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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송 Jan 23. 2020

전국 노래자랑

넘어져도 미소 지을 날이 오는 법


그토록 꿈에 그리던 연극영화과로 진학 후, 전문적인 교육 과정을 받으며 배우로서 갖춰야 할 실력, 소양을 배우게 되었다. 학교 수업을 들으러 갈 때마다 설렘으로 가득 찼던 날들이었다. 매일이 놀이였던 날으니 더욱 그랬다. 교수님과 마음껏 노래도 부르고 동기들과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연기를 하며 실제로 줄리엣이 된 것 마냥 가슴속엔 이름 모를 설렘이 느껴졌던 순간들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연극영화과에 진학한 것을 후회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가슴이 시키는 대로 꿈을 좇아 피나는 노력을 했던 그 시간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의 모습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4년의 시간이 흘러 학교를 졸업하였고, 배우로서 첫 사회생활을 했다. 졸업 후, 처음으로 한 작품은 뮤지컬 <센스>의 레오 수녀 역이었다. 정말로 좋아했던 작품인 데다, 내 이름 석자를 알릴 수 있는 계기라고 생각하니 잘해야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야말로 자존심이 걸린 작품이었다. 꼭 이런 말이 있다. ‘문제가 없는 것이 문제다.’ 맞다.  안 좋은 예감은 빗나간 적이 없다.

평소 롤러스케이트를 잘 못 타는 나에게 롤러스케이트를 타면서 발레리나를 꿈꾸는 노래를 부르는 레오 수녀 역을 맡게 된 것을 시작으로, 평탄하게 생각했던 아스팔트 길에서 더 이상 발을 디딜 수 없을 정도의 수많은 자갈과 진흙탕이 섞인 길로 가게 될 줄이야.  공연 몇 시간 전부터 스케이트를 연습하고 또 넘어지고 수없이 반복하여 연습하였지만 실제로 공연할 때마다 관객들 앞에서 넘어지기 일쑤였다.

비참함’이라는 세포 하나하나가 몸 안에 스며들어 느껴질 정도였다. 그렇다고 노래를 멈출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무렇지 않은 듯이 일어나 노래하였지만 나 자신에 대한 실패감, 비싼 티켓 값을 지불하고 시간을 내어 공연을 관람해주신 관객들에 대한 미안함, 여러 가지 복합적인 감정들로 눈물로 밤을 지새울 때가 많았다. 자신감이 하늘을 치솟아 위풍당당했던 아이는 어느새 풀이 죽어 관객들 앞에서 매일 부끄러운 연기를 보여줄 수밖에 없었던 눈물의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날도 공연을 마치고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며 집에 돌아온 날이었다. 엄마는 내게 “네 전국 노래자랑 나가볼래?”

그 순간 콧방귀를 뀌었다. “엄마. 몇 백 명, 아니 몇 천 명이 예선을 보러 오는데 진짜 무리다. 나보다 노래 잘 부르는 사람이 훨씬 많은데 뭘.” 지금의 상황에서 전국 노래자랑이라니. 하지만 그 누구보다 나를 잘 아셨던 엄마는 끝까지 한 번만 나가보라고 설득하셨고 결국엔 성화에 못 이겨 예선을 보러 가게 되었다. 무슨 노래를 할까 고민하다가 평소 흥얼거렸던, 이 비참한 상황을 아는 것처럼 위로해주는 진주의 <난 괜찮아>를 부르기로 결정하였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이상 무대에서 한없이 노래 부르고 쿨하게 내려오는 거다. 진짜 난 괜찮다.’ 하지만 어린아이부터 노인 분들까지 전 연령대를 아우르는 많은 사람들을 보니 긴장을 안 할 수가 없었다. 드디어 나의 이름이 호명되었다. 뚜둥! 피디와 관계자 분들 앞에서 나를 뽑지 않으면 당신들은 후회할 것이다.라는 부담스러운 눈빛을 보내며, 난 괜찮아를 열창하였고 덤으로 성대모사까지 보여주었다. 결과는 합격이었다. 설마 2차까지 합격하겠어. 꾸역꾸역  마지못해 2차 예선까지 보러 갔다. 근데 막상 상황이 닥치면 또 최선을 다해 노래 부르는 내 모습에 나도 기가 막힐 지경이다.





그렇게 2차 예선까지 합격하여 전국 노래자랑 본선 무대에 설 수 있는 영광스러운 기회가 주어졌다. 거리가 온통 전국 노래자랑을 보러 온 사람들과 분주히 움직이는 스텝 분들을 보니 그제야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그때, 저 멀리서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그래 맞다. 바로 국민 MC 송해 아저씨다.

나에게 이런 순간이 오다니. 국민 MC 송해 아저씨와 인사하고 점심도 같이 먹게 되다니. 꿈이야 생시야. 몇 번을 볼을 꼬집었지만 다행히 꿈은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본선 무대에 섰는지도 모르겠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야외무대인 데다 마이크 울림이 강해서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이래서 가수들이 인이어라는 것을 귀에다 꽂는가 보다.      



드디어 시상하는 순서가 다가왔다. 화려한 반짝이 의상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주민센터 직원부터 재치 있는 말솜씨와 입담으로 관객들을 즐겁게 해 준 출연자까지, 어느 누구 하나 흠잡을 곳 없이 잘한 분들이기에, 나는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감지덕지 생각하자며 마음을 비우고 있었다. 그 순간, “최우수상 000나의 이름이 호명되는 것이 아닌가. 엥? 이게 실화야? 갑자기 이경규의 몰래카메라라는 TV 프로그램이 생각나면서 몰래카메라겠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우수상 1,000,000원이라는 푯말이 나에게 넘겨지는 순간, 그때서야 실감을 했다. 대한민국에서 국민 프로그램인 전국 노래자랑 최우수상을 받다니. 너무 놀라 말이 안 나왔다. 그리고 정말로 감사해서 눈물이 났다. 그동안의 노력이 여기에서 빛을 발하는 것 같았다.

애써 눈물을 참으며 앙코르 곡을 불렀고 나에게 다가와 축하해주시는 관객분들에게 한분 한분 인사를 드렸다. 지금도 이 글을 적으면서 그 날의 감동과 감격이 잊히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놀라웠던 것은 수상 한지 1년이 되어갈 때 서울로 올라가 지낼 때였다. 지하철 역에서 낯익은 분이 지나갔는데 바로 송해 아저씨였다.  먼저 다가가 인사하였더니, 반가운 표정으로 “그때 뮤지컬을 한다던 아이 맞지?”라며 나를 잊지 않고 계셨다. 왜 송해 아저씨 보고 국민 MC라는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나의 인생 경력에서 전국 노래자랑 최우수상을 입상한 것은 참으로 영광스러운 일이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그 뒤에는 나를 믿어주고 지지해주신 부모님이 계셨기에, 풀이 죽어 늘 눈물로 지새운 나를 더 가슴 아파하며 걱정하셨던 엄마의 선견지명 덕분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다. 나는 이렇게 정의하고 싶다. ‘실패는 넘어졌던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워 한 발자국 내딛게 하는 어머님의 사랑과 같은 존재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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