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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까지 기억나는 1999년 2월 어느 날의 추억

영화 '쉬리'

by Ellie Mar 24. 2025

1999년 2월의 일이다. 바야흐로 중2병을 벗어나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때였다. H.O.T 오빠들과 친구들이 인생의 전부이던 시절이었다.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싱숭생숭하며 친구들과 헤어질 생각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당시 집이 멀리 이사 가는 통에 나 혼자 중학교 때 친구들 하나 없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된 탓이었다. 중학교 때 4인 체제로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과도 뿔뿔이 흩어지게 됐다. 아쉬운 생각에 친구들과 마지막으로 함께 모여 영화도 보고 맛있는 것도 먹자고 결의했다. 그 시절 일상을 벗어난 가장 큰 나들이는 영화관이었다.

한 해 전인 1998년에 서울에는 여러 상영관에서 다양한 영화를 볼 수 있는 첫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들어왔다고 했다. 내 고향 부산엔 남포동을 중심으로 여전히 단관 극장이 위세를 떨치던 시기였다. 그즈음(1999년 2월 13일 개봉) 영화관을 주름잡던 한국영화 ‘쉬리’는 한국형 블록버스터라는 수식어와 함께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게다가 이제 고등학생 이상 관람가 영화도 당당하게 볼 수 있는 나이가 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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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에 간다는 일이, 게다가 ‘쉬리’를 보러 간다는 사실만으로도 꽤 설레서 잠도 설쳤다. 영화관에 갈 때 뭘 입을지도 한참 고민했다. 이제 중학생이 아닌 고등학생이란 걸 으스대고 싶었던지 중학생티를 벗으려고 꽤나 멋을 냈다. 몸은 이미 성인이지만 맨날 교복만 입던 중딩에게 어색하기만 한 멋 부린 옷을 입고 당시 장안의 화제작인 쉬리를 보러 갔던 것이다. 함께 영화를 보기 위해 모인 친구들 역시 하나 같이 어색한 옷을 입고 어색하게 서 있었다. ‘쉬리 4장이요’라고 말하는 게 어려워 누구 하나 앞장서지 못하고 영화관 앞 1층 매표소에서 쭈뼜댔던 것 같다.

그때만 해도 부산극장, 보림극장, 대영시네마 등이 줄을 있던 부산의 남포동 극장가는 그 분위기만으로도 꽤나 설레는 곳이었다. 친구들의 만남의 장소이자 데이트 장소의 메카라고나 할까. 영화관을 둘러싸고는 번데기와 오징어, 감자튀김  등을 파는 노점상들이 줄을 짓고 있었고 거기서 군것질거리를 사서 영화를 보러 가는 게 꽤나 낭만적인 일이었다. 그때만 해도 영화관에서 먹는 군것질거리는 팝콘보단 오징어가 대세였다. 짭조름한 오징어 냄새를 맡으며 영화관에 들어가 불이 꺼지고 화면이 밝아져 올 때면 가슴이 콩닥거렸다. 아마도 한 손에는 오징어를 든 채 입으로 질겅이고 있었을 것이다.

“와, 씨. 졸라 재밌네.”

영화를 보고 충격에 빠졌다. 세상에 한국영화도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다니! 말도 못 하게 재미있었다. ‘인디아나 존스’, ‘터미네이터’, ‘타이타닉’ 등의 할리우드식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며 느낀 충격에 버금갔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스케일에 압도당했다. 당시 600만 명이 넘는 관객들이 ‘쉬리’ 영화를 봤다고 하니 가히 돌품이었다. 누군가의 말마따나 한국영화 르네상스 시대의 시작이었다.

최근 무려 26년 만에 영화 ‘쉬리’가 4K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재개봉했다.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당시 친구들과 함께 단체 재개봉 관람 나들이에 나서고 싶지만 우물쭈물 대던 10대 소녀이던 친구들은 어느덧 그 당시 엄마들의 나이가 되었고, 먹고살기 바쁜 친구들과는 대소사가 아니면 몇 년에 한 번 얼굴 볼까 말까 한 사이가 되었다.

어렴풋하면서도 냄새까지 기억나는  듯한 그날의 기억이 어쩌면 내 십 대 시절의 화양연화이지 않을까. 가끔은 영화관에서 본 영화 한 편이 내 인생 한 페이지를 뚜렷하게 장식한다. 영화관이 주는 짭조름한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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