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이 항상 따라와.

일단, 당신을 실망시킬래요.

by 찌양

난 누가 봐도 길처럼 보이는 길보다는 '이게 길이야?' 싶은 길을 걷고 싶다. 실제로도 그렇게 다닌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함박눈이 오고 있는 거다. 그렇다면? 집 앞은 온통 눈 투성이일 테고, 내가 첫발을 밟을 수도 있는 것이다. 함박눈이 가득 쌓인 땅을 내가 처음 밟는 설렘이 좋다. 새하얀 눈길을 걷다 보면, 누가 지나온 길인지, 지나갈 길인지는 중요하지 않고, 오롯이 '내가 어디로 가고 싶은가', '어디를 밟고 싶은가'로 고민하게 된다. 난 그 눈을 밟는 설렘을 알고 있지만, 어째서인지 자꾸 헷갈린다.



사람들은 나에게 항상 기대한다.

"넌 성공할 거야."

성공? 그런 말을 들으면 내가 성공해야 할 것만 같다. 그 사람이 정의한 성공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만 같았다. 중요한 시험이나 면접을 앞두면 두려움이 더 커진다.


나는 고등학교를 마이스터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싶었다. 사람들은 모두 나에게 안 될 거라고 했다. 그 성적으로는 불가능하다고. 그런데 나는 1차에 합격했다. 그리고 면접을 앞두고 있었다. 따로 면접 준비를 하지 않으면서 두려움에 떨었다. 그리고 면접 당일, 의외의 인물이 나를 면접장에 데려다주었다. 면접은 오전 10시 정도로 애매한 오전 시간이었다. 그런데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하는 아버지가 나를 데려다주겠다고 먼저 나섰다.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나를 면접장에 데려다준 것이다. 1차에 합격했다고 말했을 때 아버지의 반응을 잊지 못한다. 잔뜩 기대감에 부푼 얼굴. 아아. 나는 그를 실망시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면접장에 가면서 했다. 모두의 기대. 아버지가 나를 면접장에 데려다준 것에는 본인의 기대가 현실이 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사람들은 나에게 특히 그랬다. 쉽게 안 된다고 단정 지으면서도 내가 그것을 해내기를 원했다. 그리고 해내지 못하면 '그게 니 한계'라고 단정 짓는다. 쉽게 기대하고 쉽게 실망한다. 그리고 그 기대와 실망을 모두 내가 감당해야 하는 것처럼 함부로 나쁜 말을 한다. 나쁜 말을 하는 나쁜 사람들에게 나는 너무 관대했던 걸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 면접에서 나는 탈락했다. 그런 중요한 순간이 되어서야 나에게 기대감을 가지는 아버지를 나는 보고 싶지 않았다. 내가 고민하고, 노력했던 순간들보다 결과를 보여주는 그 한 시점에서야 나를 봐주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실망시켜야겠다고. 당신들이 나에게 거는 기대를 포기할 수 없다면, 내가 포기하게 만들어줘야겠다고.


그런데 이게 스스로한테도 적용된 듯하다. 나는 나에 대한 기대가 넘치는 사람이다. 내가 잘 될 거라고 말하고 싶었다. 내가 스스로에게 거는 기대도 싫었던지,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일부러 공부를 하지 않았다. 아마 이렇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공부를 안 해서 그래." 이렇게 말하면, 최선을 다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고. 최선을 다하면 성공할 거라고 말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이게 습관이 된 건지, 나는 중요한 순간에 꼭 한 발 뒤로 물러선다. 그게 싫으면서도 그 모습을 방관하는 내가 있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지금 당장은 그 답을 잘 모르겠고, 일단 사람들의 기대감을 무너뜨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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