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서 따뜻한 물 한 잔에 갑상선 저하증 약 한 알을 삼키면 하루가 시작된다.
그리고 하루 동안 먹을 과일을 깎고 생고구마도 깎고 찐 고구마랑 큰 접시에 한가득 담는다.
접시에 한가득 과일을 채우면서도 마음속에서는 커피 생각밖에 없다.
먹으면 안 되는데..
내 손은 이미 커피포트에 가 있다. 물을 끓인다.
아! 먹지 말라 했는데..
디스크 수술 후 약 후유증인지 모르겠으나 그 후로 위가 많이 약해져서 음식을 자유로이 먹지 못한다. 내가 위 때문에 의사 선생님께 고통을 호소 하자 선생님께서는 커피가 제일 안 좋다고 하셨다.
아! 커피.
어느덧 50년 세월을 나와 함께 해 주었던 내 인생의 동반 자였었던 커피.
중학교 때쯤부터 인 것 같다. 내 아버지는 매일 아침 나에게 커피를 타오라고 하셨다.
나는 커피를 타서 아버지께 가기 전에 꼭 한 스푼씩 홀짝 마시며 맛을 보았다.
썼지만 부드러운 그 맛이 어찌나 달콤했는지 나는 벌써 커피 맛에 빠지고 말았던 것 같다.
50년 전인 1970년 때는 커피를 콩나물 사듯이 마음대로 살 수 있는 기호식품이 아니었다.
안 사도 되는 기호식품을 아버지께서 좋아하시니 하는 수 없이 사다 놓는데 나 때문에 커피가 집에 남아나지 않았다. 급기야 엄마는 커피를 여기저기 감추어 놓으셨지만 나는 용케도 찾아내 홀짝홀짝 내 미각을 만족시키곤 했다.
안 그래도 결혼도 못하고 있는 이 딸이 골치 아팠을 텐데 커피나 축내며 빈둥거리는 나를 봐 내느라 엄마가 얼마나 많은 인내를 감내하셨을지.
드디어 내가 늦겠지만 시집을 가게 되었다.
내심 기쁘셨는지, 섭섭하셨는지, 엄마라서 그러셨는지 수입코너에 가시더니 그 시절 너무도 귀했던 초이스 커피 한 병을 제일 큰 것으로 사서 혼수품에 넣어 주셨다.
결혼을 하고 나는 그 커피 한 병을 어찌나 아껴서 먹었는지 1년이 지났는데도 커피가 남아 있었다.
결혼 후 내 집에 오시지 않던 엄마가 1년쯤이 지나고서야 오셨다.
살림을 잘 살고 있는지 점검을 하셨다.
아직 남아있는 커피병을 보시더니 낮은 목소리로 한 말씀하셨다
"나쁜년!니꺼는 아깝더냐?
그렇게 말했던 엄마의 목소리는 지금도 내 머릿속에 선명하다.
엄마가 커피를 사 대면서 얼마나 힘들었으면 욕을 다 섞으셨을까?
엄마, 미안해요! 나쁜 년 키운다고 애쓰셨어요.
학생 신분이었을 때나 결혼 전이였을 때도 결혼하고 주부가 되고서도 당연히 커피를 달고 살았다. 거리 곳곳마다 설치되어 있는 좌판기 커피 매대도 지나치지 못하고 나는 언제나 그 앞에 서곤 했다.
어디를 가다가도 내가 없어지면 가족들은 "커피 좌판기 찾아봐라!" 고 했고
그런 나를 보고 딸들은 내환 갑 선물로 커피 좌판 기를 사주겠다고 했다.
어느 겨울날에 나는 지방에 내려가기 위해 고속버스를 타야 했다. 나는 차속에 앉아 스쳐가는 경치를 보며 마시는 커피를 제일 좋아했어서 커피 한 잔을 뽑았다.
한 손에 가방을 들고 한 손에 커피를 들고 내 좌석을 찾아가는 도중에 앉아 있던 한 승객의 패딩잠바에 커피를 다 쏟아 버렸다. 이때 혼비백산했던 기억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커피 때문에 이런저런 사고를 많이 치고 다니는 나를 향해 가족들은 그 커피 좀 끊을 수는 없느냐고 볼멘소리를 했다.
그러나 "너는 그것이 보약인 줄 아냐?"라고 한 엄마 말처럼 커피를 보약처럼 내 몸에 부어대다가 급기야 나는 커피를 먹지 못하게 되었다.
내가 마른 몸임에고 불구하고 고지혈증 약을 10년째 먹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리라 짐작을 한다. 그래도 커피를 마실 수는 있었다. 그런데 위가 쓰리니까 더 이상은 안 되겠다.
많은 날 슬펐지만 결국 나와 타협을 했다.
순순히 받아들이자! 그동안 좋아한 것 실컷 마셨잖아!
자업자득, 절제하지 못한 대가를 마땅히 치르자! 고.
오늘도 물을 끓이고 커피를 내려 내 옆에 놓아둔다. 아! 커피 냄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