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구여도 좋아

호구 잡히는 게 왜 싫어? 왜 나빠?

by 찌양

누군가의 부탁을 거절하는 것이 어려웠다. 그래서 항상 호구로 살았다. 이런 나를 보고 우리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호구 잡히지 마. 사람들한테 미련하게 다 해주지 마.


나는 호구 잡히지 않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했다. 하지만 생각대로 잘되지 않았다. 고등학교에 입학했고, 친구들이 나를 핵인싸로 생각해준다는 것을 알았다. 많은 친구가 다가왔고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당장 곁에는 친구들이 몰리지만, 정작 짝꿍을 지어야 하는 활동에서 남들은 다 짝이 있는데 나만 혼자였다. 둘이 되어야 하는 상황에서는 항상 혼자였다. 그게 너무 싫었다. '나를 호구로 보는 걸까?'






내가 호구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성인이 되고 알았다. 첫 20살,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드라이브 스루를 운영하고 2층 단독 매장의 패스트푸드점이었다. 규모가 있는 매장이어서 같은 시간에 적어도 3~4명이 함께 근무한다. 입사하고 처음에는 일을 잘하지 못했다. 내가 생각해도 형편없을 정도로 일을 못 했다. 그리고 무시를 당했다. 누가 봐도 무시하고 있음을 모를 수가 없었다. 대놓고 혼나고 외롭고 서러웠다. 처음에는 슬펐고 그다음에는 화가 났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꼭 저 사람보다는 일을 잘해야겠다."


꼭 저 사람보다 일을 잘해서 이 수모를 갚아줘야겠다. 퇴근할 시간이 되어도 퇴근을 안 했다. 내가 할 일이 다 되어 있지 않은 채로 간다면 저 사람에게 먹이를 던져주는 꼴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오기로 버텼다. 근무가 너무 힘들지만, 저 사람만은 이긴다는 욕망을 가지고 버텼다. 시급 없는 자체 연장을 거쳐 나를 무시하던 사람들만큼 일하게 되었다. 이제는 정시 퇴근이 가능할 정도가 된 것이다. 그래도 나는 매장에 남았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사람 한 명이 더 있으면 얼마나 힘이 되는지를 알기 때문에 도저히 두고 갈 수가 없더라. 그래서 또 자체 연장을 하였다.


매장 상황이, 사장이 아르바이트를 많이 못 쓰게 했다. 게다가 썰물과 밀물처럼 손님이 몰릴 때 확 몰리고, 없을 때는 너무 없는 매장이었다. 그래서 몰릴 때만 사람을 쓰고 싶어 하더라. 손님이 몰릴 것 같으면 전화해서 와주는 사람을 원했다. 그건 내가 되었다. 밥을 먹다가도 전화가 오면 뛰어나갔다. 그리고 30분만 일하다가 다시 돌아와 밥을 먹은 적이 수두룩하다. 이렇게 일을 하는 것을 본 다른 아르바이트생이 나에게 이런 말을 하더라.


너 그렇게 일하면 다른 사람이 너를 호구로 알아서 너한테만 시켜.


내가 또다시 호구가 되어있었다. 힘듦을 공유하고 나누기 위해서 일을 했는데 누군가한테는 그저 호구로 보이다니. 그 말을 들었다는 것만으로 상처를 받아서 한동안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보기가 힘들었다. '혹시 저 사람이 나를 호구로 보나?', '나한테 다 시키려고 저러는 걸까?' 생각이 많아질수록 사람들을 올곧은 시선으로 바라보기 힘들어졌다. 예전처럼 애정을 가지고 도와주는 것이 비참하게 느껴졌다. 입맛을 잃는 것으로 시작해서, 잠을 잊고 불면증을 얻었다. 스스로 예민해짐을 느꼈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기분. 내가 한 정성과 노력이 모두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퇴사를 했다. 내가 결국 호구가 되어 버렸구나.





호구 잡히는 게 왜 싫을까?


친구와 대화를 하면서 비슷한 주제를 다루었다. 친구는 자신의 성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같이 놀던 친구에게서 들은 말 때문이었다. "쟤가 너 만만하게 보는 같아." 그 말을 들은 후부터 '다른 친구들이 나를 만만하게 대하고 있는지를 고민하게 돼.'


이 말은 최근 이 친구가 겪은 팀별 과제에서도 이어졌다. 대학교에서 여러 명이 팀을 이뤄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있었다. 이 친구가 조장을 맡아서 과제할 계획을 세우고 추진했다고 한다. 조장으로 팀을 이끌어가면서 정말 힘들었단다. 그리고 겨우 과제를 끝내고 같은 팀 조원인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이번 팀별 과제 하나도 안 힘들더라." 자신은 정말 힘들었는데 조원인 친구가 한 말에 생각이 많아졌다고 한다.


친구와 대화를 하면서, 나의 호구 경험을 되짚어 보았다. 그리고 호구에 대한 결론을 지을 수 있었다.






첫째, 난 줄 수 있는 것을 모두 줬을 때 후회하지 않는 사람

내가 사람에게서 후회하는 대부분은 "그때 더 해줄걸.", "그때 이걸 줄걸." 이런 식으로 해주지 못한 것, 줄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주지 않은 물건에 대한 후회가 더 컸다. 일도 똑같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을 더 해주지 않고 퇴근하면 후회가 되더라. '내가 조금만 더 힘들면 저 사람을 조금 덜 힘들게 만들어 줄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친구가 내가 가진 물건을 부러워했을 때, 결국 주지 않았다면, '이런 물건 하나쯤은 저 사람을 위해 기꺼이 내어줄 수 있었는데'라고 후회하게 된다. 뭐든 줄 수 있을 때 줘야 한다. 그 친구를 갑자기 못 만나게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나는 내어줄 수 있는 것을 모두 갖다 주고 싶다. 설령 그 사람이 나를 호구로 본다고 할지라도. 그 순간을 후회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호구가 되겠다.



둘째, 의미를 주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

첫 아르바이트에서 상처도 많이 받았지만, 깨달음이나 사람도 많이 남겼다. 같이 일하다가 퇴사를 한 사람들이 지인으로 남아있다. 내가 퇴사를 결정하고, 찾아온 마지막 근무 날. 연락했다. 바쁜 와중에 잠깐이라도 얼굴을 비치고 가더라. 퇴사를 축하한다며 선물을 안겨주고 가더라. 그리고 같이 근무했던 사람들이 내 퇴사를 축하하며 케이크를 준비해서 파티를 열어주더라. '내가 한 노력과 정성이 쓸모없는 것이 아니었구나.'


결국 사람의 형태로 남아 나를 바라보고 있더라. 나 역시도 퇴사를 준비하면서 같이 근무했던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주고 싶더라. 본질적인 것은 내 마음이지만, 눈에 보이는 형태로 전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작은 카드 편지를 쓰고, 선물로 즉석 당첨 복권을 한 장 씩 넣어주었다. 예산이 정해져 있어서 살 수 있는 복권도 한정적이었다 선택을 해야 했다. 줄 사람과 주지 못할 사람. 이 선택지는 이렇게 바뀌었다. '앞으로 보고 싶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앞으로 볼 사람에게는 그동안 고마웠고 앞으로 잘 부탁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그리고 그렇지 않을 사람을 결정하면서, '모든 사람이 내게 좋은 사람이나 의미 있는 사람으로 남지는 못하겠구나.' 이 말은 이런 의미로도 해석된다.


'나한테 모든 사람이 의미 있을 수 없듯이, 나 역시 모든 사람에게 의미 있는 사람이 될 수는 없다.'



셋째, 곁에 있는 사람의 수가 아니라 그 사람의 깊이가 외로움을 바꾼다.

핵인싸로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면서도 나는 부족함을 느꼈다.


'많은 사람이 곁에 있어 주는 것과는 별개로 외롭다면, 그 사람들 곁에 남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다 필요 없고 내 곁에 오래도록 머물러 줄 단 한 사람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기서 사랑의 정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모든 사람은 사랑받고 싶어 한다. 그리고 사랑은 양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랬다. 고등학교 전까지는 말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깨달았다. 사랑은 양이 아니라 질이라는 것을. 그 사랑을 주는 대상의 질이 아니라 그 사람이 전해주는 사랑의 질 말이다. '얼마나 진정으로, 자주, 밀도 있게 내게 사랑을 전해주는가'가 더 중요한 것이었다.



넷째, 남을 사람은 남지만, 남지 못해도 괜찮다.

지금 내 주변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정말 개성이 강하다. 어쩌다 보니 만났고, 같이 시간을 보내다 보니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다. 이 사람들은 내가 다른 이유로 예민해졌을 때 투정을 부리거나 기분이 나쁘다고 쌍욕을 던져도 내 곁에 남아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준다. 설령 우리가 갈라진다고 하더라도 그땐, 내가 그 사람에게서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각자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우린 헤어져도 꽤 괜찮은 사이일 것이다.






내가 생각한, 호구 잡히는 것이 싫은 이유 중의 하나는 '버려질까 봐'이다. 이용당하고 버려질까 봐. 줄 수 있는 것을 모두 줬음에도 불구하고 버려진다면 스스로가 비참해질 테니까. 게다가 내가 버려지는 모습을 본 또 다른 사람이 나를 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떠는 것이 아닐까? 내 가치를 잃고 버려진다? 이 말은 잘못되었다.


'버려진다고 내 가치가 변하지 않는다. 내 가치는 스스로가 매기는 것이다.'


어차피 그 사람이 떠나도 내 곁에는 다른 사람들이 남아있다. 당장 내 곁에 남아있는 사람이 없더라도 괜찮다. 사람들과 함께한 기억들이 남아있으니까. 이런 내가 호구여도 좋다. 나는 호구가 됨을 두려워하는 것보다 저 사람과 순간을 공유하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다가갈 테니.


"내 맘이 더 주고 싶은 걸 덜 주고 싶지 않아." - 어디선가 본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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