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의 치킨, 둘째 딸
지난주 토요일 밤 11시쯤이었다.
주말에만 올라와서 집을 즐기는 큰 딸과 평화롭게 이야기도 하고 TV 시청을 하고 있었다.
그 시간에 늦게 돌아온 둘째 딸이 "엄마! 치맥 할까? 나 치킨 먹고 싶어!" 한다.
늦은 시간이었고 살찐다며 저녁도 안 먹는 큰 딸과 고민한 끝에 "그래! 오랜만에 오붓하게 한잔하는 것도 좋겠네. 네가 시켜~ " 하고 기다리는데 작은 딸은 계속 휴대폰만 만지고 있다. "빨리 닭 시켜~"라고 하자 "아 잠깐만. 기다려 보라고!" 하면서 확 짜증을 낸다.
큰 딸과 나는 어리둥절해져 눈치만 보다가 우리는 기분이 나빠져 각자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지금 대학교 4학년이 된 작은 딸은 어릴 적 내게 큰 기쁨을 안겨주었던 예쁘고 착한 딸이었고, 지금도 남의 마음을 잘 읽어주는 따뜻한 마음씨를 가졌다. 분위기를 즐겁게 확 만드는 재치도 있지만, 가끔씩 제 기분에 따라 나오는 말투가 여간 싸가지가 없는 게 아니다. 그래서 그날 밤처럼 평온했던 분위기를 망치곤 한다.
다음 날, 나는 딸에게 먼저 문자를 보냈다.
"어제 못한 치맥 오늘 할까?" 하니 "OK" 한다.
하루 종일 늦게까지 작업실에서 작품을 만들고 오는 딸을 기다려 치킨집으로 갔다. 어색한 시간이 잠깐 흐르고 곧 맥주가 나오고, 한 모금씩 마신 우리는 말 문을 열었다.
"딸아, 우리 딸은 어렸을 때 평화롭게 잘 자랐는데 지금은 왜 뾰족한 성격이 되었지? 네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건 나쁜 일이야. 고쳐야 해."
이어서 말문을 연 딸은,
"근데 엄마도 성격이 좋은 것만은 아니잖아. 그리고 어제는 엄마나 언니가 치킨을 시켜도 됐잖아. 평소에도 뭐든 다 나한테 물어보고, 나한테만 시키고 그렇잖아." 목소리에는 아직 불만이 가득이다.
엄마는 말이야...
물어보고 싶은 게 있을 때 너에게 바로 물어보지 않아. 나도 나름 인터넷 검색도 하고 언니한테 전화해 보는데, 언니가 회사일이 바쁠 땐 전화를 안 받아. 급하기는 하지. 그때 너에게 전화하는 건데...
눈물이 핑 앞을 가린다.
"왜 울어?" 짜증이 가득 섞인 목소리로 말하는 내 딸이 야속했다.
인터넷을 잘 못하고 운전도 어리바리 잘 못하는 나는, 요즈음 세상을 살기에는 너무나 자신감이 없다. 이런 나에게 큰 딸은 " 엄마는 집안일 잘하니까 기죽지 말아! "라고 해 주지만, 난 여전히 딸들 눈치를 보며 당당한 엄마로 우뚝 서지 못하고 있다.
나는 두 딸을 낳아 기르면서 내 능력을 넘어선 정도로 올인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당연히 힘든 시간들을 지나왔고, 그 시간들을 딸들이 보상해 줄 것이라는 희망이 자부심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내 마음속에는.
우리가 자녀를 기르면서의 보상은 아이들이 유아기였을 때 천진난만한 아기가 주는 기쁨으로 이미 다 받았다고 한다. 그런 거였는데...
이렇게 나의 인생이 완성되어 가나보다. 더 성숙한 진짜 엄마가 되기 위해 꼭 필요한 아픔의 시간을 지나고 있을 뿐이다.
남아있는 치킨과 맥주를 뒤로하고 나와 집을 향해 걷는데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고...
초겨울에 접어든 날씨가 제법 춥다.
이틀이 지난 후 딸은 밥을 먹으며 묻는다.
"엄마. 기분 괜찮아? 난 엄마를 울리고 계속 마음이 안 좋아!"
오늘은 옷도 얇게 입고 나간 것 같은데, 딸이 춥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그날 이후, 딸은 식탁 위에 한 장의 글을 올려놓고 나갔다.
엄마의 글을 본 후, 나는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제 3자의 입장이 되어 객관적으로 날 대면한 느낌은, '싸가지가 많이 없구나...'
치킨 사건이 일어난 날은 엄마에게 꽤나 상처를 주었던 날이었나 보다.
도대체 나는 왜 그랬을까? 왜 감정조절을 잘 못하는 걸까? 치킨 그까짓 거 전화 한 통만 하면 되는데...
이 날 나는 나름대로 아이폰 업그레이드 도중, 모든 데이터가 날아가버리는 엄청난 일이 일어난 때였다. 시간순으로 배열하면,
"치킨 먹자!"- 휴대폰 업데이트- 데이터 다 날아감...- "왜 치킨 안 시켜?" - 아 잠깐만!
뭐 이런 순으로 진행되다 좋은 분위기를 망쳐버린 날이 된 것이다.
엄마가 타인이나 아빠, 언니와 문제가 생겨 힘들어하면 가장 못 참는 나인데, 정작 엄마에게 크고 작게 상처를 주는 사람은 나인 듯싶다. 이 아이러니한 상황을 어찌해야 할까.
나는 그동안 내게 모든 걸 쏟은 엄마의 희생, 사랑을 잘 알고 있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름대로 엄마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말투'를 예쁘게 하려 노력하며, 엄마에게 맞춘다고 맞추려고 하는데도 매 번 삐걱거리고 만다.
내 머릿속에는 '엄마의 눈물이나 약한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 하지만 가장 가까이 지내는 내 앞이 아니라면 그 한을 어디에다 터놓을까.' 하는 2가지의 생각이 공존한다.
그래서 나도 어쩔 땐 위로를 하지만, 이번처럼 그 눈물이 달갑지 않을 때도 있다. 오락가락하는 것 같다.
점점 나아지고 있듯, 더 친절하고 따뜻한 딸이 되고 싶다.
엄마는 지금 충분히 멋있고 긍정적인 생활을 잘하고 계신다. 내가 본 사람들 중에서 가장 착한 엄마처럼 나도 착해질 것이다. 지금의 엄마는 남편과 딸, 가족의 눈치를 볼 필요도, 자존감이 낮을 이유도 전혀 없는데 자꾸만 그러니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