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팥죽
냄비 안에서 팥이 천천히 끓고 있다.
달그락달그락, 씻을 때부터 기분 좋던 소리가
보글보글로 바뀌어 간다.
동글동글 귀여운 새알이 들어간
따뜻하고 달콤한 단팥죽은
내가 좋아하는 겨울 소울 푸드다.
오래전에 본 영화 <앙 : 단팥이야기>에서
오랜 시간 정성껏 팥을 삶아내던 장면을 보고
언젠가는 나도 그렇게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른 새벽부터 팥을 씻고
팥 끓는 소리와 냄새, 촉감까지
하나하나 오래 들여다보던 모습과
밭에서 힘들게 온 팥을 극진히 모셔야 한다던
팥을 대하는 태도가
감동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감동은 오래 남았지만 실천에 옮기던 날,
유튜브 검색창에 입력했다.
’초간편 단팥죽 만들기‘
이럴 때만 꼭 효율을 찾는 나는
단팥죽 만드는 시간을 단축하려고 했다.
팥을 삶고 젓는 일을
밥솥과 믹서기에게 맡기는 것으로.
(물론, 온전히 맡길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런데 이상하게
손은 더 오래 머물렀다.
단단하던 팥이
어느 순간 숟가락에 걸릴 만큼 풀어졌고,
자꾸만 더 저어 보게 됐다.
동글동글 새알을 굴리는 일도
쉽게 끝낼 수가 없었다.
달그락달그락, 보글보글.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사고도 있었다.
우리 집 작은 밥솥의 크기를 생각하지 않고
레시피에 나온 대로 물을 넣었더니
팥물이 넘쳐흘렀다.
한동안 멈출 기미도 없이.
그 덕에 주방 수납장을 다 꺼내
청소를 해야 했고,
단축된 시간보다 청소하는 시간이 더 추가되긴 했지만
요령을 피우면 피우는 대로,
생각하지 못했던 재미가 생긴다는 걸 알게 됐다.
다음 단팥죽을 만들던 날에도
밥솥은 또 터지고 말았지만,
조용히 끓이는 시간 대신
우당탕탕 흘려보낸 시간도
나쁘지 않았다.
내 식대로 오래 들여다보고,
더 저어보고,
충분히 즐겼으니까.
그 정도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