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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 Nov 07. 2023

상처만 남은

첫 심리상담 이야기

*자해와 관련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울면서 말했다. 제발 나 좀 도와달라고, 사실은 자해를 하는데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엉엉 울며 내뱉었다. 그러자 엄마도 같이 울었다. 우리는 껴안고 한참을 울었다. 다시는 자해하지 않겠다고 덜컥 약속을 해버렸다. 너무나 어려운 약속이었는데 엄마가 속상해하시는 모습을 보고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그리고 역시나 약속은 지키지 못했고, 지키지 못한 걸 들켜버렸다. 그렇게 첫 심리상담을 받게 되었다. 사설 심리 상담 센터였고, 꽤 유명한 곳이었다. 근데, 이날 이후로 난 나아지기를 미뤘다. 망설였다.


내가 예약한 곳은 초기 상담 후에 상담 회차를 결정하는 곳이었고, 초기상담 때 필요한 자료를 작성해 가는 식이었다. 거기엔 부모님 직업을 적는 칸이 있었다. 그게 사건의 발단이었다. 우리 아빠는 교회 목사님이다. 근데 상담 선생님이 기독교였다. 나는 웬만해선 우리 아빠가 목사님인 걸 밝히지 않는다. 밝히면 나도 독실한 사람이라고 다들 생각하고 말을 꺼내기 때문이다. 난 교회를 좋아하지 않는다. 교회 때문에 상처도 많이 받았고, 엄마아빠랑도 많이 갈등이 있었기에 내 문제만큼 기독교적으로 해결하고 싶지 않았다.


"아빠가 목사님이시네? 나도 교회 다녀. 교회 열심히 나가고 기도하면 좀 더 나아질 거야."


상담하며 들었던 제일 충격적인 말이었다. 어떻게 자해문제로 온 내담자에게 기도하라는 말을 할 수가 있지? 정말 어이가 없었고, 짜증이 났다. 상담 선생님은 남자였는데 그 이후 아직까지 남자와 단둘이 이야기하기를 꺼린다. 좀 두렵기도 하지만, 심장이 엄청 빠르게 뛰고 숨이 잘 안 쉬어지며 몸이 먼저 반응한다. 상담은 약 50분 간 이어졌는데 난 저 말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저 말을 듣는 순간부터 상담 신뢰도가 확 떨어졌고 선생님이 무엇을 말하든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상담과 치료에 대한 선입견이 높아져버리고 한동안 나는 치료를 거부했다. 그리고 상태는 더 악화되었다.


상처만 남은 채로 나의 첫 심리상담은 마무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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