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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겨울 뜨거운 코코아 한 잔이 필요할 때

영화 '바튼 아카데미'

by Ellie

난 겨울이 싫었다. 추워서 싫고, 추위 때문에 움츠러드는 몸과 마음이 버거웠다. 추워서 허옇게 튼 손과 발, 터진 입술이 늘 성가셨고 친구처럼 따라다니는 알레르기 비염 때문에 콧물을 닦아 내느라 코 밑은 헐어있기 일쑤였다. 추위 때문에 몸은 움츠러들고, 몸이 움츠러드는 것만큼 마음도 쪼그라들었다.

어김없이 겨울이 왔고 맹렬한 추위가 닥쳤다. 콧물도 흐르고 기침도 나는 게 감기 기운이 스멀스멀 닥치는 것 같다. 감기라는 녀석도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 듯 주말이 되니 여지없이 감기 기운으로 꼼짝 마라 신세다. 잠옷 그대로 입고 이불속을 파고들어 온종일 전기장판과 한 몸이 되어 뒤척이며 집 밖으로는 한 발짝도 움직이고 싶지 않다. 씻을 기운도 없고, 최소한의 허기를 달래기 위해 집 안에 뒹굴거리는 레토르트 식품을 전자레인지에 돌려 겨우 끼니를 때운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지만 몸과 마음의 허기를 달랠 이런 영화 한 편을 만난다면 조금은 나아질지도 모르겠다.



영화 ‘바튼 아카데미’는 무언가에 상처받아 마음이 까칠까칠한 세 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배경은 1970년대, 유명 사립 기숙학교인 바튼 아카데미. 크리스마스 휴가를 맞아 대부분의 학생들이 집으로 떠날 생각에 들떠 있다. 그렇게 하나 둘 아이들을 떠나고 텅 빈 학교에는 외골수 역사 선생님 ‘폴’, 문제아 ‘털리’, 주방장 ‘메리’만 남는다. 왕눈깔이라는 별명의 폴은 융통성이라고는 없는 FM 같은 고집불통의 역사 선생님이다. 자신이 정한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성적도 가차 없이 준다. 털리는 성적은 좋지만 친구들과의 관계는 기준 미달이다. 크리스마스 휴가만을 기다렸지만 엄마는 재혼한 남편과 신혼여행을 떠나야 하니 혼자 지내라고 통보한다. 안 그래도 비뚤어진 마음에 더 단단히 골이 났다. 평범해 보이는 메리는 남편을 잃은 이후 군에 입대한 아들마저도 전사한 나머지 마음에 상처가 깊다. 나이도, 성격도, 배경도 그 어느 하나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이들은 원치 않았던 동고동락을 시작하게 되고, 상처받은 이들이 그렇듯 처음엔 서로를 향해 날을 세우거나 자기만의 동굴에 갇히고자 한다.


서로 다른 모양의 슬픔과 외로움을 안고 있지만 어쩌면 모두 닮아 있다. 한정적인 시간, 한정적인 공간 안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서로의 불행과 슬픔을 바라보다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적극적인 위로를 나누기보단 각자의 상처와 외로움을 어렴풋이 이해하면서 서로에게 조금씩 비빌 언덕이 되어 준다.

한 겨울 추위에 닥친 감기 때문인지 뭐 하나 내 맘 같지 않은 일상 때문인지 아늑한 도피가 필요한 날, 몸도 마음도 한 없이 움츠러드는 날 이런 영화를 만나면 좋겠다. 추운 겨울 마신 뜨거운 코코아처럼 마음이 조금은 따뜻해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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