 위해 버스에 올라탔다. 더운 여름날, 발목까지 오는 원피스를 입고, 곧 다가올 공연을 위해 안무 영상을 보면서 버스의 맨 뒷자리에 혼자 앉아 있었다. 맨 뒷자리에 앉으면 편안한 기분이 든다, 버스 내부를 위에서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어서 어떤 사람들이 앉아 있는지, 무엇을 하는지 관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아주 매력적인 위치다. 그렇게 한참을 가던 중, 다음 정차 역에서 버스가 멈췄고, 한 남자가 뒷자리로 성큼 오더니 내 옆의 옆자리로 앉는 것이 아닌가. 평소에 사람의 기운을 잘 느꼈던 나는 그날도 어김없이 그 사람에게서 어둠의 기운이 스멀스멀 느껴졌다. 맨 뒷좌석에는 그 남자와 나, 이렇게 단 둘이 앉은 채로 버스는 출발하기 시작했다. 애써 어둠의 기운을 외면한 채 핸드폰 속 영상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때!! 그때!! 바로 그때였다. 뭔가 느낌이 이상해서 그 남자 쪽으로 고개를 돌렸더니 자신의 성기를 가지고 마구잡이로 흔드는 것이 아닌가. 오 마이갓. 신이시여. 사실 나에게 이런 일은 처음이 아니다. 초등학생부터 중학생 때까지 바바리맨, 길거리에서 음란한 행위를 하고 달아나는 사람들을 마주쳐서 경찰에 신고한 적이 꽤 많았다.

(형법 제245조에서는 ‘공연히 음란한 행위를 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500만 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에서 성기를 노출시키는 등의 음란한 행위를 하면 성립하는 범죄이다.) 

평소 같으면 화를 내는 것도 귀찮아서 한숨만 푹 쉬고 지나갔을 터이다. 하지만 그 날은 여성들에게 못된 행위를 하는 범인을 오늘만큼은 참 교육을 해줘야겠다는 나의 정의감이 발현되어야 하는 때가 온 것 같았다.     

다시 한번 두 눈을 부릅뜬 채로, 범인의 우측 손으로 성기를 잡고 흔드는 행동을 인지하고, 분명 이 사람이 나에게 범죄를 저지르는 중이라는 확신이 든 그 순간, 운전 중이던 버스 기사님에게 초고속으로 달려가 이 사실을 알렸다.

아저씨는 의아해하며 뒷좌석을 보았고 나도 뒷좌석 쪽으로 고개를 돌렸더니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그것도 아주 태연하게 뒷문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아하! 오늘 나한테 잘못 걸렸어. 이글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범인과의 안전거리를 확보하며 마주 보고 섰다.

그리고 아주 큰 소리로 제 앞에서 당신의 성기를 잡고 흔들었습니까. 안 흔들었습니까.” 버스 안에서 복식호흡 발성을 하게 될 줄이야.

그 범인은 “ 안 했는데.”라고 예상대로 답변을 하였다.

이것 봐라. 나는 배에 잔뜩 힘을 주고 큰 소리로 똑똑히 말했다.

“다시 한번 기회를 주겠습니다. 제 앞에서 당신의 성기를 잡고 흔들었습니까. 안 흔들었습니까.”

전보다 더 커진 목소리에 주눅이 들어서인지 다소 떨리는 목소리로 “안 했는데...”

그렇게 끝까지 잡아떼며 거짓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때 다행히 버스는 파출소 앞에 정차하였고 뒷문이 열리는 순간, 범인은 달아나기 시작했다. 버스 안에 있던 남성 몇몇 분과 기사님이 달려가서 몸으로 제압하였고, 나도 쏜살같이 달려 나서 범인을 제압했다. 이 후  파출소로 이동하여 경찰관분들에게 인계해 주었다.  수사서류에 필요한 진술과 증거자료를 제출하고, 당시 버스 안에 있던 목격자 진술도 확보하였다.

버스 안에 있던 어떤 여성 분이 나에게 달려와서 손을 잡으시며 괜찮으시냐고, 집에 가려고 했는데 너무 걱정되어 뛰어왔다며 오히려 나를 위로해 주시는 천사 같은 분도 계셨다.     




사실, 많이 놀랬다. 이 일을 겪고 난 후, 한 여름에 몸살이 걸려 하루 종일 누워있어야하는 신세였다. 그렇게 가까이서 남자의 성기를 본 적은 처음인 데다, 무엇보다 수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를 얼마나 만만하게 봤으면 자신의 성욕을 아무런 관련 없는 나에게 풀까. 그래서 범인에게 마지막으로 한마디 했다. 눈을 마주 보며 그것도 당당하게.




“ 너의 성욕을 풀기 위해 무고한 여성들에게 범죄를 저지르면 피해자들은 영원히 고통받아야 한다. 여태까지 나 말고 다른 여성들에게도 많이 했을 것이다. 하지만 너는 죄 값을 받아야 한다. 영원히. 그것은 범죄고 불법이니까.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마.”     




나의 카리스마 있는 행동을 보시고 경찰관 아저씨는 아주 흥미로운 얘기를 꺼내셨다.

“아가씨, 경찰관 한번 해보는 건 어때요? 잘할 것 같은데. 당당하고 용기 있는 모습에 감탄했어요. 한번 생각해봐요.” 그 뒤로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나라는 사람과 경찰관이라는 직업이 과연 어울릴까?

환상의 조합이라고 말할 순 없지만 서로 다른 듯 닮은 직업일 것 같았다. 이 일을 겪고 난 후부터 ‘경찰관’이라는 세 글자가 내 머릿속에서 떠나가지 않고 있었다.

경찰관... 경찰관... 경. 찰.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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