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은 Oct 31. 2023

상담, 그거 진짜 효과 있어?

심리상담을 꾸준히 받으니 말이야

*자해와 자살과 관련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중학교 2학년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심리상담 센터는 가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 게. (더 자세한 이야기는 나의 브런치북 '삶과 죽음의 경계'를 참고하길 바란다.) 근데 세 번째 자살시도 이후 이제는 진짜 치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니던 병원과 약은 별로 효과가 없다고 생각하던 찰나 다시 심리상담을 찾게 되었다. 난 한시가 급했고 당장 상담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시작하지 못하면 또 치료를 포기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선순위를 뒀다.


1. 집과 가까울 것. (대중교통 가능해야 함.)

2. 네이버에 등록된 사진이 깔끔할 것.

3. 리뷰가 좋을 것. (이때는 몰랐다. 상담 리뷰는 흔하지 않다는 걸.)

4. 당장 상담이 가능할 것.

5. 여자 상담사일 것.


두 군데를 찾았고, 처음에는 못 미더워 녹음을 했다. 증거가 있어야 무슨 일이 있어도 덜 억울한 느낌이다. 첫 상담을 녹음하지 못한 나에게 화가 난다.


두 군데 중 첫 번째는 엄마 같은 상담사분이었다. 엄청 조곤조곤하시고 목소리도 작으셔서 녹음한 것도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좋았던 점은 내가 상담을 받으며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 예전에 미술치료받을 때 잠깐 울뻔한 적이 있지만 그때는 참을 수 있었다. 근데 이번엔 진짜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래서 아 여기서 상담을 받아야 하나?라고 생각했지만 뭔가 마음에 안 들고 불편하고 오래 다니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라 일단 상의하고 연락드린다고 하고 초기상담을 마쳤다.


두 번째 간 곳은 딱 들어갔을 때 첫인상이 너무 좋았다. 우선 상담 공간이 이전보다 넓었고 쾌적했다. 난 몰랐는데 이 글을 쓰려고 첫 상담한 내용을 보니까 첫날부터 자해, 자살 등 깊은 이야기를 많이 했더라. 학교에 관련된 이야기도 많이 했다. 원래 내 상담이 끝나면 부모상담도 짧게 하는데 나는 부모님께 드릴 이야기가 많다면서 부모상담을 한번 받으면 좋을 것 같다고 말하셨다. 나도 그러는 게 좋을 것 같아 동의했고, 부모님도 동의하셔서 부모상담이 그다음 주에 진행됐고, 자연스럽게 2회 차 일정이 잡혔다. 근데 날 울리게 한 심리 상담은 위에서 말한 첫 번째밖에 없을 줄 알았는데 여기서도 울었다. 더 많이.


내가 했던 아직도 기억나는 말.

"교회 이야기를 하면서 상처 안 받은 적은 오늘이 처음이었어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내가 제일 마음속에 끌어안고 꽁꽁 숨겨둔 교회 이야기를 여기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더 이상 상처받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시 한번 상담을 받아보기로 했다.


그렇게 결심을 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거의 5-6개월 정도 다녔다. 우선 제일 좋은 점은 객관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게 된 점이 제일 좋았다.

원래는 자해 충동이나 자살 충동이 들면 그냥 '아 죽어야겠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다.


하루를 예시로 들어보자면 '자해충동이 들어 무섭다.'라는 감정을 느꼈을 때 처음으로 지금 왜 무서운 감정이 들지? 생각을 한다. 그럼 '아 몇 달간 자해를 안 했었는데 또 자해충동이 들어 다시 안 좋아지고 심해질까 봐 그렇구나'라고 내 생각과 마음을 분석한다. 분석이 끝나면 지금 강도가 어느 정돈지 파악한다. 응급실에 가야 하는지, 아니면 필요시 약을 먹고 해결될 충동인 지, 아니면 그냥 산책하면 나아질 충동인 지 파악한 후 그에 맞는 조치를 취한다. 조치를 취하고 좀 진정되고야 왜 자해 충동이 들었나 생각해 본다. 매우 차분하게.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오늘 어떤 일 때문에 갑자기 충동이 온 경우도 있고, 일주일 전부터 쌓이고 쌓이다 터져 충동이 온 경우도 있었다. 나에 대해 깊게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리고 그게 좋다.


처음에는 너무 어려웠다. 나도 왜 그런 감정이 들었는지 모르겠고 너무 답답한데 그걸 자꾸 물어보니까 답하는 게 너무 싫어서 가기 싫었던 적도 있다. 근데 이제는 가는 시간이 기다려진다. 처음에는 그냥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도 몰랐는데 이제는 점점 머릿속에서 정리가 된다.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이 감정을 어떤 단어로 표현하면 좋을지 생각한다.


지금도 나는 병원과 약의 효과는 크게 느끼지 못한다. 내가 좋아지고 있다고 느끼는 건 심리상담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서로 상호작용을 하겠지만, 내가 느끼기엔 그렇다. 지금 나는 나아질 때도 안 됐고, 아직 아플 거라는 걸 안다. 상담 선생님이 그랬다. 처음에는 그 말을 듣고 실망했지만, 이제는 그 말이 오히려 부담이 안 되고 좋은 것 같다. 나아지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니까. 기대는 버렸지만 희망을 얻었고, 미래의 행복은 모르겠고, 당장 행복하면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근데 그렇게 사는 게 정신건강에 좋더라. 우선 지금 '나'가 사는 시간은 현재니까. 과거도 미래도 아닌 지금, 이 순간이니까. 그렇게 오늘도 자살 충동을 넘기며 살아간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생, 참 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