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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길티 플레저가 무어냐 물으신다면

영화 '핸섬 가이즈'

by Ellie

나만의 길티 플레져는 술 먹은 뒤 먹는 사발면이다. 안주발을 세웠지만 왠지 모르게 허한 뱃속을 특유의 면발과 국물로 꽉 채워준다. 음주 후 탄수화물이 당길 때 이 만한 선택지가 없다. 천 원 정도면 족하다. 싸구려 감성의 맛이지만 내게는 더할 나위 없는 일종의 소울푸드이기도 하다.

덕분에 허벅지에 커다란 훈장도 새겼다. 그날은 술이 좀 과했던지 물을 부어 둔 사발면을 들고 먹다가 국물을 허벅지에 쏟은 것이다. 대수롭지 않게 라면 국물을 닦고 남은 사발면부터 해치웠다. 깨끗하게 샤워도 마치고 자고 일어났는데 퉁퉁 부은 얼굴과 함께 손바닥만 하게 물집이 생긴 허벅지가 나를 당황케 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고 그 와중에 라면부터 먹어 치운 나 자신이 어찌나 미련스럽던지. 부지런히 피부과를 다녔지만 허벅지에 사발면 크기 만한 흉터가 생겼다. 이 정도면 사발면을 끊든 술을 끊든 해야 할 텐데, 여전히 사발면은 내게 음주 후 즉각적인 쾌락을 주는 나만의 길티 플레저다.


영화 ‘핸섬가이즈’는 내게 일종의 길티 플레저 영화다. 뭔가 불량식품 같은 맛이지만 진짜 골 때리게 웃겨 즉각적인 웃음으로 인도한다.

자칭 터프가이 ‘재필’(이성민 배우)과 섹시가이 ‘상구’(이희준 배우)는 다소 험상궂은 외모 탓에 새로운 동네에 이사 간 첫날부터 동네 경찰의 특별 감시 대상이 된다. 꿈꾸던 전원주택에서 새 출발 한다는 것에 행복하기만 할 줄 알았지만 물에 빠질뻔한 ‘미나’(공승연 배우)를 구해주려다 오히려 납치범으로 오해받으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담았다. 이후에는 좀처럼 예측할 수 없는 당혹스러운 상황이 연이어 펼쳐지는데 기괴하고 다소 잔악하고 얼토당토않는 유머 코드에 2시간 깔깔거리게 한다.

혼자 볼 때보단 함께 봐야 더 좋다. 옆에 사람이 너무 웃어제끼니까(?) 덩달아 재미있어지는 매직. 역시 웃음은 이상한 전염성이 있다. 이런 길티 플레저라면 환영이다. 단, 임산부 및 노약자에게는 비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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