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65살이 된 나의 시간
3년간의 유학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딸의 2주간의 격리 때문에 나는 이곳 강원도 동생 집으로 왔다.
오랜만에 동생과 맛있는 밥도 해 먹고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게 되어 참 좋다.
그리고 강원도의 맑은 공기와 기분 좋은 햇볕과 바람이 얼마나 좋은지 좋은 시간을 선물로 받은 것 같다.
저녁밥까지 먹고 나면 이곳, 본 채와 떨어진 작은 외딴 방으로 와 오롯이 혼자가 되어 고요하기만 한 시골의 정취에 흠뻑 취한다.
오늘 밤에는 꽉 차오른 유난히 크고 훤한 보름달이 작은 창문을 가득 채운다.
누워 보름달을 쳐다보며 마냥 황홀한 내 마음에다가, 요즘 좋아하게 된 가수의 아름다운 곡" 달이 참 예쁘다고 "를 듣고 있자니 웃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참 좋은 시간이다.
지금까지 살면서 어느 누구에게 마음 한 번 빼앗겨 본 적 없어 좋은 게 무엇인지 몰랐던 내가
요즘에는 좋은 게 무엇인지를 알아가고 있다. 그래서 자꾸만 혼자 있고 싶다. 누구의 방해 없이 혼자 노래 듣고, 노래 가사도 음미해보고, 생각해 보고 하면 재미가 있다. 젊은이가 쓴 가사인데 철학적인 데가 있고 인간미가 있어 보인다. 이 가수를 좋아하다가, 나를 되돌아보게 된다.
40여 년 전, 내가 20- 30대에 나는 어떻게 살은 거지? 물어보았다.
아! 그때.
나는 책 한 권 읽지 않았다.
엄마가 가라고 해서 간 학교에서 당연히 공부는 뒤 전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부모께 받아낸 용돈으로 한껏 멋 부린 친구들과 허접한 수다를 떨며 커피숍에서 커피 사 마시고 술도 마시고 하다가, 또 아무 생각 없이 사랑 없이 결혼했던 그 시절.
지금 생각해 보면 내 인생을 아무 생각 없이 낭비만 했다. 류시화 시인의 책 제목에서처럼. "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나는 철학 책도 많이 읽었을 것이고, 자기 자기 계발에도 열심이었을 것이고, 나의 미래를 위해서 계산도 했을 것이다. 인간은 성장하고 있을 때 행복하다는 것도 알았더라면...
이 세상 사람 다 못 살아도 나는 잘 살 거라는 무지한 희망이 박살이 나기 시작한 건, 결혼 후 1년도 채 안 되었다. 아내가 되는 것, 엄마가 되는 것, 결혼 후 더욱 선명해지는 자식으로서의 내 존재, 며느리의 본분 등등...
1인 다 역을 살아내야 하는 이 세상에는 고통의 종류가 참 많았다. 그 고통은 시시때때로 튀어나와 나를 엄습했다. 세월은 흐르고 남편이라는 사람과 살아볼수록, 아이들이 커 나갈수록, 그 강도도 세졌고 빈도도 잦아졌다. 꼼짝없이 온몸으로 받아 낼 수밖에 없는 세상이었다. 많은 날 숨죽여 울기도 했다. 또 가끔은 약이 오르고 분함을 참지 못해 악을 쓰고 울다가 골이 흔들렸다나. 신경성 두통이라는 고질병을 훈장처럼 달아버렸다.
이쯤 했으니까 이제는 다이 상의 고통의 종류는 없을 거야... 그럼. 그럼. 했다.
그러나 신께서는 마지막이라고 하지 않으셨다.
미래는 밝다면서 힘차게 떠난 유학 생활 중에 우울증이라는 무서운 시간과 맞닥뜨려 꼼짝 못 하고 고꾸라져 버렸다. 사랑하는 내 딸이. 코로나 시기라서 더욱더 오지도 가지도 못한 채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동안, 예뻤던 내 딸은 거의 폐인의 모습이 되어가고 있었다.
아! 우리를 주관하고 계시는 절대자 앞에 또 무릎을 꿇었다.
도와달라고. 내가 잘하겠다고 눈물 콧물로 뒤범벅이 되어 간절히 빌었다.
그동안 살면서 까마득히 잊고 살았던 나의 오만으로 인해 사람들에게 주었던 상처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다 내가 잘 못 살은 탓인 것만 같았다.
온몸에 힘이 쫙 빠져나감을 하루하루 느끼며, 겸손한 자세로 다시 살아보기로 결심을 하고 있는 시간들이다. 좋은 시간이다.
꿈이 더 있었으나 목표했던 최소한의 일정을 겨우 마무리한 딸은 한국으로, 집으로 돌아오기로 결정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진다고 했다.
2주의 격리가 끝나고 만나면, 나는 엄마니까 내 딸이 다시 툭툭 털고 일어서게 잘 도와줄 자신이 있다고 나를 세뇌시킨다.
'우리는 이제 또 한 계단 성장할 것이고, 더욱 단단해져서 이 땅에 두발 딱 버티고 서서!
더 잘 살기 위한 고마운 시간이었다고 말할 그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좋은 시간이다.