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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슬픔을 마주하게 될 때면

영화 '소방관'

by Ellie

조카가 유치원을 졸업했단다. 가족 단톡방에 올라온 이쁜 조카 사진과 동영상을 쳐다보는 데 이모 미소가 끊이질 않는다. 언제 이렇게 컸나, 운동을 잘하는 조카가 어떤 어른이 될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흐뭇하다. 주변 사람에게 자랑하고 싶었지만 말을 삼켰다. 어제부터 도배되고 있는 사고 뉴스를 떠올리자니 문득 죄책감이 든다. 난 그저 또 다른 하루를 살아내고 있을 뿐인데, 이런 마음을 품고 있는 내가 괜히 죄스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도리가 없다.

아마도 크리스마스를 맞아 떠난 여행에서 돌아와 들뜬 마음으로 여행의 여운을 나누었을 그들과 그 가족들에 대한 마음인지 모르겠다. 어떻게, 누구를 향해 위로를 해야 할지 아니면 분노해야 할지 마음이 갈피를 잡지 못한다. 꺽꺽거리는 비통한 마음을 안고 입을 꾹 다문채 오늘도 그저 내 일을 해낼 뿐이다.

엄청난 불행을 목도했을 때 타인의 불행을 근거로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는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지 깨닫다가도 이런 비교 우위를 일삼고 있는 내 자신이 못나 보여 고개를 세차게 흔들어 보기도 한다. 이런 기분을 얼마지 않은 짧은 기간 안에 여러 번 겪고 있는 우리 모두가 집단적 우울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영화 ‘소방관’은 지난 2001년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의 한 다세대 주택에서 벌어진 화재 참사로 소방관 6명이 순직한 사건을 다룬 작품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2000년대 초반 당시 소방관들의 열악한 환경과 처우를 지적하면서도 업에 대한 사명감으로 뜨거운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소방관들의 고뇌를 다루고 있다.

사회적인 커다란 비극 앞에서 어쩌면 우리에게는 충분히 슬퍼하고 아파할 시간이 필요할지 모르겠다. 오늘 나는 잊지 말아야 할 희생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삼가 고인의 명복과 유족분들에게 깊은 애도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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