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알아? 생각보다 재밌을지도 모르잖아!
이번에는 영화 <라푼젤>과 친구와의 대화에서 영감을 얻은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나는 초등학교 때 2번의 전학을 갔는데, 마지막 전학이 5학년이었다. 고학년에 전학을 간 학교는 그다지 좋은 친구들이 있지 않았다. 여러 명이 한 명을 둘러싸고 괴롭히는 장면도 많이 봤고 친구를 따돌리면서 급식 줄을 설 때는, 계급처럼 항상 정해진 순서대로 서야만 했다. 나는 좀 소극적인 편이었는데, 그런 친구들의 모습을 보니까 더 무섭더라. 그래서 별 말을 못 하고 그렇게 지내다가 은따가 되었다. 은은한 따돌림이랄까? 딱히 어울리고 싶은 친구가 없었다. 거의 자발적 아싸랄까나?
교실에 혼자 앉아있는 것이 싫어서 다른 곳을 가고 싶었다. 학교 내에서 혼자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곳은 "도서관"이었다. 이전에도 책을 좋아했지만, 그때 책을 특히 좋아하게 되었다. 책을 읽으면 혼자 있어도 이상하지 않고, 괴롭힘이나 어울리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 머릿속은 온통 책 이야기로 가득해진다. 다른 생각이 전혀 나지 않는다는 것이 최고 장점이었다.
그렇게 중학교로 진학했고 도서관 위치를 찾는 것이 나의 첫 임무였다. 성공했고 10분 남짓한 쉬는 시간까지도 도서관에 갔다. 점심시간은 물론이었다. 그러다가 뒷자리 친구를 만난 것이다. 중학교 1학년 입학하자마자 내 뒷자리에 앉은 친구가 정말 재밌었다. 내 짝꿍과 둘이 친한 듯 보여서 이야기에 끼기 좋은 위치였다. 그냥 번호순으로 앉은 거였는데, 번호로 줄을 서는 일이 많았다. 그 둘과 어울리지 최적의 위치에 선 것이다. 심지어 그 친구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더라. 내가 어떻게 생겼느니, 뭘 입고 있느니. 이런 말들은 전혀 관심도 없어하는 듯 보였다. 내가 한 말 한마디를 꼬아서 듣지도 않고 올곧게 바라봐주는 시선이 얼마나 오랜만이던가.
'이 친구와 친해지고 싶다.'는 마음이 처음으로 생겼다. 이 친구를 이 글에서 더 언급할 때, '은하수'라 칭하겠다. 은하수는 정말 멋있는 친구였다. 공부도 열심히 했고 학급 활동이나 학교에서 하는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리고 리더십이 있더라. 친구들의 의견을 모을 줄 알고, 들어주고 조정해준다. 누구의 의견 하나 배제하는 법이 없이 잘 들어준다. 그리고 재미있다. 무슨 말만 해도 빵빵 터질 정도로 재밌는 친구였다. 누구를 무시하지도 않고 편견 없이 바라봐주니까 은하수와의 대화는 정말 최고였다. 분명 나는 은하수라는 친구와 친해지고 싶어서 대화를 하고 있다가 어느 순간 보면 옆에 친구들이 가득 모여있더라. 은하수뿐만 아니라 친구들이 모여서 내 이야기를 들어주더라. 그게 너무 좋았다. 은하수는 나에게 친구 사귀는 방법을 알려줬다. 같은 말도 어떻게 하면 재치 있고 긍정적인 말이 되는 지를 간접적으로 알려준 셈이다. 은하수가 계기가 되어 나에게도 여러 친구들이 생겼다. 이때 처음 깨달았다.
친구들이랑 노는 건 생각보다 더 재밌네?
고등학교에 입학했고, 핵인싸 소리를 들으면서 학교를 다녔다. 자신감이 생겨서 친구를 사귀는 일에 거침이 없었다. 친해질 수 없을 것 같던 친구들과도 친해졌고, 대외활동을 통해 전혀 일면식이 없던 친구들도 사귀었다. 내가 정말 못 사귈 것 같은 친구들을 사귀니까 점점 더 자신감이 생겼다.
알바를 시작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잘 어울리지 못한 것 같았으나 곧 어울렸고, 그 안에서 소중한 인연이 시작되어 지금까지 이어나가고 있다. 그중 소중한 인연을 하나 소개하고 싶다. 이 분은 '고고잉'으로 지칭하겠다. 왜 그런지는 본인이 더 잘 알 것이다.
고고잉은 알바를 하다가 만났다. 나보다 나이가 3살쯤 더 많을 것이다. 그런데 권위의식이 없다. 나이가 많다고 자신을 공경해야 한다? 는 이런 종류의 생각들이 없다. 그래서 내가 정확한 나이를 기억하지 못하나 보다. 내 첫 카페 알바에서 나를 교육해주고 같이 마감 업무를 했던 고고잉씨는, 일을 가르칠 때는 조금 엄했던 것 같은데 일이 익숙해진 후로는 그냥 동네 언니 같았다. 고고잉씨에게 정말 대단한 장점이 2개 있다.
하나는, 상대방이 화났을 때 화난 이유를 묻고, 자신이 잘못한 일을 바로 인정한다. 일단 이게 얼마나 크고 대단하냐면, 나는 화났을 때 누군가 나에게 화난 이유를 물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나도 상대방이 나한테 화났음을 느껴도 물어보지 않았다. 그런데 고고잉씨는 상대방의 기분의 이유를 묻더라. 그건 상대방이 풀어내는 감정의 투정 같은 것도 받아줘야 하고 그 이유가 본인을 향한다면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자존심이 상하고 본인도 기분이 상할 텐데 정말 태연하게 그걸 다 풀어나간다. 그게 정말 대단해 보이더라. 나 역시 처음이었다. 내 기분의 이유를 묻고 풀어주려고 하는 사람을 본 것이. 덕분에 '화'라는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이랑 상대방에 '화'에 다가가는 방법을 배웠다.
두 번째는, 도전이다. 나는 편식이 굉장히 심하다. 이전에 경험이 없던 음식은 입에도 안 대고 조금이라도 나쁜 경험이 섞여있는 음식 근처도 가지 않는다. 내가 이전부터 먹어서 맛있다고 느낀 것만 먹었다. 내 생각은 이러했다. "굳이 맛있는 걸 두고 맛없을지도 모르는 음식에 도전해야 할까?" 그런데 고고잉씨는 이렇게 얘기하더라.
"먹어보지도 않고 어떻게 맛있는지, 맛없는 지를 알아?"
항상 이런 느낌으로 나를 먹게 만든다. 이 얘기를 듣고 먹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맛있음, 맛없음을 먹어보는 경험을 통해 구별했다. 어떤 것은 내 생각보다 너무 맛있었고 어떤 것은 맛이 없었다. 경험하기 전에는 맛없는 것을 먹으면, 맛있는 걸 먹지 않았다는 후회가 되었는데, 이후에는 맛없는 것을 먹어도 '아, 이건 나랑 안 맞네?'라는 생각으로 그걸 안 먹게 되더라. 같은 파스타여도 그 집 파스타는 안 먹는 것이다. 다른 집에 가서 동일한 종류의 파스타를 먹으면 맛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새로운 음식을 먹어보는 것에 대한 희열감? 발견하는 재미?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성공한 맛있는 것들을 소개하는 sns 계정을 따로 운영하고 있다.
https://www.instagram.com/hungry_jjiyang/
이 정도로 도전을 즐기고 있다.
영화 <라푼젤>에서도 비슷한 대목이 있더라. 내 친구랑 비슷한 것 같다. 친구가 말하기를 자신은 정말 친한 친구와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 큰 벽을 두고 있다고. 나는 그 친구가 완벽한 타인을 만나서 친해졌을 때의 그 쾌감?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을 경험해보기를 원한다. 그게 얼마나 재밌고 흥미로운지를 알고 있으니까! 그래서 조언을 하던 중에 라푼젤이 떠올랐다. 친구의 상황이 마치 라푼젤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라푼젤은 새엄마가 가둔 것이지만, 친구는 스스로가 가둔 듯 보였다.(과거의 내가 그러했듯이)
우리 합의점을 찾아보자.
누군가를 내 안에 들이는 것이 약간 두렵다면? 그건 나도 그러하다. 벽을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안과 밖을 구분하되, 나도 들락날락거려보자는 것이다. 지금 내 인간관계는 비닐하우스이다. 안 쪽에는 정원사들(최측근. 가족들. 아니면 정말 친한 친구)이 나를 돌봐주고 밖으로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지나간다. 그 사람들은 나를 바라볼 수 있고 나도 그들을 바라볼 수 있다. 우리 성 안에 있는 것들만 보고 만나지 말고, 성 밖에 있는 것도 좀 보고 살자! 그 사람이 정말 쓰레기일 수도 있지! 물론 그렇지! 하지만 정말 재밌는 사람일 수도 있잖아? 정말 좋은 사람일 수도 있지 않아? 경험해보기 전까지는 모르는 거니까!
우리는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으나 라푼젤의 탑처럼 높고 고독한 탑에 스스로를 가둬둔다. 탑 안도 아늑하고 좋겠지만, 잔디를 밟는 설렘을 경험해보기를 바란다.
내가 보기에는 "꿈"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나는 내가 잘하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뭘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고.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
"꼭 잘하는 걸 해야 해? 그냥 당장 하고 싶은 걸 해보면 안 되는 거야?
그래서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다녔다. 그러다가 하나를 발견했다. "글쓰기"
나는 글쓰기를 좋아한다. 내 감정을 표현하는 것도 그 글을 누군가가 봐주고 표현해주는 것도 좋다. 그래서인지 글 쓰는 작업을 할 때는 졸린 눈을 비비면서 쓴다. 졸린 것을 참아내면서 업로드를 하더라. 꾸준히 말이다. 지금은 글 쓰는 영역을 확장해서 '브런치'에서 글을 쓰고 있다. 작가가 된 것이다. 브런치 작가가 되기 위해서 대학내일 에세이에 원고 기고를 시작했다. 재수를 했고 두 번의 시도만에 내 원고가 실렸다. 내 글이 돈이 된 것이다. 그때, 좋아하는 일을 해내는 것에 대한 성취감을 크게 받았다. 그래서 브런치 작가에 도전을 3번 할 수 있었다. 나는 삼수째에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하지 못할 것 같던 일을 해내면 아주 큰 성취감을 얻더라. 힘들었던 만큼 큰 성취감을 준다. 게다가 그게 내가 하고 싶고 이루고 싶던 목표라면? 성취감 하나는 정말 끝내준다.
이제는 오랫동안 꿈꿔왔던 그림을 그려보려 한다. 유년기 시절부터 그림에 관심이 있었지만, 내가 남들보다 잘 그리지 못함을 일찍 깨우쳤다. 그래서 더 그리지 않고 말았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까 그게 너무 아쉽더라. 그리고 아직도 그림을 그리고 싶다. 내가 그렇다. 그냥. 기분이! 그래서 그려볼 것이다. 잘 그릴 지 못 그릴 지는 모르겠다. 아마 후자겠지. 하지만 재밌을 것 같다. 내 삶의 목표가 돈이 아님을 깨달았더니, 돈은 먹고 살만큼만 벌고 하고 싶은 일을 해볼 것이다. 그리고 하다가 아닌 것 같으면 다른 일을 할 것이다.
되면 좋고, 아님 말고.
혹시 모르지 않나? 그림이 잘 맞을 지도? 항상 시작하기를 망설였다. "실패하면 어떡해?" 다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최근에 알았다. 그게 꿈이던, 인간관계이던. "혹시 알아? 생각보다 재밌을지도 모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