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결정한 결혼에 능동적으로 반응하기
2015년 2월, 연애를 시작했다. 2018년 5월, 3년을 꽉 채우고도 세 달이 지나서 결혼을 했다.
우리는 연애를 하면서도 종종 결혼에 대해 이야기했다. 거의 오빠의 입에서 결혼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나는 제대로 대답을 하지 않았다. 결혼이라는 것이 나에게는 먼 얘기 같았고, 나는 아직 학생이었고, 모아놓은 돈도 없었다. 마음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없었던 나는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오빠는 그런 나에게 서운해했다. 오빠가 필리핀으로 어학연수를 떠났다가 돌아온 2017년 여름. 결혼이 우리의 대화에서 주된 주제로 떠올랐다. 이제까지 결혼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한 적 없는 우리였지만 이미 오빠의 머릿속에는 계획이 세워져 있었다. 평소 계획적인 성격에 결혼이라고 예외는 없었다.
같은 학교에 입학했지만 목회학 석사(M.Div) 과정이었던 나는 3년 코스였고 신학 석사(T.hm) 였던 오빠는 2년 코스였다. 원래대로라면 내가 1년 더 학교에 다녀야 했다. 그러나 오빠는 다양한 이유로(주된 이유는 '쉼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두 학기가 지난 후 휴학을 했고 어학연수에 갔다. 돌아와서는 마지막 남은 1년을 준비하며 동시에 '결혼'이라는 주제를 수면 위에 올렸다. 본인이 깊이 생각해본 바로는 내년 5월에 결혼을 하는 것이 우리에게 가장 좋다고, 오빠가 말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졸업을 한 후에는 풀타임 사역자가 된다. 그때 결혼을 준비하는 것보다 학생일 때 결혼을 준비하는 것이 우리가 덜 힘들 것이다. 고로, 내년이 좋다.
우리는 내년 2학기에 논문을 써야 한다. 논문을 쓰는 2학기 보다는 개요를 쓰고 자료를 모으는 1학기가 더 여유로울 것이다. 고로, 1학기가 좋다.
우리의 지인 중에는 사역자가 많다. 주말이 불가능한 사역자들과 일하는 평일이 불가능한 회사원 지인이 모두 올 수 있는 합리적인 날짜는 대체휴일이다. 때마침 5월에 어린이날 대체 휴일이 있다.
솔직히 우리가 데이트할 때 돈을 너무 많이 쓴다. 현재의 지출을 감안했을 때, 결혼을 하는 것이 우리에게 더 이로울 것이다.
나는 너와 헤어질 마음이 없다. 고로,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이 시기에 결혼을 하자.
솔직히 너무 설득력이 있었다. 나 또한 오빠의 이야기를 듣고 고민에 빠졌고, 내가 이 사람과 헤어질 마음이 조금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결정을 내렸다. 각자 부모님께 말씀을 드렸고, 우리 둘은 각 가정의 대표가 되어 이 커다란 프로젝트를 어떻게 진행하는 것이 좋을지 상의했다. 부모님의 의견을 전달하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면서 결혼 준비가 시작되었고 그 해 연말에 상견례 날짜를 잡았다. 상견례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준비가 시작되었다.
우리가 결혼을 준비하며 추구했던 것 중 한 가지는 불필요한 절차들, 부담스러운 절차들을 생략하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예물과 예단을 생략했고, 폐백도 생략했다. 학업에, 사역에, 조교 일에 치여 결혼에 쏟을 에너지가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던 어느 순간, 그렇게 시간을 쪼개어 사는 와중에도 원칙주의자인 오빠는 프러포즈를 준비할 것이라는 사실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그래서 오빠에게 말했다.
프러포즈는 청혼이다. 결혼을 청하는 것이다. 결혼하자고 이야기하는 것이 프러포즈다. 내가 아는 프러포즈의 의미가 틀리지 않다면, 우리에게 더 이상 프러포즈는 필요가 없었다. 이미 우리는 충분한 대화를 통하여 결혼을 하기로 합의했고, 준비를 시작했다. 나는 우리가 구태여 서로에게 다시 한번 "나랑 결혼해줘"라고 이야기할 필요가 있는가에 의문이 들었다.
결혼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말 결혼을 ‘청하는’ 목적을 가졌다면 프러포즈를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미 결혼 날짜를 정하고 준비를 시작했음에도 남자가 여자에게 분위기 좋은 곳에서 프러포즈를 하는 것은 어쩐지 나에게 꼭 필요한 일 같지가 않았다. 그러나 통상적으로 프러포즈는 결혼 준비의 한 과정처럼 여겨진다. 그래서 오빠는 당연하게도 프러포즈를 고민하고 있었다. 프러포즈를 하지 말라는 나의 말에, 오빠는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사실은 친구들과 고민을 하고 있었다고 토로했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이미 결혼 준비를 시작했는데 왜 형식적으로 오빠가 나에게 프러포즈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그 돈과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쓰는 것이 나은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생략이라는 말이 어울리는가에 관하여도 의문이 있지만, 어쨌든 그 날 대화의 결론으로 우리는 프러포즈를 생략했다.
드라마에서 대부분 프러포즈를 하는 사람들은 남자다. 드라마 광인 나도 여자가 프러포즈를 한 드라마가 언뜻 생각나지 않는다.(혹 여자가 프러포즈를 하는 장면이 담긴 드라마를 아신 다면 알려주시라. 진심으로 궁금하다.) 주변에서도 여자가 먼저 결혼하자고 이야기했다는 소리는 들어봤어도 ‘성대하고 로맨틱하게’ 프러포즈했다는 얘기는 못 들어봤다. 딱 한 번 대학원 동기가 서로 '공동 프러포즈'를 했다는 것을 페이스북을 통해 본 적은 있다.
프러포즈가 정확히 어떤 이유로 결혼의 과정에 속해 있는가에 관하여 묻는다면 다양한 사회, 문화적 원인을 들어 설명해야 할 것이다. 주로 남성에게 몰려 있었던 경제력, 좋은 남편을 만나는 것(좋은 남편의 기준은 굳이 적지 않겠다.)이 여성의 큰 목표인 것 마냥 여기던(여기는) 시각들, 아버지에게 속해 있던 여성이 결혼 후 다시 남편에게 속하는 체계와 같은 것들이 오랜 시간 이어져 왔다. 그리고 이런 상황과 배경이 결혼을 대하는 여성의 태도를 수동적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함께 ‘결정’했음에도 여전히 남자가 여자에게 결혼을 ‘청하는’ 프러포즈가 형식적으로 남아 있는 것은 아닐까? (이에 관하여는 추후 더 객관적인 자료를 찾아 보완할 필요가 있겠다.)
내가 집중하고 싶은 것은 혹여나 우리에게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 중 ‘불필요한’ 프러포즈가 존재하지는 않느냐는 것이다. 두 명의 성인이, 각자 생각과 고민 끝에 똑같이 ‘결혼’이라는 결론을 도출했음에도 불구하고 프러포즈를 준비하거나 기다리고 있지는 않은가? 더 나아가 이미 마음속으로는 ‘결혼’이라는 결론을 도출했지만 내가 ‘여자’라서 상대가 나에게 결혼을 청하길 기다리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프러포즈에 관하여 생각하면서, 결혼에 대한 여성의 수동성을 생각하게 됐다.
결혼은 두 사람의 인생의 중요한 사건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결정될 때 많은 시간과 고민과 대화와 타협이 필요하다. 내 인생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인생에 중요한 사건이기 때문에 그렇다. 서로가 동등하고 능동적인 주체가 되어서 함께 결정하고, 함께 이야기하고, 함께 타협하고, 함께 일구어나갈 때 둘의 결혼이 더 빛나리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내가 제안하고 싶은 것은 프러포즈 대신 두 사람의 결정을 축하하고, 앞으로의 시간을 위해 대화하는 자리를 갖는 것이다. 나의 경우, 프러포즈를 생략하고서 아쉬웠던 점은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두 사람이 마음을 다지는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다. 오고 가는 대화 속에서 ‘내가 결혼을 하는구나’라는 사실은 알지만 그것이 더 과감히 피부로 와 닿기 위해서는 어떤 이벤트가 필요하다. 많은 부분 프러포즈가 그런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프러포즈를 생략한 나로서는 물 흐르듯 결혼을 준비하다가 결혼식 당일이 된듯해 아쉬운 마음이 있었다. 우리의 결혼 준비 과정에서 두 사람의 결정을 축하하고 마음을 다지는, 결혼이라는 것이 현실로 와 닿을 수 있도록 돕는 어떤 이벤트를 함께 계획했더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결혼에 대한 스스로의 결정을 존중해 과감히 프러포즈를 생략했지만 어쨌든 나에게도 프러포즈가 가진 이벤트성 기능을 놓쳤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기에 이 글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내가 ‘선택’하고 ‘결정’한 결혼에 더 능동적인 주체가 되면서도, ‘프러포즈’가 가진 기능들을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