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책꽂이 앞에 서서 책 한 권을 꺼냈습니다.
신달자 님이 10년 전에 출간하신 책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가 손에 잡혀 꺼내 들고 더위를 피해 카페로 갔습니다. 두 번 읽은 책인데도 또 새로웠습니다.
"누구나 옛날 생각을 하면 얼굴 붉어지는 사연이 많습니다. 그러나 얼굴 붉어지는 것은 애교 수준이고, 당장에라도 굵은 눈물이 쏟아지며 통곡하고 싶은 사연도 있습니다."라는 대목에서 문득 사건이 하나 떠오릅니다.
울컥 목이 메어와 고개를 들고 하늘만, 하늘에 무심하게 흘러가는 뭉게구름만 한 없이 응시하다가 그냥 집으로 왔습니다.
내가 절대로 잊어버리면 안 되는 사건이었거든요.
대학교 2학년 겨울방학이었습니다.
내 아버지께서는 염전을 크게 하셨었는데, 그 염전 안으로 바닷물이 들어와 염전이 물에 잠겨버렸습니다.
다행히 아버지는 그 고장에서 인심을 잃지 않아 마을 사람들이 모두 나와 둑을 막아 보고자 도움을 주었지만, 바다와의 싸움인지라 어림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은행에서 많은 빚을 내어 겨우 일을 부지한 아버지께서는 우리 식구 다 죽었다며 망연자실하셨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런 일이 있고 난 후, 어느 날 안방에서 아버지와 엄마의 심각한 말이 오가는가 싶더니 나를 부르셨습니다.
"니가 학교를 그만두어야겠다!" 무거운 아버지의 음성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동생과 내가 대학생, 남동생이 고3, 막내가 고1이었으니까 그만 둘 사람은 좋은 대학교도 못 간 내가 맞았습니다.
엄마의 기대를 저버리고 공부를 안 한 나는 좋은 학교에 척 붙지 못해서 나 자신도 "나 대학 다녀!" 소리도 떳떳하게 못하겠는지라, 대학이 어떤 곳인지 2년 동안 경험해봤으니 그만두려고 작정한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만두라고 하니까 눈물이 나더라고요.
내 방문을 잠그고 삼일 밤낮으로 울면서 조금 알았습니다.
내 마음을 나도 모르고, 마음대로 살아지는 세상도 아니라는 것을요.
내가 대학 진학을 앞두고 있을 때, 엄마의 친구는 엄마에게 신신당부했다고 합니다.
"딸을 꼭 4년제 대학을 보내야 사위를 고를 수 있단 말이여. 내 말 명심하드라구!" 라고.
나의 엄마도 막상 딸의 학교를 그만두게 하려니까 엄마의 친구가 한 말도 있고 평소 성격으로도 얼마나 상심 하셨을지 이제야 헤아려 봅니다.
며칠 후, 엄마가 나를 불렀습니다. 돈 봉투를 내미시며 얼른 학교에 가서 등록하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 너는! 앞으로 꼭 잘 살아서 아버지 한복 금단추 다시 해 드려야 한다!"는 말씀과 함께!
이 못난 딸자식 때문에 엄마는 얼마나 뼈 아픈 결단을 해야 했을까요?
내 아버지는 집에 계실 때에 파란 비취색의 한복을 즐겨 입고 계셨습니다. 동해안의 짙은 초록의 물 색깔인 비취색 한복 한가운데에는 물방울 모양의 묵직한 금단추 2개가 번쩍거리며 달려있었습니다. 그 당시 주위 남자들의 로망이었다는 멋쟁이 아버지에게 그 금단추는 상징과도 같은 것이였을텐데.
그 금단추가 없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돌멩이 같은 붉은 호박 단추가 달려있게 되었습니다.
아! 아! 악! 나 때문에.
아니!! 이렇게까지 해서 엄마친구가 말한대로 4년제 대학도 나왔고, 이런 희생어린 사랑도 받은 저는 당연히 세상에서 인정하는 직업과 인성을 갖춘 남편을 만나서 행복하게 살아야 맞는 거 아니에요?
이 금단추 사건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살 수밖에 없던 이유를 쏟아냅니다.
마치 싸우기 위해 결혼한 것처럼 사흘이 멀다 하고 다툰 나는 매일 마음이 상해 넋이 나가 있었습니다.
시댁에서는 나의 남편이 형제들 중에 제일 머리가 좋은 아들이라 해서 잔뜩 기대를 했습니다. 성질이 급하고 깐깐한 걸 가지고 똑똑하다고 한 걸 나중에야 알게되었고 경제관념이 흐리더니 이윽고 빚까지 매달고 다녔습니다. 그 빚을 갚을 날이 다가오면 나에게 짜증을 내곤 했는데 왜 또 화가 난지 모른 나는 어떻게 할 줄 모르다가 또 싸웠고, 이런 남편 뒷바라지한다고. 애가 아프게 태어난 탓에 보험도 안 되는 값비싼 주사 맞히느라, 없는 돈 쥐어짜서 애들 학원 보낸다고, 남들 하는거 다 시키겠다고, 헉헉대다 내 숨조차 편히 못 쉬었습니다.
나는 진짜 가슴이 답답해서 1분에 한 번씩 숨을 몰아 내쉬어만 숨을 쉴 수 있었습니다.
어찌하여 나는 금단추를 까맣게 잊었던가. 아버지 살아계실 때 더 살갑게 해 드릴걸...
하기야, 내가 안 잊고 지냈던들 14k반지 라도 하나 해드렸을까?
철석같이 잘 살 줄 알았던 딸이 못 살고 헤매는 모습에 아버지는 내게서 금단추를 받아낼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늙은 아버지께서 여기가 저기가 아프다며 왜 아플까? 하소연하면 "왜는 왜예요? 늙어서 기능이 다 약해졌으니까 당연히 아픈 거죠!"라고 쏘아붙이고 현관문 꽝 닫고 나간 나를 향해 아버지께서는 그 금단추 생각과 함께 "내가 저를 어떻게 키웠는데..." 하셨을 수도 있었겠습니다.
가끔 내가 내 딸에게 " 너 옛날에 엄마한테 그렇게 모질게 말했던 거 기억나?" 하고 물으면, "내가? 언제?"라며 초롱초롱한 눈을 동그랗게 뜹니다.
자식에게 부모의 사랑은 당연해서 잊어버리는 게 당연하지만, 부모가 되어보니까 자식의 허물은 자신의 가장 깊숙한 곳에 넣어두고 입을 꾹 닫고 살아내며, 저 세상으로 갈때 가지고 가는 것입디다.
그래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스칩니다.
아직 92세의 엄마가 살아계시거든요. 요즘 부쩍 실버타운에 계시는 게 지겹다고 불평하시는 엄마를 향해 다 들어줄 수는 없다며 일부러 외면하고 있는 딸들의 단합을 깨야겠습니다.
엄마가 좋아하시는 꽈리고추 조림하고 생김치 담그고, 미역국을 끓여야겠습니다.
늙으니까 자식 생각만 난다는 엄마랑 같이 밥 먹고, 인내가 필수인 엄마의 넋두리도 끝없이 들어드려야겠습니다.
그럼 저는 마트에 가야 해서 이만 펜을 놓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