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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여러 종류의 가족이 있다

영화 '대가족'

by Ellie

내 아빠는 풍류를 즐기는 사람이었다. 반주를 곁들이고 노래를 부르기를 좋아하던, 나훈아 노래를 기가 막히게 하던 사람. 친구들에겐 인기가 많았지만 안타깝게도 아빠는 경제적인 책임을 지는 가장의 역할엔 다소 미달했다. 아빠를 원망하던 때도 많았다. 이제는 아빠를 이해한다. 잘 풀리지 않던 자신의 인생을 담보로 잡혀 꾸역꾸역 자신만의 방식으로 삼남매를 키워냈으니 말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한 뒤 집에서 나와 생활하기 시작하면서 아빠와의 관계는 2주에 한 번 정도 통화하고 1년에 3번 정도 만나는 사이, 딱 그 정도였다. 아빠가 무얼 하고 계실까 별로 궁금하지 않았고, 바쁜 일과 중에 아빠 생각이 날 일이 크게 없었으니까. 2주 만의 통화라는 것도 의무적으로 최소한 2주에 한 번 정도는 전화를 걸어 나의 생사를 밝히고 안부를 여쭤야겠다는 딸로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였달까.

가까워지려 노력하고 살갑게 대하려고 하다고 보면 꼭 역효과가 났다. 벼르고 벼르다 부모님과 여행을 떠나면 기분이 상해서 돌아오기 일쑤였다.

아빠의 무료함이 걱정이 돼 이것저것 할 일을 추천해도 탐탁지 않았다. 영화를 보러 가자, 찜질방에 가자 해도 “난 됐다, 너거 엄마랑 갔다 온나”라는 김 빠지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 말이 1인분의 비용을 줄이기 위한 거짓말이었다는 걸 알면서도 모른척했다.

언제부터였을까. 난 아빠와 더 이상 살가워지려는 노력을 않고 딱 '최소한의 딸'의 선을 정했다. 2주에 한 번씩 전화하고, ‘명절+1회’ 정도 집에 가서 인사하는 딱 그 정도. 아빠를 이해하고자 하면서도 고집불통의 당신이 이해되지 않을 땐 입을 다물어 버렸다. 살갑지 못한 딸은 대체로 데면데면했고, 아빠를 이해하고자 하기보다는 그저 최소한의 도리만 다하고자 했다. 아빠가 떠난 이후 문득문득 외로웠을 당신의 일상을 상상해 보자니 애잔한 마음이 인다.


영화 ‘대가족'은 생물학적 가족 외에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존재하는 요즘, 가족의 의미를 묻는 영화다. 노포 만두 맛집 평만옥의 사장 무옥은 30년 넘게 운영 중인 만둣국집이 늘 문전성시를 이루고 빌딩도 여러 채 보유한 알부자지만 휴지 한 장 쓰는 것도 벌벌 떠는 구두쇠다. 근면, 성실, 절약을 최우선 가치로 두고 몸소 실천한 가문과 전통을 중시하는 가부장적인 우리 시대 전형적인 아버지의 모습이다. 하나뿐인 아들 문석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에도 가게 문을 여는 아버지의 억척스러움에 질렸고 돈 밖에 모르는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반발심에 아버지와 의절하고 승려가 되었다. 무옥은 남부럽지 않게 자수성가했지만 아내와는 사별하고 출가한 아들은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어 버렸다.

그런 가운데 갑자기 문석이 아빠라고 주장하는 손주들이 등장한다. 출가 전 의대생이던 시절 문석이 수백 번에 걸쳐 정자 기증을 했던 일이 떠오른다. 아무렴 어떠랴. 아들이 출가한 탓에 대를 잇는 일이 걱정이던 무옥에게 단비 같은 소식이다. 과연 그들은 진짜 가족이 될 수 있을까.


영화의 제목인 '대'가족은 大가족이 아닌 對가족을 말한다. 가족에 대하여. 명절에 보기에 이 만한 영화도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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