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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작사부작, 꼼지락꼼지락

영화 '어른 김장하'

by Ellie

나도 이제 ‘어른’이 된 것 같다고 느낀 게 언제였을까. 사회에 나가 처음으로 월급을 받았을 때, 큰돈이 오가는 부동산 계약을 처음 체결했을 때, 어느덧 사회에서는 중견급 자리에 올랐고 선배보다 후배가 더 무섭다는 걸 알게 됐을 때, 희끗희끗한 새치머리가 더 이상 어색하지 않을 때, 웬만한 자리에 가면 나이 많은 순으로 언제나 세 손가락 안에 꼽힐 때, 평일엔 늘 울려대던 전화가 주말엔 조용하고 용건 없는 전화가 어색할 때, 경사보다는 조사가 많은 나이가 된 걸 알게 됐을 때, 더 이상 ‘꿈’이라거나 ‘열정’이라거나 ‘도전’이라거나 하는 단어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을 때.

어릴 적엔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사회적으로 정의하는 그런 훌륭한 사람 말이다. 세계적인 연구를 하는 교수나, 사회적으로 명예로운 의사나 판검사가 되거나, 특수한 분야에서 세계적인 성취를 거둬 국위선양을 하거나, 사회의 어두운 곳을 살펴 더 나은 세상이 되게 하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지금의 나는 각박한 삶에 치어서 하루하루 살아내기에 바쁜 그저 그런 사회인이자 눈이 내리면 미끄러운 출퇴근길과 차 막힐 걱정밖에 할 줄 모르는, 세상 모든 걸 심드렁하게 느끼는 재미없는 어른이 되고 말았지만 말이다.

이제는 후배나 사회 여러 곳에서 만난 후배들에게 “라떼는 말이야”를 이야기하는 ‘꼰대’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한다. 어른과 꼰대는 한 끗 차이, 나는 충고랍시고 이야기하지만 상대는 잔소리로 받아들일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가끔은 아이처럼 떼도 쓰고 지쳐 쓰러져 울고 싶기도 하지만 나도 이제 사회적 ‘어른’이니까 쉽게 주저앉을 수도 없다. 여전히 모르고 부족하면서도 아닌 척, 아는 척, 의젓한 척하면서 애써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어른 김장하’는 경남 진주의 어느 한약방을 60년간 지킨 한약사 김장하 선생의 이야기를 다룬다. MBC경남의 동명의 다큐멘터리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그는 한약방이 문정성시를 이룬 덕분에 큰 재산을 일구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똥을 쌓아 두면 구린내가 나지만 흩어버리면 거름이 되어 꽃도 피고 열매도 맺는다. 돈도 이와 같아서 주변에 나눠야 사회에 꽃이 핀다”고 했다. 실제로 그는 그 돈을 곳간에 오래 두지 않고 적재적소에 사회에 필요한 이들에게 나눴다. 때문에 괜한 오해를 사기도 했다. 그는 학교를 세웠고, 그가 키워낸 장학생만 해도 수백 명에 이른다. 지원을 하면서도 그 어떤 부담을 주거나 가르침을 주고자 하지 않았다. 장학금 덕분에 사법시험에 합격했다며 찾아간 장학생에게 “빚을 갚으려거든 이 사회에 갚으라” 했다. 100억 원이 넘는 전 재산을 환원하고도 인터뷰 한 번 하지 않고 어려운 이들을 많이 도우면서도 자신의 옷 한 번 허투루 사는 법이 없다. 평생 차 한 대 없이 살았다.

검소한 삶, 담백한 삶, 절제하는 삶, 조용히 선행하는 삶. 그냥 하는 선행도 어렵지만 조용한 선행이란 얼마나 어려운가. 어른에게도 어른이 필요하다. 이런 ‘진짜’ 어른 말이다.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삶을 사는 그를 보면서 나도 조금은 더 좋은 사람, 더 나은 어른이 되고 싶어졌다.

영화에서 장학금을 받고도 특별한, 그러니까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되지 못해서 죄송하다는 장학생에게 그는 “사회는 평범한 사람이 지탱하는 것이다”고 말한다. 사부작사부작, 꼼지락꼼지락 살아가면 되는 것이라고. 우리도 각자의 자리에서 조금씩 그렇게 자신만의 템포로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사부작사부작, 꼼지락꼼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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