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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 Jul 22. 2020

미용실 이용법

나는 최소 2~3개월에 한 번씩 미용실에 간다. 사실은 20대 후반부터 새치머리가 올라와 3~4주 간격으로 자라나는 머리카락을 염색해야 했다. 하지만 미용실에 쓰는 돈이 아까워 최소 3~4주에 한 번은 해야 하는 새치머리 염색은 두 번 중 한 번 정도는 집에서 혼자 해결하려 애쓴다. 두 번에 한 번 꼴로 남의 손을 빌려 염색을 해야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의 흰머리도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멋내기 염색이 아닌 흰머리를 가리기 위한 염색이기 때문에 무조건 싼 미용실로 간다. 내 기준에서는 3만원이 마지노선이다.   


염색을 차치하고도 3개월에 한 번씩 미용실에 가는 이유는 자라는 곱슬머리를 가지런히 펴기 위해서다. 미용업계 용어로는 '매직'스트레이트다. 나 같은 지독한 곱슬머리를 타고는 사람에겐 말 그대로 '마술' 같은 시술이다. 고등학생이던 시절 이 미용기술이 등장해 지독한 곱슬머리 인간인 내게도 직모 머리를 할 수 있는 광명의 날이 찾아왔다. 그 이후로 십수 년째 정기적으로 미용실에 들러 마술 같은 이 시술을 한다. 어떤 날, 머리의 새치와 굽슬거림이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나는 집 앞의 미용실로 달려간다. 나는 2~3개월에 한 번씩 미용실에 가서 매직 시술 또는 염색을 하는 나름대로 미용실 헤비유저(Heavy User)다. 


언제나처럼 나는 집 앞의 미용실에 들렀다. 언젠가부터 카카오의 헤어숍 서비스를 이용해 예약한 뒤 들른다. 미용실에 들르면 가장 불쾌한 경험일 수 있는 기장 추가, 영양 추가 등의 호객행위에 노출되지 않을 수 있고, 리뷰를 본 뒤 디자이너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끔 소소한 할인쿠폰도 주니 소비자 입장에선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아마도 미용실에서 일정액의 수수료를 내야 할 테니 웬만하면 직접 미용실에 전화를 걸어 예약을 해야겠다 생각하지만 그 다짐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만다. 카카오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서비스 업계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다는 생각에 다소 뒷맛이 쓰지만, 소비자 입장에서 쓰지 않을 도리가 없다. 

"아 벌써 3개월이 지났군요." 
한 미용실에 몇 번 왔더니 알은체를 한다. 
"네. 벌써 3개월이 넘었네요."
이례적인 답을 한다. 
"얼마나, 어떻게 해드릴까요?"
"적당히 상한 머리 잘라내주시고 잘 펴주세요. 아, 너무 붙지 않게 볼륨매직으로요." (두피에 머리가 너무 붙지 않게 하는 건 마술에 볼륨을 더해야 한다) 

분명 나는 까다롭지 않은 손님일 게다. '적당히', '잘' 정도의 꾸밈말로 주문한다. 


내가 주로 이용하는 이 미용실은 적당한 친절함이 매력인 곳이다. 어색한 질문을 시도하며 필요 이상의 말을 걸어오지 않는 점이 좋다. 최소한의 인사말로 나와 내 머리카락의 안부를 묻고 난 뒤 나는 스마트폰에, 미용사는 내 머리에 집중한다.(집중하는 거라고 믿고 있다)

평소엔 말이 없던 미용사가 대뜸 고백한다. 미용실 문을 닫게 됐다고. 그러면서 이야기를 이어나가길 도로변 미용실과 합치게 됐단다. 경기가 안 좋아 미용실 운영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둘 다 한 번쯤은 들어본 미용업계 대형 프랜차이즈인데도 손님이 많이 줄었다는 거다. 오늘따라 말이 많아진 이 미용사는 미용실 운영을 위해 월세 500만 원, 전기세 100만 원, 물세 80만 원, 4명의 직원 월급 등으로 고정비만 2000만 원이 들어간다고 했다. 이 정도 평수면 월세가 제법 비싸겠거니 생각했고 미용실이 물도 전기도 많이 쓰겠거니 짐작은 했지만, 막상 액수를 듣고 보니 알량한 직장인 계산법에선 입이 떡 벌어진다. 2000만 원의 고정비를 감당해야 하는 자영업자의 속은 얼마나 쓰릴까. 물론 그 이상의 매출을 올리면 되겠지만 고정비도 안 나와 문을 닫는 곳이 많다고 하는데 매월 감당해야 할 돈이 수천만 원이라면 이건 뭐 수명이 줄어드는 일일 테다.
  
그러면서 이전하는 곳을 알려준다. 역 근처 대로변에 있는 미용실이다. 
"고객님은 대체로 3~4개월에 한 번씩 오시니까 이제 여름쯤 뵙겠네요."

눈치 없고, 일머리도 없는 신입 직원은 그대로다. 내 눈에도 어설픔과 의지 없음이 보였고, 이를 대놓고 질책하는 원장의 모습이 뇌리에 박혔는데 용케도 오래 일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새로 옮겨 가는 미용실에도 함께 간다고 한다. 

"손님도 눈치채셨구나. 사실 요즘도 어제 일 처음 하는 애처럼 말 귀 못 알아들으면 속이 터져요. 근데 다른 애들은 2달도 잘 못 버티는데 저 친구는 그래도 안 나가고 버티더라고요."

정답은 없다. 
어떤 때는 빠른 포기가, 어떨 땐 버티는 게 답이다. 
이 미용실은 포기를, 그 직원은 버티기를 택했다.
모두에게 정답이기를 바란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2~3개월에 한 번씩 미용실에 들를 예정이다. 이사를 가게 되면 굳이 예전 동네 미용실을 찾지 않을 것이다. 차비를 들여 가야 할 만큼 매력적인 곳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동네에서 또 적당히 친절하고, 평균 정도의 가격을 지불할 수 있는 미용실을 찾을 것이다. 당연한듯 카카오 헤어숍을 이용할 것이고 리뷰와 별점이 좋은 곳을 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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