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골프=로비'라고? 건전한 스포쓰라고!

영화 '로비'

by Ellie

내 선배들 혹은 직장 상사, 그러니까 중년 아저씨들은 왜 주말만 되면 골프를 쳐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그들의 주말 일상 대부분은 골프가 차지했다. “골프를 왜 치냐” 물으면 약속이나 한 듯 “비즈니스”라는 답이 돌아왔다. 날씨가 좋으면 좋은 대로 라운딩을 나가고 날씨가 춥거나, 덥거나, 비가 오면 스크린 골프장으로 향하거나 연습장으로 향했다. 그들은 대체로 매주 주말마다 골프를 나가야 하는 삶을 피곤해하는 듯 말을 하면서도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성공한 징표인 마냥 꽤나 즐겼다.

그들 핸드폰 사진첩엔 검은색, 회색 등의 교복 차림을 벗어난 형형색색의 골프웨어를 입고 비슷비슷한 모자를 쓰고 골프채를 하나씩 손에 쥔 채 찍은 사진들이 족히 100장쯤은 거뜬히 들어있을지도 모른다. 화려한 패션의 세계도, 알 수 없는 대화들도 나와는 상관없는 아저씨들만의 알 수 없는, 알고 싶지 않은 세계라고 여겼다.


만나면 골프 얘기만 하고 엘리베이터 앞이나 길을 가다 잠시라도 서 있을 기회가 생기면, 게다가 그 모습이 어딘가에 비친다 싶으면 가만히 있지 못하고 우산이며 빗자루며 긴 막대기를 들고 골프 포즈를 잡는 꼬락서니가 어찌나 보기 싫던지. 공을 치기 전 자세는 또 왜 그렇게 엉성하고 우스꽝스러운지. 엉덩이를 이상하게 오리엉덩이처럼 빼고 비비적 거리는 꼴이 왜 그렇게 꼴사나운지나 말이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골프장에서는 한 타 한 타를 놓고 왜 그렇게 치사하고 유치해지는지도 모르겠다. 내기 골프를 하는 경우 ‘돈’이 걸려 있어서 그렇고 괜히 자존심이 상하기도 해서다. 그래서 변명도 많아진다. 골프를 치려고 모여서는 왜 그렇게 ‘어제 술을 많이 마셨네’, ‘엘보가 왔네’, ‘허리를 삐끗했네’ 등 핑계가 끝도 없다.

‘알까기’, ‘오잘공’, ‘일파만파’, ‘뽕샷’, ‘막창’, ‘도로공사 협찬’ 등 뭔가 좀스러워 보이는 다양한 은어들은 또 왜 이렇게 많은지 모를 일이다. 여기서 일명 ‘알까기’는 볼이 잘 보이지 않을 때 주머니에서 다른 볼을 슬쩍 꺼내 내려놓는 걸 말하는데 남이 해주면 ‘매너 알까기’가 되지만 내가 하면 쫌생이가 된다. 실제 플레이에서는 실격을 당할 수도 있는 중대한 페널티이기도 하고 우격다짐으로 번질 수도 있는 꽤 심각한(?) 이슈다.

또 하나, 골프를 좋아한다는 말이 왠지 좀 쉽게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 거다. ‘러닝’을 좋아한다고 하면 요즘 사람(?) 같고 힙해 보이기도 하면서 좋은 러닝화를 사는 건 합리적인 소비로 보이지만, 골프를 좋아한다고 하면 왠지 세속적인 인간으로 비치는 것 같고 골프를 위한 소비는 왠지 모르게 사치스럽게 느껴지니까 말이다.

무엇보다 골프는 여전히 이런 아저씨들의 놀이터라는 이미지가 여전한 데다 골프장에서 벌어지는 일들도 뭔가 구려보이는 거다. 다양한 영화나 드라마에서 익히 보았듯이 골프장은 많은 이들에게 ‘내기’의 장이거나, 각종 ‘로비’가 펼쳐지는 무대가 아니던가. ‘로비’라는 영화까지 나왔으니 말 다했다.


영화 ‘로비’는 골프장에서 벌어지는 이른바 ‘로비골프’ 이야기를 담았다. 오직 기술로만 승부하던 스타트업 대표 창욱(하정우 배우)이 한 땐 친구였던 라이벌 회사 대표인 광우(박병운 배우)에게 이른바 그의 ‘로비력’ 때문에 기회도 날리고 기술도 뺏긴다. 이대로는 회사가 망할 위기에 놓이고 창욱에게는 4조 원에 달하는 국책사업을 따내는 것이 유일한 희망이다. 이번에도 가만히 앉아 당할 수만은 없다고 판단, 골프 로비에 나선다. “더럽게 싸움을 걸면 더럽게 싸워드리겠다”는 일념으로. 급하게 골프를 배워나가고, 로비 대상이 좋아하는 프로 골퍼 섭외에도 나선다. 로비골프의 결말은 상상에 맡기겠다.

언제부터였던가. 나 역시 침 튀겨가며 골프가 얼마나 재밌고 신나지만 사람을 미치게 하고 그 와중에 또 너무 가고 싶어 몸이 꿈틀거리는 운동인지 설파하는 사람이 되었다. 술 먹고 골프얘기 밖에 할 줄 모르는 재미없는 부장님이 된 거 같아 좀 슬펐다.

그러거나 말거나 골프는 한 사람의 삶의 방식과 생각을 꽤 많이 바꾸어 놓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옷의 취향도 일상의 루틴도 사람들과의 대화소재도 주말의 일과도. 골프가 꼭 아재들만 하는 재미없는 놀이는 아니었다.

학씨아저씨 말마따나 “땐스는 건전한 스포쓰”이고 골프도 건전한 스포쓰다. 무엇보다 골프는 진짜 재밌다. 골프만큼 영화 ‘로비’도 재밌다. 골프를 몰라도 재밌지만 알면 훨씬 더 재밌다.

keyword
이전 06화이번 판은 졌지만,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 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