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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자헌 Oct 26. 2017

10월

  점심시간 지나 노곤하던 중에 운전병이 다가와 이번 달 신병들이 부대로 왔다는 소식을 전했다. 콤비를 끌고가 신병들을 교육소대로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콤비는 당직대에서 쓰는 파랗고 작은 버스다. 나는 교육소대 간다는 말에 마음이 동하여 운전병을 따라나섰다.


  단본부 뒤편 주차장에서 잔뜩 얼은 신병들과 만났다. 인사말이라도 재치 있게 건네 볼까 머리를 굴렸으나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하나둘 콤비에 오르는 동안 멀뚱히 앉았다가 문득 전역한 병사들 생각에 "너희가 복학 기수인가?"라는 말이나 꺼냈다. 아직 부대 숟가락 한 번 잡아보지 못한 이들에게 참 대책 없는 질문을 했다.


  교육소대를 가자면 C지구로 통하는 굴곡진 터널을 지나야 한다. 터널을 벗어나면서는 늘 언덕길 너머 멀찍이 교육소대 뒷산이 드러나는데 오늘따라 햇살 받은 가을빛이 참 고왔다. 완두콩 빛깔에 발갛고 누렇고, 이 즈음이면 우리 이 원사님은 뒷산 순찰로 따라 도토리 주우러 다니실 테다. 어느새 그런 계절이 왔다. 바람은 시리고 햇살이 따수운 일에도 금세 적응하고만다.


  신병들을 내려주고 익숙한 길 따라 교육소대 사무실을 찾았다. 문을 들어서자 소파 앞 탁자 위로 하얗고 노란 꽃들이 보여 놀랐다. 희고 기다란 잎을 두른 꽃과 튀기다만 팝콘처럼 조그맣고 노란 꽃들이 박카스 병 하나에 담겼다. 원사님 책상 위에도 베지밀 병으로 만든 꽃병 하나 놓여 창 넘어 드는 햇살을 잔뜩 머금었다. 원사님은 드시던 물을 새 잔에 부어 건네주셨다. "꽃이 참 곱습니다." 하니 "향은 더 좋습니다." 하셨다. 가까이서 맡아보니 참말 그랬다. 흰 꽃은 구절초, 노란 꽃은 이름 모를 야생화라 하셨다. "노란 꽃 향이 억수로 진합니다." 하고 즐거워하셨다.

 

  원사님 따라 밖으로 나섰다. 그제야 벤치 주변으로 자리 잡은 꽃들이 보였다. 시린 바람 탓인지 줄기가 메마르고 갈변하였으나 그 위로는 맑고 수수한 꽃이 폈다. 원사님은 구절초 무리 곁을 돌아 직접 심으셨다는 감나무를 가리키셨다. 터를 골라 셋을 심었는데 제초병들 오가며 갈아버린 탓에 여기 하나 남았다 하셨다. 나무는 막 걸음마 뗀 아이 엉덩이만한 높이로 서서 두터운 잎 몇 개를 붙들고 가을을 맞았다. "땅이 척박해가 잘 살지는 못해요." 원사님 손길에 애정이 묻어났다. 저만한 나무는 언제쯤 자라 홍시 하나 맺으려나, 원사님의 시간을 헤아려보았다.


- 2017. 1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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