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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젊고, 아름다워지고 싶은 욕망에 관한 일침

영화 '서브스턴스'

by Ellie

언제부터였을까. 내 인별그램 피드를 살 빠진 여성들의 비포 앤 애프터 사진과 팔자주름 개선으로 회춘한 사람들의 후기들이 점령한 게 말이다. 드라마틱한 비포 앤 애프터 사진을 보면 호기심이 동해 도저히 클릭을 안 할 수가 없다. ‘와, 역시 최고의 성형은 다이어트네.’, ‘와 이 여자는 애엄마라는데 꼭 20대 같네’, ‘팔자주름만 떙겨 올려도 열 살은 어려 보이겠는 걸’ 같은 세속적인 눈으로 피드를 훑어보게 된다. 이들은 대체로 나이를 비롯해 키와 다이어트 전후 몸무게, 결혼유무와 자녀유무 같은 자신의 정보를 표시해 둔다. ‘애 둘 맘도 할 수 있다’, ‘40대에도 할 수 있다’, ‘이만큼 살쪘던 나도 해냈으니 당신도 할 수 있다’는 식의 동기부여를 위해서인지 모르겠다. 피드를 둘러보다 어김없이 닿은 곳에선 다이어트 보조제나 팔자주름 개선용 크림이나 집에서 쓰는 미용기구 등을 팔고 있다. 시술 또는 수술을 권하는 성형외과 광고일 때도 왕왕 있다. 실제로 구매까지 이어진 경험도 부지기수다. 결국 큰 효과를 못 보거나 아마도 내 인내심의 한계로 다양한 미용기구들은 화장대 안 저 깊숙이 틀어박혀 있다. 어차피 또 사봤자 비슷한 수순일 것 같지만 이번엔 다를 것만 같아 또 구매버튼을 누르고 만다.

또 다른 유형의 광고는 다양한 꾸밈 노동에 관한 것이다. 저 아이크림만 발라도 주름이 눈에 띄게 줄어들 것만 같고 저 콜라겐 팩을 한 뒤 자고 일어나면 다음날 새로운 사람이 되어있을 것만 같다. 뿐만 아니다. 다양한 화장법을 영상으로 비포 앤 애프터로 보여주니 눈이 휙 돌아간다. 섀도와 볼터치, 하이라이트만으로도 이런 놀라운 효과를 볼 수 있다니! 또다시 구매 버튼 앞에서 망설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런 광고들이 내 피드를 틈틈이 채우고 있는 건 내가 이런 종류의 피드에 반응했기 때문일 것이고, 구매 경험이 있기 때문이겠지 싶지만 아마도 ‘여성’이라는 키워드만으로도 이런 피드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지 않을까 짐작해 본다. 나이 불문하고 다이어트, 피부관리, 성형, 화장법 등으로 이어지는 미(美)에 관한 끊임없는 추구와 안티에이징에 관한 욕망은 모든 여성들의 관심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오랜만에 방송에 등장한 50대 K배우의 여전히 날씬한 몸매와 빛나는 피부를 보며 감탄했고, 지난 주말엔 14년 만에 완전체로 뭉쳤다는 1세대 여성 아이돌 그룹의 여전함을 보며 반가우면서 왜인지 좀 슬프기도 했다. 살찌지 않기 위해, 늙지 않기 위해 벌였을 그녀들의 사투가 눈에 선했으니까. 우리는 늘 그녀들의 외모를 두고 아무렇지 않게 품평을 해댔으니까.

영화 ‘서브스턴스’는 더 젊고, 더 아름다워지고 싶은 여성의 욕망을 철저히 깨부수는 영화다. 영화는 한물간 50대 여성 배우 엘리자베스 스파클(데미 무어)이 ‘서브스턴스’라는 이름의 의문의 약물을 주사한 뒤, 젊고 아름다운 외모의 20대 미녀 수(마거릿 퀄리)의 몸으로 살게 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엘리자베스는 한 때 오스카 수상자로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지만 지금은 TV 아침 방송에서 타이트한 옷을 입고 에어로빅을 해야 하는 신세다. 영광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이며, 이 자리에서마저도 잘릴 위기다. 더 젊고 핫한 여배우를 찾는 방송사의 의사 결정권자는 그녀에게 “여자는 50대면 이미 끝났다”라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다.


충격을 뒤로하고 운전하고 가는 중에 자동차 사고를 당하게 되고 병원에서 만난 한 청년(알고 보니 누군가의 또 다른 수)을 통해 의문의 약물 ‘서브스턴스’를 추천받는다. 젊음을 되돌릴 수 있다는 말에 의심반 기대반으로 약물을 투약한 뒤 그녀 안에서 20대의 매력적인 외모의 수가 등장한다. 다른 외모를 가졌지만 그 둘은 하나이고, 조건은 7일씩 서로의 삶을 나눠가져야 한다는 것. 이 균형을 깨면 균열이 생긴다. 엘리자베스는 수를 통해서 새롭게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삶을 즐기고 싶었지만, 오히려 더 고립된다. 자신의 삶을 갉아먹을수록 수의 화려한 생활이 연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엔 어리고 아름다운 ‘새로운 나’를 질투하고 사투를 벌이기에 이른다. 영화는 이 과정을 피와 내장이 난무하는 꽤 높은 수위로 표현해 쉬이 추천하긴 어렵지만 충분히 도전할 만한 묘한 해방감과 통쾌함을 선사한다.

영화를 본 뒤 기꺼이 나이 듦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냐고?

나는 어제도 희끗희끗한 흰머리를 누가 볼까 두려워 새치염색을 했고, 세안 후 토너-아이크림-에센스-수분크림 등으로 이어지는 나름의 피부관리를 했다. 최근에 구입한 얼굴을 V라인으로 만들어준다는 경락 롤러도 10분간 했다(다행히 아직은 구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구석에 처박히진 않았다). 점점 줄어드는 머리숱과 얇고 푸석해지는 머리카락을 걱정하며 두피마사지와 헤어에센스를 바르는 일도 잊지 않았다. 몸엔 바디크림을 꼼꼼히 발랐고 겨울이라 더욱 트는 발뒤꿈치는 따로 챙겼다. 유산균이며 비타민이며 눈에 좋다는 간에 좋다는 위에 좋다는 각종 영양제를 아침마다 배부를 만큼 먹고 있는 데다 최근엔 혈당 수치를 낮춰준다는 약도 추가했다.

안티에이징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일지, 내 인생을 건강하게 가꾸는 나만의 루틴일지 헷갈릴 때도 있다. 적어도 내 삶을 갉아먹도록 내버려 두진 않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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