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만약에 우리'
만약에 내가 그때 그를 붙잡았더라면, 만약에 그때 내가 좀 더 용기를 냈다면 현재는 달라졌을까? 과거에 놓친 인연에 관한 이야기뿐이 아니다. 만약에 내가 그때 전과를 했더라면, 꿈을 포기하지 않았더라면, 과감히 이직을 했더라면, 집을 샀더라면, 뛰어가서 지하철을 탔더라면... 누구나 인생의 '만약'을 상상하고 꿈꾼다.
'만약에'라는 말을 정면에 내세운 영화 '만약에 우리'는 한 때 뜨거웠던 사랑과 꿈에 대한 이야기다. 2008년 고향으로 내려가는 고속버스에서 은호(구교환 분)는 우연히 정원(문가영 분) 옆자리에 앉게 된다. 버스가 산사태 사고로 오갈 수 없게 되면서 고향에서 시간을 같이 보내고 마음에 담게 된다. 서울로 올라와 은호는 온라인상에서 정원을 찾아 나섰고 결국 찾아낸다. 그렇게 만난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친구로 지내다 연인 사이로 발전하게 된다. 뜨겁게 사랑했고 서로의 집이 되어주며 응원하고 지지했지만 현실이라는 벽 앞에서 서로를 놓아버린다. 이후 세월이 흘러 2024년 비행기 안에서 서로가 서로를 알아본다. 10년 만에 우연히 재회한 둘은 서로의 기억의 흔적을 펼쳐본다.
영화 속 인물들이 다시 같은 시간을 걷는 동안 관객은 저마다 다른 과거의 시간을 지난다. 아마도 같은 장면을 보면서도 각자의 기억에 발을 디딘 채 누군가를, 어떤 순간을 떠올릴지 모르겠다. 아마 결국 그 끝에 떠오르는 건 그 시절의 나일지도 모른다. 순수했고 뜨거웠고 열정만으로도 모든 걸 헤처 나갈 수 있었던 그 시절의 내가 몸서리치게 그리워질 수도 있다.
조건이랄지 배경이랄지 뭐 하나 재고 따지지 않고 그저 마음 하나만으로 서로를 향해 맹렬히 달려들어 타들어갈 수 있었던 순간들. 서로의 꿈을 응원하며 자연스럽게 둘이서 함께 할 미래를 그려나갔지만 고약하게도 뜨거웠던 마음도 복잡한 현실과 무력한 상황 앞에서 미지근하게 식어가기도 한다. 특별히 다투지도 않았고, 누군가가 크게 잘못하지도 않았다. 다만 각자의 하루가 조금씩 달라졌고 현실이라는 단어가 자주 대화와 일상에 끼어들기 시작했을 때였을 것이다. 서로를 위한다며 하는 행동이며 말들은 이제 배려가 아닌 부담으로 다가갔다. 누구도 이별을 입에 담지 않았고 헤어지자는 말을 제대로 내뱉진 않았지만 일상의 사소한 순간이 티핑포인트가 되어 희미한 끈을 놓아버렸고 서로의 삶에서 페이드아웃 되어갔다.
현실이 힘에 부치거나 마뜩지 않을 때 가끔은 '만약에'라는 말을 통해 과거를 통재로 부정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 했고, 그 선택은 틀렸고, 그래서 지금의 내가 다른 삶을 살고 있어야 했다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그 생각은 힘을 잃는다. 그 시절의 나는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최선의 선택과 판단을 했다.
'만약에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었던 사랑의 이야기가 아니라 과거와의 좋은 이별을 통해 지나온 시간과 사랑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하는 영화다. 잘 이별하는 것은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련을 부정하지 않고 그 시간을 통과한 자신을 신뢰하고 다독여주고 현실을 살아가게 하는 힘을 내게 하는 것이다. 좋은 이별은 해피엔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