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극복 중 3

아르바이트 투잡 뛰기 2/2

by 솔솔

2023년 8월 아르바이트를 더 뛰기 위해서 gs25 편의점, cu 편의점, 파리바게뜨, 개인 카페 등에 이력서를 넣었다. gs25 편의점은 시급이 너무 낮아서 별로였고, cu 편의점에서는 별다른 답장을 주지 않았다. 결국에 합격한 가게는 파리바게뜨와 개인 카페였다. 나는 카페 경력을 쌓아보는 게 좋지 않냐는 편의점 사장님 충고에 따라 카페에 출근하기로 다짐했다. 아직도 카페에 처음 출근하던 날을 기억한다. 사장님이 집까지 차로 데려다주시는 중에 나는 ‘엄마, 아빠 빼고 아무도 마음속에 들어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라는 말을 건넸다. 사장님이 어두운 분위기를 풀풀 내는 어린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서 시답잖은 농담을 건네셨다. 요즘 mz세대는 어떻다든지, 전 여자친구는 어땠다든지, 지금 현부인은 어떻게 만났는지, 시시콜콜 다 풀어내서 말씀해 주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 것이다. 다이소에 입사했을 때도 아버지 실직 이야기를 꺼내서 사람들의 입방아에 올랐는데, 카페 사장님을 처음 만났을 때도 우중충한 분위기를 내면서 일하기 위한 좋은 인재라는 이미지를 심어주지 못했다. 나중에 아빠와 전화 통화를 하면서 거기서도 똑같은 짓을 하면 어떡하냐고 한 소리를 들었다. 잔소리를 들었을 당시에는 자기 연민이 심해서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몰랐다. 상태가 많이 호전된 나중 에서야 되돌아보니 내가 큰 잘못을 저질렀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카페 사장님은 나에게 별다른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카페 퇴근하는 며칠을 차로 집까지 데려다주시고, 내가 하는 이야기를 들어주시고, 웃긴 이야기로 어두운 분위기를 깨트려 주셨다.


카페 사장님은 정말 내 편의를 많이 봐주셨다. 어떻게든 삐뚤어진 나라는 아이를 바로 잡아주려고 노력하셨다. 아르바이트 중 자잘한 실수도 눈감아 주시고, 사람들 애정이 필요해서 관종 짓을 했는데도 알면서 모르는 척해주셨다. 그래도 ‘방금 왜 그렇게 한 거예요?’와 같이 지적하는 말씀은 빼지 않고 해 주셨다. 그리고 불우한 가정환경에서도 그걸 극복하고 지금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 동창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주셨다. 특히 필리핀으로 유학을 갔다 와서 사업으로 성공한 동창 이야기를 가장 좋아했는데, 그 사람 인생사를 듣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자극되는 면이 있었다. 우울증으로 몸이 굉장히 굼떴는데도 다른 아르바이트생처럼 몸을 빨리 움직이라는 말씀 외에는 별다른 게 없었다. 물론 쓴소리를 들은 적도 있고, 일 못한다는 자괴감에 카페 화장실에서 몰래 울음을 터트리는 날도 있었다.


어느 날은 사장님이 바라는 기대치에 미치지 못해 크게 혼난 날이었다. 매일 30분 일찍 출근하고, 30분 늦게 퇴근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머리가 늘지 않아서, 남들보다 배로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실력이 평균에 미치지 못해서 크게 좌절했다. 아마 우울증으로 인한 몸의 굼뜸이나 집중력 저하가 완벽하게 해결되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도저히 우울감을 해소할 수 없었다. 카페 사장님은 인성이 좋으신 분이셨지만 돈을 주고 직원을 사용하는 고용주이기도 하셨기 때문에 매서운 훈계질은 따라올 수밖에 없었다. ‘사람은 누구나 노력한다, 하지만 잘하는 게 중요하다.’ ‘평소에 잘하던 사람이 한 번 실수하는 거랑 못하는 사람이 여러 번 실수하는 거는 큰 차이가 있다.’ 그런 말을 듣고 나면 자존감이 떨어지고 우울의 늪으로 빠져서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데 시간이 걸렸다.


나는 아르바이트로 마음이 그렇게 깨져있는 줄 몰랐다. 크게 혼난 다음 주 정신병원에서 사장님 조언 이야기를 하다 울음이 터져 나왔다. 정신과 의사 선생님께서는 ‘속도는 중요하지 않다. 조금씩 늘어나는 게 중요하다.’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리고 ‘정신과에서 인생을 책임져줄 수 없다. 우리는 약을 처방할 뿐 본인 인생의 문제는 스스로가 해결해야 한다.’라고 덧붙이셨다. 아마도 위로와 채찍질을 동시에 하기 위해서 그런 말씀을 하신 거라고 여긴다. 그래도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정신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정류장에서도 말없이 눈물이 터지고, 버스 안에서도 눈물샘이 멈추지를 않았다. 심지어 과거에 나한테 상처 준 대학교 동기와 병원 의사가 떠올랐다. 그들이 나에게 준 모욕적인 언사를 곱씹으면서 슬픔을 되새김질했다. 다행히 집에 도착할 때쯤에는 눈물이 멈추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가장 좋은 점은 보통의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다는 점이다. 남과 나를 비교하고 스스로 고치기 굉장히 수월한 환경이다. 주위에서 들어오는 지적과 충고를 피드백하는 과정에서 병의 증상들이 눈에 띄게 호전된다. 그 과정에서 어딘가 아픈 나를 반드시 다른 사람들 앞에 드러내야 한다. 어떤 사람은 나를 피하고, 어떤 사람은 나를 멸시하고, 또 어떤 사람은 나를 싫어한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다시 일으키고 고쳐주려고 하는 좋은 어른이 반드시 존재한다. 나를 도와주는 사람들의 말을 몸으로 옮기기만 해도 우울증은 차차 나아진다. 우울증이 점점 낫다 보면 주변에 정신적으로 아픈 사람이 하나둘씩 눈에 띄기 시작한다. 전에는 아무렇지 않게 여겼던 풍경이 사실은 평범한 그림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렇게 점점 과거에 내가 했던 행동들이 사실은 우울증 환자의 몸짓이었다는 걸 아는 순간에 세상은 다르게 보인다


다이소.jpg


작가의 이전글우울증 극복 중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