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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졸리 Aug 05. 2021

청각장애 교사와 발달장애 학생

수업시간에 우리가 공존하는 방법 (1)

 신규 청각장애 교사의 요란 법석하고 다사다난했던 1학기를 마치며, 요즘 그동안의 수업을 반성하고 복기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내가 틈날 때마다 쓰고 있는 브런치는 나의 수업을 되새김질하고 반성하는 시간을 가지게 해주는 것 같은 좋은 이점이 있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청각장애 스펙트럼 중에서도 가장 중증인 편에 속한다. 그래서 발음이 굉장히 부정확한 편이며 청력 또한 좋지 않아서 상대방의 입모양을 보고 소통한다. 

 그래서 오늘의 글은 수업시간에 청각장애 교사와 발달장애 학생들이 공존하는 방법이 어떤지, 발달장애 학생이 청각장애 선생님에게 어떤 방식으로 이해하고 배려하는지에 대한 글을 쓰고자 한다. 


 1. 수업을 하다 보면 나의 부정확한 발음 때문에 5명 중 2명은 잘 알아듣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한번 더 천천히 설명해준다. 칠판에 글 쓰거나, 그림을 그려서라도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설명을 해왔다. 그런데 어느 날 학생들도 선생님을 도우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했는지 잘 알아듣지 못한 다른 학생이 있으면 가서 도와주고 선생님이 말한 것을 한번 더 똑같이 설명해준다. 이렇게 학생들은 서로 도와가며 협동심, 협력, 배려라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또래 교수'라는 것을 제 스스로 하는 법을 배워가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고 필요로 하는 존재라는 사실은 큰 기쁨이다. 학생들이 그것을 느끼고 있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라고 느끼는 것은
어쩌면 그런 기분조차 느껴본 적이 없을 수 도 있는 그들에게
큰 행복이자 기쁨이다. 



 2. 학교에서 학생들은 궁금한 점이 생기면 선생님께 질문하고 의문을 해소하여 지식을 얻어가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나는 학생들의 입모양을 보고 질문이 무엇인지 파악하지만 마스크로 가리고 있거나 입이 유난히 작거나 말이 빠르면 내가 이해하지 못한다. 학생들도 잘 알기 때문에 질문이 있으면 일단 손을 들고 마스크를 벗고 천천히 질문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이 "귀가 안 들린다."라는 개념을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이 있다. 그런 학생의 질문은 칠판에 적어달라고 부탁하면 적어주기도 한다. 아니면 다른 학생이 대신 말해주기도 한다.


 명조- "덕원아 칠판에 질문 적어봐 봐."

 다정 - "선생님이 못 알아들으시니까 칠판에 적어봐."

 덕원 - "네"

 라고 말하면서 칠판에 가서 질문을 적는다. 다른 학생들도 질문을 적는다. 


 당연히 처음에 망설이고 부끄러워하고 매직을 계속 들고 칠판 앞에서 우물쭈물 대던 시기가 있었다. 옆에서 독려해주고 응원해주지만 용기를 내지 못하는 학생도 있었다. 아마 그동안 말로만 질문하다가 갑자기 칠판에 질문 내용을 쓰라고 하니 처음 겪는 상황에 낯설었을 것이다.

 낯설어하는 학생에게 적응할 시간이 필요해 보여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주고 서슴없이 칠판에 질문을 쓰는 다른 학생에게는 오버스러운 리액션과 칭찬을 아낌없이 해주었다. 내가 가장 잘하는 게 리액션이다. 


 '질문하는 행위는 절대 잘못된 게 아니야.
용기 내어 질문하는 그 자체 행위가 이미 대단한 거지.'


 사실 처음에 학생들에게 칠판에 질문을 적게 하는 행위 자체에 대해 즉각적으로 피드백을 주고받지 못하는 것 같아 굉장히 미안함을 느꼈고 자책했으나 나중에 이런 행위에 순기능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수업 마무리할 때 학생들이 칠판에 쓴 질문 리스트를 보면서 수업내용을 다시 복기할 수 있고, 칠판을 계속 보면서 자신이 질문한 것, 그에 대한 답을 잊지 않고 기억해낼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제 막 신규교사 된 나로서 굉장히 큰 발견이다. 


 "아! 이런 게 바로 학생과 내가 같이 수업을 만들어 가는 거구나!"

"같은 속도로 맞춰가는 느낌이 이런 거구나!"


 학생들도 자기가 수업시간에 칠판에 쓴 질문 리스트가 계속 활용되고 있다는 것에 큰 흥미와 재미를 느낀다. 수업시간 내내 적절한 긴장과 자극을 줄 수 있다. 나도 학창 시절에 느꼈던 기분이었고 그럴 때마다 내가 선생님께 인정받은 사람이 된 것 같았고, 뿌듯함을 느꼈다. 내가 느꼈던 기분을 역시 학생들도 느꼈을 것이다. 


 이제 '또래 교수'와 '칠판에 질문 적기'는 학생들과 졸리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공존하는 방법이자, 암묵적인 스터디 룰이 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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