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과 비관 사이
우리에겐 누구나 내면의 낙천가가 있다.
같은 상황에서 누군가는 긍정적이고 누군가는 부정적이다. 누군가는 무모할 정도로 작은 가능성을 밀고나가지만 누군가는 비판적으로 상황을 따지고 작은 위험도 피하기 위한 대비책을 생각하지 못하면 꼼짝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낙관적이지만 누군가는 시니컬하다.
하지만 모든 인간을 '좌' 아니면 '우'로 나눌 수 없듯 우리는 모두 낙관과 비관 그 사이에 있다. 이처럼 사람의 성질은 모두 다양한 분포의 스펙트럼의 형태를 띤다. 이는 물론 상황에 따라, 나의 마음의 여유에 따라, 환경에 따라 고정되어 있지 않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이제 섣불리 '내 MBTI는 뭐야', '내 성격은 이래',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자신있게 대답하지 못한다. 더 나은 내가 되려는 여지를 남기고 싶기도 해서다.
참으로 신기하게도 뇌의 좌반구는 우반구보다 더 낙천적이다.
신경과학자들은 우뇌가 교감신경계(투쟁-도피 반응을 촉발)와 더 밀접하게 연결되어있고, 좌뇌가 부교감신경계(진정 효과)와 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알아냈다. 달리 말하면, 우뇌는 잘못될 수 있는 것에 더 집중하기 쉬운 반면, 좌뇌는 잘될 수 있는 것에 더 집중하기 쉽다.
<우리는 지금 문학이 필요하다>_200-201p
세상의 많은 부분이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운'으로 이루어져있으나 우리의 우뇌는 이를 통제하려 든다. 반면 좌뇌는 운에 대한 믿음이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도리어 우리가 운이 좋을 수 있다 안심시킨다. 이러한 행운에대한 상기는 회복력을 강화하고, 삶의 만족도를 높이며, 감사와 행복감을 높여준다고 하니 낙관론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아보인다.
그래서 사람들은 희망을 선사하는 슈퍼 히어로들을 그렇게 좋아한다. 그리고 수많은 세월동안 희극이 이토록 끊임없는 사랑을 받아오고 있다.
'행운의 반전으로 뜻밖의 즐거움을 주는 것이 바로 희극의 속성이다.'-프란체스코 로보르텔로
이처럼 우리의 머리에는 낙관론이 반을 차지한다. 그래서 혹자는 '낙관론에 접근하기 위해서 뇌의 관점을 바꾸라'고 말한다. 흔히 들어봤던 '세상은 마음먹기 나름'이랑 일맥상통한듯 하다.
하지만 여기에는 반전이 있다.
우리 뇌의 어떤 부분도 상황을 현실적으로 볼 수 없다. 우리 뇌는 너무 작고 세상은 너무 방대하다. 진실에 가장 가까이 다가갈 방법은 우반구의 경계심과 좌반구의 낙관론 사이에 균형을 잡는 것이다. 그러니 마음의 균형이 깨져서 절망적 공포 속으로 빠져들 때, 정신을 차리고 마음의 균형을 잡는 게 가장 현명한 선택이다.
<우리는 지금 문학이 필요하다>_212p
세상은 방대하고도 복잡하다. 한낱 먼지같은 존재인 사람이 모든 것을 다 알고 마음먹은대로 할 수 있으리란 우반구의 생각 자체가 어쩌면 오류투성이 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행운만을 쫒기에는 인간이 가진 고유의 가치가, 주어진 인생이 그저그런 무력함을 견디지 못하고 계속해서 상황을 통제하려 든다. 또한 우리가 위험을 경계하고 할 수 있는 것들을 끄집어내어 통제력을 갖으려하는 행위 자체도 머리의 반을 차지할만큼 본능적이다. 그만큼 '안티프레질(Antifragile, 위험에 대비하려는 속성)'을 실현함으로써 상황을 조금더 잘 해쳐나가려는 것이 인간답게, 나답게 살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세상의 많은 부분이 '운'으로 이루어져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오늘을 안티프레질하게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리라.
그럴수도, 저럴수도 있지만
오늘도 나는 나의길을 가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