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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찌양 Apr 11. 2021

엉터리 주의자와 수다를

수더분한 삶

20살 때 아르바이트를 통해 만난 지인과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둘은 가까운 동네에서 카페 아르바이트를 했고 동네 친구였다. 지인은 그때 당시 휴학을 했고, 나는 사이버대학생이었다. 둘 다 평일에 시간이 많아서 평일 낮에 만나 어울려 놀곤 했다. 1년이 지난 후 지인은 서울에 있는 대학교로 복학을 했고 나는 다른 아르바이트로 일자리를 옮겼다. 


이대로 끝일 줄만 알았던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한 달에 한번 동네를 방문할 때면 어김없이 만나 어울리고 있다. 최근 2달 사이에는 저녁을 각자 먹고 동네 카페에 앉아 2시간, 3시간씩 담소를 나눴었다. 그 짧은 시간 속에서 얼마나 깊은 대화를 나누었는지 모르겠다. 그 대화 중 하나를 글로 옮기고자 한다. 




SNS에서 어떤 공감 가는 순서도를 본 기억이 있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아무것도 안 함 -> 죄책감 -> 무기력 => 반복


나는 이 순서도에 완전 공감을 했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대학교 2학년 때, 작년의 일이다. 나는 당시 2, 3가지의 아르바이트를 병행했었다. 몸은 점점 나빠지는 것이 느껴지는데 목표했던 돈에 가까워지는 느낌은 없더라. 쓰고 싶은 돈을 쓰지 못하게 막아놓고 나는 점점 지쳐갔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 더 그랬다. 나는 잠 하나 제대로 못 자는데 다른 사람들은 잘 살아가고 있는 듯하여 자꾸 비교하게 되더라. 비교를 하면서 더 우울해졌고, 심지어는 1년 전의 나와도 비교를 했다. 그 전보다 나이를 먹고, 늙어진 몸을 가진 나. 학업 성적은 뒷전인 채 돈을 벌고 있지만, 돈이 모이지는 않는 나. '작년의 나라면 이러지 않았을 텐데.'라는 생각에 잠겨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어두운 방안에 누워 계속 같은 생각을 했다. 내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생각할수록 비참해지더라. 저녁에는 아무것도 안 했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혔다. 


이래나 저래나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 


내게 없는 것을 부러워하며 이 생을 보내자니 내가 너무 아까웠다.


이렇게 살바에야 왜 살지?라는 생각이 들어 죽고 싶었다. 그런데 죽으면 아무것도 없다. 확실한 것이 없다. 사후세계가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겠고, 정말 없으면 어떻게 하지? 그런 불확실한 죽음보다는 확실한 삶에 치중하기로 결심했다. 그러기 위한 한 발걸음이 "일어나기"였다. 


어린 시절에는 걷기 위해 일어서기만 해도 칭찬을 받았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칭찬을 받을 기회가 없더라. 그래서 칭찬을 해줄 사람이 없다면? 내가 하면 된다. 단지 이부자리에서 일어나기만 해도 칭찬을 해주는 거다. 


"지은아, 대견해. 일어났네? 대단하다!" 


이런 칭찬을 계속 받다 보니까 그러면, 한번 걸어볼까?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걷기 시작했다. 걷기 시작하니까 잠도 잘 왔다. 누우면 바로 잘 수 있을 정도로 피곤함을 느꼈다. 잘 자고 저절로 일어나니까 한결 나아졌다. 또, 걷다 보면 배가 고프다. 잘 먹을 수도 있고, 잘 먹으면 배변활동도 원활하게 할 수 있다. 


초점 없이 난발하는 사진. 엉터리 주의자가 찍은 사진이 틀림없다. (그게 나다.)


지인과 저녁에 동네 카페에서 수다를 나누었다. 당시 이야기의 화제는 "죄책감"이었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고 심지어는 그것을 완벽하게 하고자 하는 '완벽주의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완벽하게 처리하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쉽사리 실행하기에는 어렵다. 그래서 실행하지 않으면 죄책감이 생기고 나를 탓하게 된다. 그래서 지인에게 이 이야기를 전했다. 나의 작은 행동에도 칭찬해주는 것. 나를 잘 달래서 생산적인 활동에 이르게 하는 방법이라고 전했다. 


지인은 완벽주의자가 되고 싶지만, 실제로 자신의 상황은 그렇지 않음을 전하며 죄책감을 느낀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 역시 우울감과 죄책감, 무기력감을 오랜 시간 느꼈고 그것을 바로잡는 과정 속에 있어서 대화를 나누는 것이 편안했다. 자신이 완벽주의자가 되고 싶지만 그렇지 않으니, 내가 장난 삼아 


그럼 엉터리 주의자네?


했던 것이 지금의 글에 이르렀다. 내가 극도의 우울감과 죄책감, 무기력감을 극복한 방법이 여기에 있는 듯하다. 완벽주의자? 되지 않아도 괜찮다. 하려던 일? 못해도 괜찮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우리 살아만 있자. 일단 살아 있으면 무언가를 새로 시작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살아있음을 칭찬하고, 격려하는 중이다. 요즘은 더 나아져서 나의 행복까지 빌어줄 수 있더라. 내가 오늘 누워서 쉬는 것에 행복감을 느낀다면 전력을 다해 그렇게 해준다. 


예전에는 짧고, 강력한 화려함을 느끼며 살고 싶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살아있음에 감탄하며 길고 가늘게 살고 싶더라. 잘하는 것이 없어도 길게 살고 싶다. 그래서 요즘 나의 삶의 지향점은 "수더분함"이다. 수더분하다는 동사에서 온 말이다. "성질이 까다롭지 아니하여 순하고 무던하다"라는 뜻이다. 가늘고 길게 살고자 하는 사람에게 아주 적당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무던한 삶을 영위하고자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 엉터리 주의자가 되자. 완벽함 따위 버리고 엉터리로 살아버리자. 


열심히 살려고 하니까, 너무 소중하게 다뤄서 집착하게 된 걸 수도 있다. 우리 그러지 말자. 조금만 힘을 빼고 물 흘러가듯, 유유자적 살아가자. 

인생 뭐 있나? 대충 살자. 

오늘의 가장 중요한 일 : "내가 지금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은 뭐지?" 고민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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