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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ley Jun 18. 2019

어떻게 결혼을 결심하게 됐어?

불편한 질문을 통해 얻은 해답



    결혼을 준비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 중 하나는 “어떻게 결혼을 결심하게 됐어?”였다. 주로 미혼인 친구들에게 받았던 이 질문은 나를 가장 난감하게 했다. 도대체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대답이 유독 망설여지는 이유를 하나 꼽는다면 ‘질문을 던지는 사람의 로망을 깨고 싶지 않아서’였다. 나의 지인들 중 결혼의 결심을 묻는 사람들은 십 중 팔구 결혼에 대한 환상 내지는 로망을 가진 이들이었다. 결혼을 대하는 태도가 다소 현실적인 사람들은 결혼을 결정할 당시 나의 마음에 대해서 묻지는 않았다. 그들은 이야기를 나누는 초반부터 ‘왜 이렇게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느냐’며 나의 청춘을 아까워해줬다. 결혼에 대해 긍정적인 사람이건 그렇지 않은 사람이건 모두 얼굴을 마주하며 함께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딱히 결혼에 대한 선호가 그들을 대하는데 어려움을 주지는 않았다. 다만 그들의 상반된 질문이 청첩장을 전해주기 위해 앞으로 만날 많은 사람들에 대한 나름대로의 카테고리를 형성하는데 도움이 되었을 뿐이다.


    어쨌든 나에게 결혼에 대한 결심을 묻는 사람들은 대부분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고 싶어 한다고 봐도 무방했다. 이들은 더 자세히 마음속으로 현재 교제하는 연인과의 결혼을 그려보는 사람들이거나, 언젠가 입을 드레스를 기대하는 사람이거나, 두 사람이 단란하게 꾸리는 가정에 로망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질문을 던진 후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낭만적이면서도 현실성이 있는 이야기들이 나오길 기다리는 듯했다. 처음 몇 번 그런 질문을 받고 나는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하거나, 뭉뚱그려서 “성격이 좋아”, “할 시기가 됐지, 뭐.”, “어차피 헤어질 마음이 없으니까” 등의 대답을 했다. 결혼한다는 소식을 전하는 예비 신부의 말이라기엔 어딘가 미지근하고 재미없는 대답들이었다. 제대로 대답하지 않는, 혹은 대답하지 못하는 나의 모습으로 인해 어떨 때는 말 그대로 ‘갑분싸’가 되기도 했다.



     사실 나는 결혼을 준비할 때 상당 시간 행복하지 않았다. 신학대학원생으로서의 나, 교회 전도사로서의 나, 결혼을 준비하는 예비 신부로서의 나, 돈을 벌어야만 하는 조교로서의 나를 모두 감당하려다 보니, 그 수많은 역할들이 나에게 ‘결혼은 원래 이렇게 힘든 것인가?’라는 원초적인 질문을 품게 했다. 아, 물론 행복하긴 했다. 결혼 준비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았다. 결혼 선배들로부터 얻은 막강한 정보들과 현실성 있는 조언들도, 없는 시간을 쪼개어 우리의 결혼을 위해 사용해준 많은 이들의 정성도 큰 힘이 되었다. 그들을 볼 때마다 우리가, 무엇보다 내가 생각보다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행복했다. 또 식장 예약이나 웨딩 촬영, 또는 신혼여행 비행기의 예약 등 크고 작은 일들을 처리해 나갈 때마다 설레는 마음과 기분 좋은 바쁨이 이어지기도 했다. 오빠와의 미래를 상상해보고 그려보는 것도 나름대로 그 시간 속에서만 누릴 수 있는 행복이었다.


    그러나 나의 성향은 결혼 준비를 즐기기엔 역부족이었던 것 같다. 어떤 이들은 결혼 박람회를 여러 곳 방문해 서로 비교하고, 웨딩 플래너를 여러 명 만나 상담하기도 한다. 결혼 준비 자체를 즐기고, 나의 손으로 우리 두 사람의 결혼을 만들어 간다는 것에 큰 기쁨을 얻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평소 투박한 삶을 향유하고 있는 나의 경우에는 결혼이 갑자기 불어난 일거리처럼 느껴졌고 과연 이 일을 누가 나에게 던져버린 것인가에 관해 고민했다. 그것을 던진 것은 나였다. 그리고 남편이었다. 그래서 애꿎은 남편에게만 짜증을 내곤 했다.



    앞서 언급했던, 결혼에 대한 미적지근한 대답들을 보고 혹자는 너무 생각 없이 결혼한 것이 아니냐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다만 당시 학업과 조교일, 사역과 결혼 준비를  감당해 내려던 예비 신부가 낭만적인 러브 스토리를 풀어낼 정도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지 않았을 뿐이다. 그도 그런 것이 어떤 사람이 생각 없이 결혼할  있겠는가. 다만 지난 시간 동안  사람에게서 발견한 모든 장점과  시간 안에 담겨 있는 우리의 사랑스러운 순간들이 어떻게 하나로 모여 ‘결혼이라는 위대한 과업을 이루게 되었는지를 간단히 설명한다는  자체가 나에게는 어떤 철학자의 철학을  줄로 정리하라는 주문만큼이나 어려운 것이었다.



    ‘신부님’ 혹은 ‘예비 신부’라고 불리는 내내 모든 일이 부담이었고 ‘결혼’이라는 단어가 스트레스였다. 사람의 마음과 말은 각자의 길을 갈 수가 없으므로, 당시 나의 말들은 바닥으로 내려앉은 마음의 상태를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청첩장을 전해주기 위해 대학교 동창을 만나고, 후배를 만나고, 그렇게 다양한 관계로 얽힌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을 때, 내가 그들에게 꺼내놓았던 말은 ‘힘들다.’였다. 처음에는 들어주고, 나를 위로해주던 그들도 계속되는 나의 부정적인 언어에 퍽 난감해하는 눈치였다. 결국 몇 번의 대화 이후, 어떻게 결혼을 결심했냐는 질문에 대한 답을 나름대로 만들어 놓아야 앞으로의 만남에 있어 내 감정과 상관없이 물 흐르듯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으리라 스스로 깨달았다. 말을 바꿔 긍정적으로 이야기해보자면, 이와 같은 질문들이 다시 한번 내가 왜 이 사람과 결혼을 하려고 하는가를 돌아보게 했다는 이야기다.


    결혼을 결심하기 이전이 아니라 한창 준비가 진행되고 있을 때, 그것도 남들에게 내가 결혼을 하는 것에 대한 그럴듯한 답변을 내놓기 위해 고민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라도 결혼과 결혼할 사람에 대해 한 번 더 깊이 들여다봤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어쩌면 물 흐르듯 살아가는 것을 지향하는 나에게는 이 과정이 한 번 더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결혼을 결심하게 된 이유는 당황스럽겠지만 '영혼 없는 리액션' 때문이었다. 종종 내가 자존감이 떨어진 채 이야기를 할 때면 남편은 "괜찮아, 네가 최고야.", "다이어트 안 해도 돼.", "충분해", "네가 제일 예뻐."와 같은 말들을 영혼 없이 내뱉곤 했다. 그리고 오글거리는 말을 질색하는 나는 그 말들을 대충 넘겨버리곤 했다. 그렇게 이 년이 넘도록 남편은 나의 자존감을 지켜주겠다는 이유로 영혼 없는 리액션을 시전 했고, 나는 그 말들에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만난 지 3년 차 되던 해, 오빠가 6개월간 필리핀으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친구들 앞에서 발음을 지적하며 개망신을 준 이후로 쭉 영어에 대한 두려움을 호소하던 오빠는, 결국 그것을 깨보겠다고 휴학을 하고 필리핀으로 떠났다. 그리고 그 해에 나는 전도사로서 사역을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 낯선 환경에 던져졌는데, 해외에 있는 오빠보다 국내에 있는 나에게 그 영향이 더욱 컸던 것 같다.


    평소에도 혼자 놀기를 즐겨하는 나인 데다가, 하루에 주고받는 메시지의 개수가 10개 이하였던 우리이기 때문에, 나는 속으로 '6개월쯤이야 껌이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낯선 환경과 학업에 대한 부담감은 나의 자존감을 한 계단씩 떨어트리고 있었다. 결국 4개월쯤 됐을 때, 자존감은 바닥으로 떨어졌고 나는 혼자 방 안에 앉아 꾹 참고 있던 눈물을 터트렸다.


    누군가의 소중함은 그 사람의 부재를 통해 알 수 있다고 했던가. 오빠가 없었던, 고작 4개월 안에 내가 깨달은 것은 내가 이 사람의 '영혼 없는 리액션'에 생각보다 많은 위로를 받고 힘을 얻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영혼 없다고 무시하는 척했지만 사실은 그 말들이 충실히 내 마음으로 들어와 자존감이 올라갈 길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이 사실을 깨달음과 동시에 오빠가 나에게 생각보다 가깝고 중요한 존재라는 깨달음이 더해졌다. 그리고 아마 그때 어렴풋이 내가 이 사람과 평생 함께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자세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말이다.



    어쨌든 오빠가 필리핀에서 돌아온 후, 우리는 결혼을 결정했다. 그리고 천천히 결혼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결혼을 결정할 당시에는 그냥 우리가 만난 지 3년이 다 되어 가니까, 이 사람은 성격도 좋고 인성도 좋고 착하니까, 우리는 대화가 잘 통하니까, 서로 먹는 취향도 잘 맞으니까, 이 사람과 노는 것이 재밌으니까 결혼을 하는 거지, 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의 관계가 흘러서 결혼을 할 때가 됐으니 한다고 생각했다.


    양가 부모님께 말씀을 드리고 상견례를 하는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결혼을 준비하고 청첩장을 돌릴 때까지도 내 안에 명확히 정리되지 않았던 것들이, 타인의 질문으로 인해 그제야 정리가 된 것이다. 어찌 보면 결혼의 결심과 동시에 그 이유가 정리되는 것이 맞지만, 순서가 조금 바뀐다고 해도 뭐 어떤가. 어쨌든 내가 이 사람과 결혼해야 할 이유에 대해 스스로 깊이 고민한 그 시간이 필연적이고도 소중한 시간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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