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1학년으로 진학하자마자 연극 동아리에 들어가기 위해 오디션을 보았다. 생애 첫 오디션이었다. 학교 선배들에게 춤과 노래, 성대모사로 연기에 대한 불타는 열정을 보여주었다. 소중한 3년을 공부에만 투자하기 너무나 아쉬웠다. 그래서 들어가겠노라 더 결심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실기로 당당히 합격한 나는 벌써 무대에 설 생각을 하니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일명 ‘군기’라는 것이 기다리고 있었다. 선배들에게 ‘군기’의 과정을 받고 견뎌내야 연극부의 일원으로 받아주는 통과의례였다.
지금은 ‘학교폭력’으로써 학교전담경찰관을 통해 신고할 수 있고 wee class 선생님(학교 전문상담 선생님)에게 상담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지만 예전에는 그런 것이 없었다. 그저 견뎌내야 했다. 다행히 위기를 잘 극복하였고 드디어 처음으로 연기를 배울 수 있었다.
외부에서 연기 선생님이 오셔서 가르쳐주셨는데 매번 눈에 불을 켜고 개그맨처럼 능청스럽게 오버하는 나를 신기하게 보셨다. 첫 연극대회를 위해 연습하고 있던 어느 날, 나를 향해 손짓하며 부르셨다. 바짝 긴장한 나에게 던지신 첫 질문은 이것이었다. “너는 꿈이 뭐니?” 아주 자신감 있게, 아주 당당하게, 1초도 망설임 없이 대답하였다.
“저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뮤지컬 배우가 꿈이에요.”
선생님은 “너는 배우에 소질이 있어. 재능도 많고 끼도 많아서 이쪽으로 진로를 결정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그렇다. 나의 재능을 알아봐 주신 선생님은 대한민국의 대배우가 되어 영화, 드라마에서 종횡무진하고 계신 '유재명' 씨다. 선생님의 한마디는 마치 기름과 같아서 나의 열정이라는 불에 붙고야 말았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연극 동아리에서 활동을 했다. 원래는 없던 동아리였지만 이왕 이렇게 된 이상 내가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으로 대단한 용기다. 어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영문도 모른 채 눈을 껌뻑거리시는 교장 선생님 앞에서 연극부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를 나름의 논리적인 이유를 대며 열변을 토해 설명했다. 진심이 통하였는지 연극부를 만들 수 있게 허락해주셨고 담당 선생님을 배정해주셨다. 어린 학생의 건의를 진심으로 들어주신 교장선생님께 지금에서라도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이로써 나의 진로도 연극영화과로 자연스럽게 정해져 정규수업이 마치면 야자도 하지 않고 연기학원에 가서 실기 종목을 연습하기 위해 매일 운동선수처럼 트레이닝을 하였다. 친구들이 야자 시간에 수능 공부를 할 때 나는 짧은 다리를 찢으며 스트레칭하고 희로애락을 표현하기 위해 연기 연습에 몰두하였다. 때론 힘들 때도 있었다. 이렇게 몸을 혹사시키면서까지 해야 하는가 하고 말이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그렇게 꼬박 3년을 연습하여 그토록 원하는 연극영화과에 실기전형, 수능전형 모두 합격해 진학할 수 있었다.
지금도 생각한다. 나는 왜, 무엇을 위해 무대에 섰을까. 어쩌면 인생을 담아, 진심을 담아, 사랑을 담아 노래할 때 관객들의 눈물, 웃음을 잊지 못해서가 아닐까. 누군가에게 나의 노래를 통해 위로가 되고, 연기를 통해 공감을 받으며, 생명이 위급한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처럼 마음의 병과 아픔을 치료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서 10대 때부터 오직 한 길만 보고 왔던 것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