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증에서 취미까지
작년 이맘때였나? 불면증이 심했다. 마음은 우울하고 바꿀 수 없는 상황에 갇혀있다는 생각에 잠겨있었다. 그런데 밖에는 꽃이 피고, 사람들은 새로운 시작을 한다. 나는 잠겨있는데 다들 좋아 보였다. 당시 근무가 피곤해서 피곤함은 물론이고 우울함까지 겹쳐서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이었다. 다들 자는 깜깜한 밤을 지나 새벽에 이르렀다. 무서웠다.
이 깜깜한 밤을 앞으로도 혼자 겪게 되면 어쩌지?
그러던 중에 중고서점에서 어떤 책을 만났다. <걷는 사람, 하정우> 배우 하정우 씨의 에세이였다.
마침맞게, 할머니가 해주신 말씀이 있다.
노동과 운동은 다른 거야.
지은아, 노동은 그만하고 운동을 많이 해.
그전에 헬스장을 다녔었다. 한 달에 2만 원이라는 적은 돈으로 한 달을 이용할 수 있다기에 1년 회원권을 구매했다. 놀랍게도 4번 갔다. 일주일에 한 번 죄책감에 이끌려 방문한 것이다. 그 이후 운동은 없었다. 그러다가 하정우 씨의 책을 만났고, 할머니의 조언이 있었다. 운동을 해야겠더라. 그래서 걷기를 시작했다. 하루 목표 걸음수는 만보였다.
그냥 걷기에는 심심했다. 그래서 커피를 사러 가기로 했다. 처음에는 5분 거리의 스타벅스를 갔다. 그다음에는 30분 거리의 배스킨라빈스(배스킨라빈스의 연유 크러쉬 라떼를 좋아한다.)를 갔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폴바셋이라는 브랜드를 만났다. 연유 스페니쉬 라떼에 빠져서 왕복 2시간 거리를 갔다. 그 정도 거리가 되니까 하루 만보를 채울 수 있더라.
만보의 끝에는 맛있는 커피가 있었다. 적당한 보상이 더해지면서 걷기에 재미를 붙였다.
텀블러만 달랑 들고 길을 나섰다. 불안함을 지우고 현재를 즐기기 시작했다. 내게 '걷기'란 명상 같았다. 일단 걷는다. 걷다 보면 실체가 없는 불안은 없어지고 당장 현재에 집중하게 된다. 가벼운 현재. "배고프다", "덥다", "힘들다"와 같은 현재의 가벼움이 나와 함께할 때, 나를 짓누르던 불안함이나 우울감은 사라진다. 이렇게 길을 걸어서 카페에 도착한다. 텀블러에 커피를 가득 채우고 또다시 길을 나선다.
이상하게도 길을 걷다 보면 글이 쓰고 싶더라. 길을 걷는 재미에 대한 글이나, 현재의 고민을 날려버릴 글들을 말이다. 그리고 정말 집에 도착하면 텀블러에 담긴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쓰고 있다. (실제로 나는 걷기를 한 날, 글을 써서 올린다.)
그리고 배가 고프다. 밥을 맛있게 먹는다. 깨끗하게 씻고 잠자리에 든다. 잠을 잘 잔다는 것의 행복감을 느낀다. 또 만보를 채우고 싶어 진다. 일 년 전처럼 요즘도 불면이 찾아올 때면, 만보 걷기를 한다. 일부러 커피를 사러 간다.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글을 쓴다. 그리고 잘 잔다.
이제는 일상 걷기를 넘어서, 여행지에서 걷기를 해보고 싶어 진다. 정말로 내년 이맘때 즈음에 그런 글을 써보고 싶다. 기대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