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고독한 미식가'
나는 기내식을 좋아한다. 내게 있어 기내식을 먹는 게 여행의 시작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업무용 비행이 많은 탓에 장기 비행에 이골이 난 어떤 이는 기내식을 무슨 맛으로 먹는지 모르겠다며 기내식 대신 잠을 청한다고도 하던데 나는 도대체 이해가 안 된다. 기내식 없는 비행이 무슨 재미냔 말이다. 나는 비행기를 타자마자 기내식이 언제 나올지만 오매불망 기다린다. 대체로 치킨 아니면 비프, 국적기라면 비빔밥 정도의 옵션일 뿐이지만 내 차례가 언제일지 가늠하며 줄어드는 카트를 보며 기대감이 부풀어 온다.
치킨 또는 비프라는 작은 선택지 안에서도 말도 못 하게 고민을 한다. 앞서 먹기 시작한 이들의 테이블을 살피며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다. 최선을 선택지를 찾고 싶기 때문이다. 하늘 위에서는 왠지 모르게 평소의 내 취향과는 별개의 선택을 하기도 한다.
음식을 잔뜩 실은 카트가 앞에서 뒤로, 뒤에서 앞으로 서서히 다가오는 가운데 중간쯤 위치해 있을 때 가장 조바심이 난다. 장고 끝에 치킨 대신 비프를 먹어야지 마음속으로 결심을 했는데 하필이면 비프 메뉴가 떨어질까 봐. 혹은 비행 중 어떤 비상 상황이 생겨 내 앞줄까지는 배식을 받았는데 하필 내가 받을 차례에 장기간 대기해야 하는 일이 생길까 봐.
운 좋게 배식을 빨리 받는 자리에 앉았을 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천천히 음식을 즐기고 원하는 음료도 즐긴다. 나는 대체로 맥주나 와인을 최소 2회 이상 마신다. 주류만으로 좀 더 뽕을 뽑겠다는 얄팍한 심산이다.
비빔밥과 같은 한식이 있으면 대체로 한식을 고른다. 고추장을 뿌리면 대체로 실패가 없기 때문이며 아마도 당분간 며칠간은 한식과는 먼 끼니를 챙겨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한 때는 고추장을 하나 더 달라고 해 주머니에 챙기기도 했는데 좀 없어 보이기도 하고, 그만큼 고추장이 필요한 상황이 생각보다 오지 않기도 하고, 고추장쯤이야 건너뛸 만큼 내 비행 경험치도 쌓인 덕분인 것 같다.
기내식을 주지 않는 저가 항공사 비행기를 탔을 땐 유료로 컵라면을 먹기도 한다. 똑같은 컵라면이지만 왠지 더 맛있게 느껴지는 건 아마도 기분 탓(?)이겠지만 뭐 어떠랴. 하늘 위에서 라면을 먹는 호사를 누리는 기분은 꽤 신난다.
영화 ‘고독한 미식가 더 무비’는 마츠시케 유타카가 주연을 맡아 인기리에 방영됐던 일본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의 극장판이다. 파리에서 만난 옛 연인의 딸의 할아버지의 부탁으로 국물 찾기에 나선다. ‘잇짱지루’ 불리는 정체불명의 국물을 찾아 떠나기 시작하며 벌어지는 소동을 담았다. 덕분에 한국의 외딴섬에 불법 정착하기도 하고 뜻밖의 장소에서 새로운 맛을 만나 점차 원하는 맛에 다다른다.
파리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기내식을 두고 고민하다 결국 하나도 먹지 못한 이노가시라를 보면서 기내식 때문에 들떴다 가라앉은 내 과거의 어떤 장면이 떠오른다. 뭐 하나 익숙한 게 없어 비행기 안에서 좌불안석이었던 순간, 배고픔에 허덕이던 내가 먹은 기똥찬 맛이 기억 나서다. 이젠 그 누구도 기내식에 감동하지 않더라.
그래도 난 여전히 기내식이 좋다. 기분 탓이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